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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국가(소련/중국/북한 등)의 사회성격
2016.01.25 01:19

(IBT) 쿠바 혁명을 방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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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쿠바 혁명을 방어하자!

미제국주의를 분쇄하자!


1959년 정월, 부패하고 학정을 일삼았던 훌헨시오 바티스타 신식민지 정권의 전복과 뒤이은 쿠바 자본가계급의 몰수는 전세계 노동계급의 승리였다. 소련의 원조에 힘입어 쿠바는 꽤 평등한 경제체제를 구축했고, 삼십 년 동안 피델 카스트로는 거대한 미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쇠락해가는 미 제국의 지배자들은 플로리다로부터 90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존재하는 집산화된 경제를 더 이상 용납할 뜻이 없었다. 미 제국주의자들은 경제봉쇄 강화 그리고 다른 남미 신식민지 국가를 동원한 쿠바 고립화 전략과 더불어 공격적인 ‘민주주의’ 선전을 착수했다. 쿠바 혁명의 방어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문제가 되었다.

바티스타 통치 아래의 쿠바는 미국 부자들의 거대한 사탕수수 농장과 유흥지였다. 쿠바 부르주아지 권력의 붕괴로, 카스트로 정권은 세계 제국주의와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었고, 노동인민의 삶엔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 혁명 시작 첫 다섯 해 동안, 육류와 옷감 소비가 두 배가 되었고, 집세는 줄었고 하바나의 저택은 농촌에서 온 학생 8만 명의 숙소로 개조되었으며, 버리고 떠난 고급 자가용들은 택시 운전사로 일할 수 있도록 이전의 하인들에게 배분되었다.

오늘 쿠바의 의료, 교육 그리고 주택 수준은 남미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높다. 집세는 보조받고, 의료는 무료이며 모두가 교육받을 수 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98% 이상이다. 실업은 사라졌다. 북미의 제국주의 나라들의 생활수준에 비추어 볼 때 쿠바는 여전히 가난하지만, 중남미 다른 나라에 만연한 풍토병이나 절망적 빈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소련과의 관계가 끊어지다


소련권과의 원조와 교역으로 혁명을 압살시키려는 미국의 경제 봉쇄에도 쿠바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소련 관료는 제국주의와의 국제적 ‘평화 공존’ 전략을 위한 협상 카드로 쿠바를 이용했다. 소련은 쿠바의 설탕과 다른 수출품을 국제가격보다 높은 값에 구매했고, 석유를 국제가 이하로 팔았다. 이것은 매년 수십억 달러를 원조해 주는 것과 같았다. 1980년대에 쿠바 무역의 85%는 코메콘[ 소련 · 동유럽 ‘현실 사회주의’ 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협력기구 ]과 이루어진 것이었다.

1990년, 페레스트로이카가 소련 경제를 해체하고 있을 때, 보급품이 부족해지고 지체되자, 기본 생필품 배급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산업의 석유 소비는 50%까지 축소되었다. 1990년 12월 소련은 설탕 보조금을 반으로 줄였고 다른 품목 모두엔 국제가격을 매기기 시작했다.

소련에서 1991년 8월 반혁명이 승리하자, 쿠바의 생명줄은 끊어졌다. 옐친 일파는 지체하지 않고 설탕 보조금을 없애고 소련 군사 고문들을 쿠바로부터 철수시켰다. 1991년 10월 카스트로는 소련권에서 오기로 한 수입품의 40% 미만만이 쿠바 항구에 도착했다고 발표했다. 쿠바 혁명에 대한 소련의 포기는 침략자 미국에 청신호가 될 것이라고 쿠바 일간지 그란마(Granma)는 침통하게 보도했다.

바티스타 지지자들은 소련 철수에 환호했다. 플로리다 백만장자들과 CIA의 피그스 만 침공[ 1961년 4월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미국이 훈련한 1400명의 쿠바 망명자들이 미군의 도움을 받아 쿠바 남부를 공격하다 실패한 사건 ] 참전병사들의 조직인 쿠바계미국인협회(Cuban American National Foundation: CANF)는 쿠바의 반혁명 작전을 가동했다. 이 협회에는 진 커크패트릭[ 미국 신보수주의자(네오콘)의 대모(代母).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다면 독재정권과도 손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 '커크패트릭 독트린'(Kirkpatrick Doctrine)으로 유명 ]과 로널드 레이건이 있다(주간 가디언, 1991년 9월 15일). 마이애미의 백만장자 투기꾼인 조지 부시의 아들인 젭 부시도 이 협회의 인사이다. 이 협회는 쿠바의 토지와 산업 구매자를 모집 중인데 지금까지 60% 정도가 팔렸다고 한다.


선택지가 없는 쿠바


석유와 여타 물품을 수입할 경화[ 금지불이 보장된 화폐, 또는 국제시장에서 통용되는 화폐 ]의 부족과 설탕 흉작으로 쿠바 정부는 식량의 자급자족 정책을 시작했다. 국영농장에 보급되는 산업용품을 크게 줄여서 노동자들이 인원을 감축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자급자족 운동은 사료와 비료의 부족으로 방해받았다. 쿠바는 아직도 밀을 국제시장에서 구매해야 한다. 쿠바 지도부는 완전한 석유 수입의 중단에 대비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 황소, 말 그리고 수십 만 대의 중국 자전거는 트럭과 승용차를 대체할 것이다.

카스트로는 처음부터 고르바초프의 친자본주의 시장 ‘개혁’을 확고히 반대했다. 1980년대 후반 쿠바 정부는 페레스트로이카에 열광하는 소련 신문을 금지시켰다. ‘시장 사회주의’ 대신에 쿠바 관료가 내건 구호는 ‘사회주의가 아니면 죽음을!’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아니면 파멸이라는 수사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포위라는 경제 압박을 완화하고 설탕 경제에 지나친 의존을 줄이기 위해 쿠바 정권은 지금 외국 투자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쿠바 정부는 관광 산업을 촉진했고 이를 위해 스페인, 브라질 자본가들과 합작사를 만들고 있다.

관광산업의 성장은 페소 경제와 별도로 달러 경제를 성장시키고 있다. 쿠바인들은 지금 국제화폐를 가진 외국인들을 식탁과 택시에서 기다리고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1991년 11월 2일)는 정권을 지탱해 온 반제국주의 정서를 이런 상황이 어떻게 좀먹고 있는지를 묘사한다. “쿠바 최고의 바닷가, 최상의 음식, 귀한 소비재는 오직 달러를 써야만 구매할 수 있다. 그것들을 쿠바인들은 법적으로 가질 수 없다.…많은 쿠바인들은 페소로 장을 보는 사람들에 대한 천대와 국가주권이라는 수사 사이의 간극에 대해 말한다.” 관광산업이 성장하면서, 매춘, 관료의 부패 그리고 암시장이 성행하게 되었다. 정부가 긴축 정책을 펼치자 많은 쿠바인들이 소비재를 구하기 위해 (암시장과 선이 닿는) 사람을 물색하고 있다. 주간 가디언(1991년 3월 17일)은 정부 구호인 ‘사회주의가 아니면 죽음을!’에 대한 풍자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탈린주의 통치 기술


30년 동안 카스트로는 정치적 반대조직을 허용하지 않았다. 1976년 카스트로 정권은 쿠바공산당(PCC)의 정치적 독점을 공식화하고 그것이 “사회와 국가의 최고 지도기구임”을 선언하는 새 헌법을 공표했다. 새 헌법은 지역, 지방, 전국 ‘민중권력의회’를 수립했다. 이 기구는 쿠바공산당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겉치레에 불과했다.

쿠바공산당 위원회는 공공 회의에서 지방 의회 의원을 지명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한편 당은 상급 의회의 지명권도 가지고 있다. 전국 의회는 보통 한 번에 이틀씩 1년에 두 번 7월과 12월에 소집된다. 전국 의회의 절반은 하급 의회의 의원 중에서 당이 지명한 의원들로 채워진다. 쿠바공산당원이나 정부 관료가 나머지 절반을 채운다. 1981년에서 1986년 전국의회까지 90%를 넘는 의원들이 당원이거나 예비 당원들이었다.

다른 모든 스탈린주의 정당처럼 쿠바공산당 내에는 내부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쿠바공산당은 1975년에 첫 총회를 열었다. ‘7.26운동[ 1953년 7월 26일의 카스트로의 몬카타 병영 공격 정신을 계승한 반제국주의 무장 게릴라 운동 ]’이 집권한지 17년 만이다. 카스트로는 이것에 아무 문제를 느끼지 못했고, 대신에 “우리는 다행히 이 총회를 지금 열고 있다. 참말 다행이다! 이 방법으로 총회의 질은 17년간의 경험으로 보증되었다(그란마, 1976년 1월 25일; <노동자전위> 1976년 3월 12일 인용).”라고 유쾌하게 외쳤다. 다른 스탈린주의 정당이 그러하듯이, 총회는 지도부를 만장일치로 추대하도록 치밀하게 조직되었다.


쿠바 스탈린주의: ‘가족 옹호’와 동성애 반대


쿠바의 어린이는 여성이 양육, 요리 그리고 청소에 책임을 진다고 배운다.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통해 여성을 해방하겠다는 것을 공공연히 주장한 레닌과 트로츠키 당시의 볼셰비키와 달리 쿠바 관료는, 다른 스탈린주의자들처럼, 이른바 ‘사회주의 가족’을 기린다. 카스트로주의 지배 계층은 노동계급에 대한 자신의 권위적 통치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방편으로, 핵가족과 그와 관련된 후진적 사회요소를 권장한다. 여성은 전통적 여성 직종에 집중된다. 당의 고위직은 여성의 비율이 낮다.

가족에 대한 옹호는 동성애에 대한 탄압과 짝을 이룬다. 1965년 정권은 감옥이나 다름없는 생산독려군사훈련소(?)(Military Units to Aid Production)를 설립했고 주 대상자는 동성애자들이었다. 1971년 열린 ‘제 1차 전국 문화/교육 대회’는 동성애의 ‘병적 성격’에 대해 혹독하게 비난하고, “동성애 취향의 표현을 단호하게 거부하며 확산을 금지한다.”라고 결의했다. 1980년 마리엘 항구를 통해 쿠바를 떠난 10만 명의 쿠바인[ 1980년 4월 15일부터 10월 31일까지 쿠바 당국의 허락에 따라 마리엘 항구를 통해 미국을 향한 대량이민자 ] 가운데 대략 만 명 정도가 레즈비언이나 게이였다. 이 사람들은 국가가 후원하고 혁명방어위원회가 직접 주도하는 동성애 혐오 운동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쿠바를 떠나야 했다. 에이즈가 번져가던 시기, 동성애 혐오가 힘을 얻고 쿠바는 HIV 양성반응이 나온 사람들을 강제로 감금한 유일한 나라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카스트로주의와 노동자 민주주의


1959년 새해 첫날 권력을 장악한 7.26운동은 농촌에 기초한 게릴라운동이었다. 그들은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악지대에 기반을 두고 급진자유주의 강령을 추구했다. 2년 동안의 게릴라 전쟁 끝에 썩고 부패한 정부 인사들이 떼 지어 마이애미로 탈출하면서 바티스타 국가기구는 붕괴했다. 7.26운동은 몇몇 자유주의 정치가들과 동맹을 구성하여 주인이 사라진 권력을 장악했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부르주아지 분파가 카스트로의 급진 민족주의 정책에 반대하자, 7.26운동은 분열되었다. 피델과 동생 라울이 이끄는 카스트로 다수파는 쿠바 자본가들의 몰수에 착수했다. 1961년 7월 카스트로 일파는 전통적으로 소련을 지지하는 스탈린주의 조직이고 바티스타 정부 때 장관을 내기도 했던 사회주의인민당(Partido Socialista Popular)과 합쳤고, 이것은 쿠바공산당이 되었다.

1960년대 ‘신좌파’의 생각에, 카스트로주의자들은 동유럽의 무미건조한 관료들로부터 몇 광년이나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일당 통치는 쿠바혁명을 시작부터 왜곡시켰다. 다른 ‘기형적 노동자국가’처럼 노동계급은 정치적으로 독립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노동계급이 방관하는 가운데 농촌에 기초한 게릴라 봉기로 수립된 권력의 당연한 결과였다. 1961년 힘차게 전진하는 시기에 피델 카스트로는 혁명은 반드시 “만개한 사상의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내 바르부도스[ barbudos: ‘털보아저씨들’; 수염을 길게 기른 카스트로 게릴라 운동가들 ]는 모든 비판에 대해 경찰의 탄압으로 대응했다.

혁명 초기 트로츠키주의를 표방한 노동혁명당(Partido Obrero Revolucionario: POR)를 괴롭힌 사건은 하나의 사례이다. POR 회원들은 제국주의에 맞선 혁명을 무조건적으로 방어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새 정권의 관료주의를 비판했다. 그러자 카스르토의 정치 경찰은 인쇄기를 부수고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 스페인어 인쇄판을 깨뜨리고 5명의 회원을 감옥에 가두었다.


역사의 주체적 요소


7.26운동의 ‘행동하는 인간(men of action)’에게, 좌익 내의 맑스주의적 비판과 민주주의는 ‘단결’을 해치는 요소일 뿐이다. 1960년 10월, 대규모 국유화가 진행되고 있을 당시, 7.26운동의 좌파인 체 게바라는 청년들을 고무시키는 맑스주의 사상에 대한 혐오를 표현했다.


“쿠바 혁명은 독특하다. 몇몇 사람은 ‘혁명 이론 없이 혁명 운동 없다.’는 레닌의 언명으로 표현되는 혁명운동의 전통적 전제 가운데 하나와 모순된다.…”

“이 혁명의 주역들은 이론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

“혁명가 맑스 이래로, 정치조직은 구체적 사상을 바탕으로 자신을 정립한다. 맑스와 엥겔스 같은 거인과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같은 인물 그리고 소련과 중국의 뒤이은 통치자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성과에 기초하여, 우리의 선례가 되는, 정책기구를 수립한다. 쿠바 혁명은 과학을 떠나서 혁명의 소총을 어깨에 메는 방식으로 맑스를 수용했다.…우리, 실천적 혁명가들은, 우리의 투쟁을 통해서, 과학자 맑스가 예견한 법칙을 실현했다.…맑스주의 법칙은, 이론적 관점에서 그 법칙들을 지도자가 공언하거나 또는 완전히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쿠바 혁명의 사건들 속에서 실현되었다.”—“우리는 실천적 혁명가들이다.”, 1960년 10월 8일


피억압인민의 대의에 대한 그들의 개인적 용기와 헌신에도 불구하고, 역사에서 주체적 요소의 역할을 경시하는 카스트로주의자의 경향은 혁명의 궁극적 승리를 가로막는 정치적 장애물이다. ‘맑스주의 법칙’은 그 법칙을 이용하여 세계를 변혁하려는 정치적으로 자각한 인간의 실제 행동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그 법칙들은 저절로 자동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혁명 투쟁은 혁명적 맑스주의 정치강령에 대한 노동대중과 피억압인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투쟁이다. 대담하고 변혁적인 쿠바 혁명가들의 역사는 그 자체로 인간을 해방시키는 길은 오직 의식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맑스가 노동계급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 해방되어야 한다고 말한 의미이다.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선의라 하더라도 다른 계급의 지도자에 의해 해방될 수는 없다. 레닌주의 전위의 역할은 (카스트로 스탈린주의를 포함해서) 사이비 사회주의 거짓 사상에 맞서 혁명 강령을 발전시키고 그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레닌주의 당에 체현된 맑스주의 강령에 대한 피억압 피착취 인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필요하다.

쿠바 지도부는 이전 소련권의 잿빛 관료들보다 더 많은 국내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정권 주도의 다양한 사업에 많은 인민이 참여했다. 그러나 지배층의 지도력에 대해 지지하는 것으로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 제안을 하는 능력이나 어떻게 특정 사회운동이 수행되어야 하는지를 건의하는 것은, 애초부터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결정하는 힘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건강한 노동자국가에서 노동인민은 명실상부한 정치적 결정권자이다.


쿠바의 ‘혁명적’ 외교정책


카스트로 정권은 한때 인기가 많았던 베트남의 스탈린주의 통치자들을 외면한 소부르주아 좌파들에게 경애의 대상이다. 한번은 카스트로주의자들에게 “혁명적 맑스주의를 진화시켰다.”라고 말하며 아첨했던, 한때 트로츠키주의자 에르네스트 만델의 ‘통합서기국’은 요즘은 유보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쿠바 지도부에 대한 종파주의적 태도를 거부”하면서, 몇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카스트로주의자는 “혁명적”이라고 여긴다. 예전에 만델과 함께 ‘통합서기국’을 구성했던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잭 반스는 독특한 유형의 카스트로 아첨꾼이다. 그는 어떠한 비판적 유보도 하지 않는다. 반스주의자들은 쿠바의 외교정책이 맑스와 레닌의 국제주의 혁명전통에 기초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 년 간의 카스트로 외교정책은 반혁명적인 소련 관료집단의 요구에 맞춰온 것이었다.

1968년 5월에서 6월 사이, 천만 명의 노동자와 학생들이 프랑스를 혁명 직전으로 몰고 갔을 때, 카스트로는 프랑스공산당의 총파업 배신을 옹호했다. 두어 달 후, 소련 탱크가 체코 프라하로 진군하여 알렉산더 둡체크의 개량적 스탈린주의자들을 끌어내리고 브레즈네프가 선호하는 분파를 권좌에 앉히려고 할 때, 쿠바 정부는 이를 지지했다. 1989년 6월 쿠바 관료집단은 베이징 천안문광장에 결집한 노동자와 학생 시위대에 대한 중국 스탈린주의자들의 학살을 또한 옹호했다.

라틴 아메리카와 관련된 기록 역시 문제적이다. 1970년대 초반 카스트로는, 칠레 부르주아지의 몇 분파와 연합한 살바도르 아옌데의 인민전선 정부를 승인했다. 이 계급협조주의 정책은 칠레 노동계급을 정치적으로 무장 해제시켰고, 수만 명의 좌익인사들과 전투적 노동자들을 학살을 낳은 1973년 9월 피노체트의 쿠데타의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1980년대 내내 니카라과 산디니스타에게 부르주아지를 몰수하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대신에 자본가들과 민족적-애국주의 전선을 수립할 것을 주장했다. 산디니스타는 존재하지 않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그 ‘제3의 길’을 찾기 위해 10년 동안 헤매었다. 결국 궁핍에 지친 인민이 레이건과 부시의 콘트라 반군세력을 의회선거에서 지지하면서 산디니스타는 쫓겨났다.

카스트로 옹호자들은 앙골라의 부르주아민족주의 정부인 MPLA에 대한 쿠바의 지원을 맑스주의 국제주의의 사례로 자주 언급한다. 혁명가들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인종차별주의 국가에 맞서 싸우는 MPLA/쿠바 군대를 군사적으로 지지하지만, 그것은 노동자권력을 향한 투쟁은 아니었다. 앙골라에 있던 쿠바인들은 소련의 대리인들이었다. 1988년 고르바초프가 미국 백악관과 모종의 합의를 하자, 쿠바 병력은 철수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다른 곳에서, 쿠바 병사들은 민족자결을 원하는 에리트레아 인민의 정당한 투쟁에 맞서 길고 잔인하고 패배적인 전쟁에서 (또 하나의 소련 대리인인) 잔악한 에티오피아 멩기스투 정권을 지탱하기 위해 싸웠다.

1990년 제국주의자들이 신식민지인 이라크 정권을 대상으로 전쟁을 위한 외교를 펼치고 있을 때, 쿠바 스탈린주의자들은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는 위선적 목소리에 동참했다. 쿠바는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경제봉쇄에 반대조차 하지 않았다. 1990년 8월 25일 유엔 총회의 발언을 통해 쿠바 대표 리카르도 알라콘은 경제봉쇄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제국주의자들의 이라크 봉쇄에 참여하는 것을 레닌주의 ‘국제주의’의 사례로 드는 것은 철저히 눈이 먼 잭 반스 같은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카스트로주의의 미래


카스트로 정권은 여전히 쿠바 노동인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좌익의 모든 경쟁자들을 제거한 후, 미국의 군홧발 아래에서 카스트로의 통치는 유일한 대안이다. 아직도 쿠바 경제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점진적으로 다가감에 따라, 정권의 안정성을 허물 강력한 모순들이 드러나고 있다. 보통의 쿠바인들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밤새 줄을 서는 동안, 지배층이 내건 평등주의 문구와 그들의 관료적 특권 사이의 모순은 점점 더 도드라지면서 격분을 일으키고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예를 들어, 청년공산주의연맹의 구호는 ‘나를 따르라!’이다. 청년공산주의 지도자 로베르토 로바이나가 운전수가 모는 자가용에 타고, 만원 버스를 타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 선 버스 승차장 옆을 지나갈 때, 청년들은 비아냥거림과 분노를 섞어 이 구호를 외친다. 카스트로 추종자들은 깊어가는 불평불만에 대해 ‘불온분자’니 ‘제5열’이니 하는 말로 대응해 왔다. 그들은 또한 지방 ‘신속 대응군’을 수립했다. 이는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의 충성스런 카스트로 추종자들의 눈살마저 찌푸리게 했다(Militant, 1991년 10월 18일)

옐친이 소련에서 했던 것 같은 반혁명 대변자가 아직 당 내부나 외부에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유럽과 소련에서의 스탈린주의 몰락은 강력한 반작용을 낳았다. 쿠바공산당은, 중앙통제를 강화하고 잠재적 반대자를 제거하기 위해, 1990년 10월 전국과 지역 당 책임자들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앙골라 전쟁의 유명한 영웅인 아르날도 오초아 산체스 장군을 마약 거래 혐의로 1989년 처형한 이후 이어졌다. 오초아는 전형적인 스탈린주의 공개재판 이후 납득하기 어려운 다양한 혐의로 유죄가 선고되었다. 카스트로에 대한 잠재적 경쟁자가 제거된 이후, 다른 고급 관료들이 감옥에 갇혔다. 가장 두드러진 인사는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에 이어 서열 3위로 인정되던 호세 아브란테스 페르난데스 내무장관이었다.

카스트로 정권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적게 쓰라는 권고 이외에 쿠바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제공할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월가의 해적들과 ‘평화 공존’하는 것은 선택가능하지 않다. 조지 부시의 신세계질서에서 ‘사회주의 쿠바’가 있을 자리는 없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 제국주의의 우두머리들은 쿠바 혁명을 엎어버리기 위해 골몰해 왔다. 부시와 국방부는 쿠바에 대한 군사침략은 1983년의 그레나다 침공이나 1989년의 파나마 침공처럼 손쉬운 승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쿠바 혁명을 방어하고 확대하자! 노동자의 정치 혁명을!


오늘날 스탈린주의 붕괴의 결과 레닌과 트로츠키의 노동자 국제주의는 쿠바 노동자들에게 중요 현안이 되었다. 쿠바는 혁명이 확대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심지어 소련이라는 생명줄이 있었을 때에도 혁명이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쿠바 경제가 그 지역 사회주의 연방에 통합되어야 했다. 이 같은 연속혁명의 전망은 쿠바 정권의 ‘조국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꽉 막힌 구호와 대치되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적 자본주의 경기후퇴는 리오그란데 강 북쪽[ 북미 ]의 수백만 인민에게 그렇듯, 라틴 아메리카 노동대중에게도 악몽 같은 일이다. 불확실성, 가난 그리고 기아에 삶을 떠맡기고 살아가는 아메리카 대륙의 수천 만 인민은 자본주의 세계 질서의 심각한 광기를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다.

미국 지배 계급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반혁명에 대항하여 쿠바를 방어하는 것은 계급적으로 자각한 모든 노동자의 책무이다. 우선 쿠바를 향한 경제봉쇄를 파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남미, 캐나다 그리고 미국의 노동운동은 그 어떤 제국주의적 공격도 분쇄할 힘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군사 공격에 대항한 정치 파업 사상을 대중화하는 한 가지 방법은 혁명이 쿠바 인민에게 가져다준 주택 의료 교육에서의 실제적 혜택을 노동인민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것들은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 노동자들에게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들이다.

쿠바 노동계급이 전진해야 하는 길은 허리를 끝없이 졸라매고 제국주의와 인근 하수인들과 화해를 추구하는 데에 있지 않다. 생존하기 위해서 쿠바 혁명은 반드시 그 인근 지역의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전복한 동맹을 찾아내어야 한다. 이것은 고립된 섬에서 가축의 힘으로 가동되는 ‘사회주의’라는 보나파르트주의 카스트로 정권의 민족주의적 ‘실용주의’와 반대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정치 혁명을 통해 쿠바공산당의 손아귀에서 정치권력을 빼앗아내는 것과 쿠바 혁명의 방어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을 성사시키기 위해 레닌-트로츠키주의 정당의 건설이 필요하고, 그 혁명은 현재의 불리한 역관계를 즉각 변화시킬 것이다. 혁명적인 진정한 직접 민주주의 기관의 수립은 쿠바 혁명을 다시 펄떡거리게 할 것이고, 라틴 아메리카 전체의 노동자 투쟁에 강력한 충격파를 던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미국 노동계급 내에서 그 비중이 점점 더 커져가는 스페인계 노동자들의 반향을 불러올 것이 틀림없다.


Defend the Cuban Revolution!

Published: 1917 No.11 (3rd Quarter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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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노동자국가(소련/중국/북한 등)의 사회성격 (IBT) 쿠바 혁명을 방어하자! 볼셰비키 2016.01.25 305
154 노동운동과 혁명정당 (IBT) 어떤 정당이 필요한가? 볼셰비키 2016.01.23 4554
153 한국 관련 문서들 (IBT) 북한을 방어하자! 4 볼셰비키 2016.01.12 1020
152 '좌익조직'들에 대한 분석/평가 사내유보금 환수운동에 대한 볼셰비키그룹의 입장 볼셰비키 2015.11.13 4207
151 세계정세 (IBT) 제레미 코빈과 계급투쟁정치 볼셰비키 2015.11.13 552
150 노동운동과 혁명정당 (IBT) 1920~1950년대 미국노동운동 속에서의 혁명활동 볼셰비키 2015.11.13 5303
149 세계정세 (IBT) 대서양무역투자협정(TTIP):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 볼셰비키 2015.09.27 1682
148 선거전술 (IBT) 맑스주의와 부르주아 선거 볼셰비키 2015.09.27 4978
147 노동자국가(소련/중국/북한 등)의 사회성격 (IBT) 루비콘강을 건넌 소련과 좌익의 반응 볼셰비키 2015.09.13 417
146 스탈린주의 (미국SWP) 인민전선 : 새로운 배신 file 볼셰비키 2015.08.26 5444
145 노동자국가(소련/중국/북한 등)의 사회성격 (IBT) 1989년 사태 25년 후 볼셰비키 2015.07.25 288
144 세계정세 (IBT) 인종주의 경찰 테러에 맞서서 노동 행동을! 볼셰비키 2015.07.25 309
143 강령 트로츠키주의란 무엇인가? 볼셰비키 2015.07.25 1301
142 노동자국가(소련/중국/북한 등)의 사회성격 '소련 붕괴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 청중토론 볼셰비키 2015.06.16 1900
141 노동자국가(소련/중국/북한 등)의 사회성격 소련 붕괴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 2 file 볼셰비키 2015.06.04 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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