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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테러

 제국주의 시대의 히스테리와 위선

 

 

<이하의 글은 2004년 10월 23일 국제볼세비키그룹(IBT) 회원 자쉬 데커가 행한 강연 내용을 편집한 것이다.>

  


 카알 맑스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리고 모든 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뚝뚝 흘리며” 자본은 세상에 태어났다([자본론] 제 1권 제 31장). 그러나 자본주의에 의한 봉건체제의 타도는 인류에게 거대한 전진이었다. 자본주의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대대적으로 가속화시켰고 기하급수적으로 노동생산성을 증대시켰으며 인간 개개인의 표현 영역을 크게 확장시켰다. 사적 소유라는 족쇄 때문에 자본주의가 인류 문화에 기여하는 정도는 제한적이고 기형적이다. 그러나 이전 계급사회들에 비해 자본주의는 엄청난 진보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 점을 간과할 수 없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봉건 귀족계급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의 승리를 확립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역동적인 새로운 사회체제가 허물어지고 있던 구 사회체제와 격돌했다. 이를 통해 상승하고 있던 부르주아 계급은 봉건 절대주의를 타도하고 맑스의 말대로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를 확립했다. 이 새로운 사회질서는 막시밀리엥 로베스삐에르의 악명 높은 테러 통치를 통해 정착되었다. 지금의 부르주아 학자들은 자코벵 “테러”를 불행스러운 과도한 행위였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도 자본주의 지배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폭력의 역할을 대체로 무시한다. 이들에게 인류 문명의 발전은 파괴 분자, 광신도, 기타 “악행을 일삼는 자들”만 없다면 전적으로 평화롭고 점진적인 진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과정에 등장했던 테러 통치는 다른 모든 중요한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해야 그 의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아더왕 궁정의 코네티컷 출신 양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깊이 하면 두 종류의 ‘테러 통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종류는 열정에 넘쳐 살인을 했고 두 번째 종류는 온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냉혹함 속에서 살인을 했다. 전자는 몇 개월 밖에 지속하지 못한 반면 후자는 천 년을 지속했다. 전자는 만 명에게 죽음을 안긴 반면 후자는 수억 명을 살해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구태여 표현하자면 사소한 테러, 일시적인 테러가 촉발하는 ‘공포들’에 대해 온갖 전율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기아, 추위, 모욕, 잔인함, 상심 등으로부터 겪는 평생의 죽음과 비교해서 도끼로 재빨리 죽이는 공포가 그리 대수로운가?”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체제가 피억압 인민에게 누적적으로 가한 폭력은 로베스삐에르와 그의 동료들의 일시적 폭력에 비해 그 규모가 무한했다. 이 때문에 자코벵파의 테러는 역사적으로 정당한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진보적 사회질서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백군과 이들의 제국주의 지원자들에 대항하여 10월 혁명 방어를 위해 볼세비키들이 동원한 “적색 테러”는 짜르 전제 하에서 자행되었던 일상적 테러와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것이 보통 러시아인들의 인식이었다. 레닌과 함께 볼세비키 혁명의 중심 지도자였던 레온 트로츠키는 내전 당시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모든 형태의 폭력 즉, 모든 전쟁과 모든 봉기를 (말로만) 거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자가 있다. 오직 이런 자만이 혁명 계급의 국가 테러를 ‘도덕적으로’ 비난한다. 왜냐하면 이런 자는 오직 그리고 단순히 위선적인 퀘이커교도(Quaker, 역자 주: 교회와 성직자 체계를 부정하고 예수 당시의 원시 기독교를 실천하는 개신교 교파의 신자로 모든 폭력을 부정한다.)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테러와 공산주의]

 

 ”폭력”의 사용을 포함하여 모든 것들을 혁명가들은 추상적인 도덕적 범주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발전에 끼치는 결과로 판단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시의 세계무역센터를 파괴한 테러 분자들의 공격은 진보적이기는커녕 대단히 반동적이었다. 이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대부분 보통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우리는 애도한다. 한편 이날 동시에 있었던 국방부 건물에 대한 테러 공격으로 제국주의 군대의 중핵인 국방부 관계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에 대해 우리는 결코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하여간 회교 근본주의자들이 쌍둥이 타워와 4대의 민간 항공기에 있었던 3천 여명의 죄 없는 민간인들을 대규모로 살해한 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혐오스러운 범죄였다.

 

이 테러 공격이 있은 후 9일 뒤에 미국의 상원 하원 합동회의에서 부시 대통령은 연설을 했다. 테러 공격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심을 이용하여 냉소적인 “테러대전”을 시작하겠다는 것이 그의 연설의 골자였다. 1945년 미군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투하해 의도적으로 수십만 명의 민간인을 살해하여 일본인들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다. 이 엄청난 테러행위는 일본인의 항복을 받고 소련을 위협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제국주의 군대의 총사령관이 된 부시는 이제 전체 “문명 세계’를 대신해 “테러”에 대한 전쟁을 시작하겠다고 제안한 것이었다. 그의 연설은 아리엘 샤론을 연상시킨다. 현재 이스라엘의 수상인 샤론은 1983년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으로 있을 당시 팔레스타인 인민의 난민촌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2천 여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이 학살자가 지금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존재하는 “테러 분자들의 소굴”을 일소하겠다고 말하면서 팔레스타인 인민을 살해하고 있다.

 

미국의 “테러대전”은 미 제국주의의 세계 지배에 모든 나라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우선 소위 불량국가들(rogue states)을 공포 속에 빠뜨리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피터 우스티노프는 아주 적절하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테러 분자들”은 폭탄은 가지고 있으나 이 폭탄을 투하하는데 필요한 공군력이 없는 집단이다. “테러 분자들”이라고 공식적으로 지정된 자들은 테러의 소매상에 불과하다.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이들에 비하면 테러 도매상이다. 허약한 제국주의 국가인 덴마크와 캐나다 등은 자기들 나름의 불성실하고 소위 “평화를 애호하는” 방식으로 이 강대국들을 지지하고 있다.

 

 

알카에다 조직의 기원

 

알카에다 조직은 테러 도매상과 소매상 사이의 관계를 아주 잘 설명하는 예이다.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한 알카에다 지도자들은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에 대항하는 성전(jihad) 과정에서 미국 중앙 정보부에 의해 훈련받고 장비를 제공받았다. 알카에다는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편 바로 이 시기에 이란과의 전쟁에서 사용하라고 미국과 영국은 사담 후세인에게 악명 높은 “대량살상무기”를 제공하고 있었다.

 

1978년 소련을 지지하는 아프가니스탄인민민주당(People’s Democratic Party of Afghanistan, PDPA)은 이 나라의 수도 카불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즉시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기 시작했고 빈민의 부채를 감소시켜주었으며 결혼할 때 신랑측이 내야하는 신부 몸값을 낮추었다. 또한 소녀들에게 학교 교육을 받을 것을 권장했다. 지주, 고리대금업자, 반동 회교 지도자 등은 이 조치를 자신들의 전통 지배 구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이들은 미국 중앙 정보부의 지원을 받아 저항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1979년 소련은 군대를 아프가니스탄에 진주시켜 민족주의 좌파 정권을 지원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국가안보 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나중에 이렇게 실토했다: 소련이 개입하기 몇 달 전에 이미 미국은 회교 지도자들과 지주들의 저항을 적극 지원하고 있었다:

 

 ”카불의 친소 정권에 저항하는 회교도들에게 비밀원조를 제공하는 첫 명령서를 카터 대통령이 서명한 때가 바로 1979년 7월 3일이었다. 이날 나는 대통령에게 메모를 보내 이 원조가 소련의 군사 개입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밀원조 작전은 아주 좋은 생각이었다. 소련을 아프가니스탄 덫에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르 누벨 옵세르바뙤르, 새로운 관찰자]지, 1998년 1월 15일-21일

 

 미국은 수 십억 달러를 들여 10만 여명의 과격파 회교 무자헤딘 전사들을 훈련시키고 장비를 제공했다. 이들의 지도자들 일부는 1970년대에 카불 대학교에서 베일을 쓰지 않은 여성들의 얼굴에 황산을 뿌린 극악한 자들이었다. 라널드 레이건은 아프간 반동들을 “자유의 투사들”이라고 찬양했다. 그리고 이들이 미국의 건국 시조들과 “도덕적으로 같은 수준의 위대한 인물들”이라고 평가했다.

 

맑스주의자들은 아프간 내전에서 지지할 세력이 있었다. 우리는 무자헤딘 반동들에 대해 소련군과 인민민주당의 군사적 승리를 촉구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소련의 집단적 소유가 확대되었다면 이것을 환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퇴보한 노동자국가였던 소련의 1991년 8월 붕괴를 예시하는 것처럼 크렘린궁의 관료집단은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대를 철수시켜 아프가니스탄 개입을 포기해버렸다.

 

소련이 물러난 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관심을 잃었다. 그리고 무자헤딘 분파들 간에 유혈 내전이 벌어져 1996년 파키스탄이 지원한 탈레반 분파가 정권을 장악했다. 미국은 이 지역의 안정에 기여한다고 생각하여 탈레반 정권을 환영했다. 이 지역은 소련이 붕괴한 후 카스피해에 면한 곳곳에서 거대한 석유 및 천연가스 매장지가 발견되면서 다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었다. 미국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송유관 건설 가능성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송유관 루트는 미국이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이란과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려는 러시아를 우회하는 장점이 있었다.

 

탈레반 정권이 극악한 탄압 정권이고 여성을 박해하는 신정체제라는 사실은 자유의 사도를 자처하는 미국에게는 전혀 관심 밖이었다. 탈레반 정권이 미국에게 문제가 된 유일한 사항은 이 정권이 미국의 말을 순순히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9월 11일의 테러 공격이 발생하기 훨씬 전에 탈레반 정권을 타도하고 친미 괴뢰정권을 수립할 계획이 마련되고 있었다. 결국 테러 공격으로 세계무역센터가 파괴되자 탈레반 정권을 제거하고 과거 소련이 차지했던 중앙아시아에 일련의 군사기지를 설립할 수 있는 핑계거리가 확실히 제공되었다. 물론 이 모든 조치들은 “테러”를 일소한다는 미명 하에 시행되었다. 이처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진짜 이유는 이 지역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미국의 군사 기구를 심는 데에 있었다.

 

한편 러시아는 10년이 넘게 체첸인의 민족독립운동을 분쇄하는 반동적 전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 군대가 체첸의 장기적 게릴라 전쟁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미국은 고소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회교도 체첸인들을 “테러대전”에 목표물로 포함시키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2004년 9월 1일 러시아 베슬란에 위치한 학교에서 체첸 게릴라들은 자살 폭탄 테러를 자행하여 다수의 아동들을 끔찍하게 학살했음에도 미국의 대기업 언론은 체첸인의 저항에 대한 러시아의 잔혹한 전쟁을 승인하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에 대한 절망과 분노” 때문에 체첸인들이 자살폭탄 공격을 자행한다고 평하면서 [뉴욕 타임즈]지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는 체첸인의 분리독립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를 완고하게 거부하고 있다. 푸틴 씨 역시 이 상황에 책임이 있다. 잔인한 군사 공격, 괴뢰 정권 수립, 조작 선거 등을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그는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뉴욕 타임즈]지, 2004년 9월 14일

 

 미국의 여타 언론들과 마찬가지로 [뉴욕 타임즈]지는 다음의 질문에 대해 자기가 주장하는 넓은 시야를 갖는 것을 “완고하게 거부하고 있다”: 왜 그렇게도 많은 수의 이라크인들이 미 점령군을 공격하기 위해 목숨을 버릴 용기를 보이는 것일까? 부시 대통령은 진짜 멍청하게 이렇게 주장한다: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때문에 “테러 분자들”은 미국을 증오한다. 당연히 그의 주장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미 공군 중령으로 제대한 라버트 보우먼은 훨씬 더 설득력이 설명을 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부분에서 미국 정부가 독재, 노예상태, 인간 착취를 옹호하기 때문에 미국이 테러 분자들의 목표물이 되고 있다. 우리가 증오의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테러 분자들의 목표물인 것이다. 그리고 미국 정부가 증오스러운 짓거리들을 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셔널 카톨릭 기자]지, 1998년 10월 2일

  

‘증오스러운 일들’

 

미국과 기타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은 세계의 피억압 대중에게 난폭하고 “증오스러운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계 인구의 절반을 하루 2 달러도 되지 않는 수입으로 살도록 내몰면서 몇 줌 밖에 되지 않는 억만장자들을 위해 굴러가는 사회체제는 대대적이고 끊임없는 폭력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도한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2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 수는 9월 11일 뉴욕 시에서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보다 더 많아졌다. 이라크인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리기 위해 미국은 바그다드를 대대적으로 공습하면서 2003년 3월 기습적으로 전쟁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기꺼이 함께하려는 연합군”에 의해 수만 명의 이라크인이 살해되었다. 1991년 걸프전에서는 제국주의 군대가 약 20만 명의 이라크인을 살해했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한 제국주의 연합군을 대신해서 유엔이 경제 제재를 실시한 결과 다수의 어린이를 포함한 백만 명의 이라크인이 1990년대에 목숨을 잃었다.

 

작년 봄 미국 용병 4명이 팔루자에서 살해당하자 미국은 이 도시를 공격하여 600명의 민간인을 죽였다. 지난 몇 주일에 걸쳐 미국 공군기들은 팔루자의 주택지역을 무자비하게 공습해왔다. 이것은 오랫동안 예상되었던 공격의 서곡이며 이라크인들의 “충심 어린 지지를 얻는 것”과는 진짜 거리가 멀다. 이들을 공포에 몰아넣어 굴복하게 만드는 것이 이 공격의 진짜 목적이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은 제대로 굴복하지 않고 있다. 어느 이라크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공격을 받은 미군이 반격할 때 이들은 자기를 공격한 자들을 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들만을 골라서 쏜다. 이라크인들이 미군을 지독하게 증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무자헤딘 전사들을 진심으로 지지한다”([뉴욕 타임즈]지, 2004년 9월 14일).

 

바그다드의 아부 그라이브 감옥과 기타 다른 곳에서 저항 세력 포로들은 고문, 강간, 살해 등을 당했다. 최근에 보도된 이 잔인한 행위는 제국주의자들의 테러가 초래하는 공포 상황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테러대전”을 벌이면서 부시 행정부는 “불법 전사”라고 자기들이 자의적으로 규정하는 포로에 대해서는 제네바 협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에 억류되어 있는 포로들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은 [뉴욕 타임즈]지가 부드럽게 표현한 “잔인한 심문 수법” 즉 고문을 정기적으로 당할 수도 있다. 지난 달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폴 컨 장군은 이렇게 밝혔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억류한 100명이나 되는 포로들이 공식 기록에는 나와있지 않다; 이들에 대한 고문이나 처형에 대해 조사를 받을 경우 당혹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이다([워싱턴 포스트]지, 2004년 9월 10일).

 

제국주의 지배는 언제나 잔인한 억압을 동반해왔다. 프랑스와 미국의 제국주의자들은 무려 2백만의 월남 노동자와 농민을 학살한 후 반혁명 장기전에서 패배했다. 미국 중앙정보부가 지원한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 쿠데타로 최소한 50만이 학살당했다. 역시 미국이 지원한 칠레의 군사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수만 명을 살해했다. 1980년대에 역시 미국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니카라과에서 “반군” 테러 집단은 민족주의 좌파 산디니스타 정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수천 명을 죽였다. 여기에는 교사와 보건 인력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부르주아 언론에는 이런 사례들이 “테러”로 보도되지 않는다.

 

몇 달 전에 부시 행정부는 중앙정보부와 오랜 관계를 가져온 반공 쿠바인 3명을 미국에 입국시키라고 명령했다. 2000년 피델 카스트로가 수십 명의 쿠바 대학생들과 함께 파나마를 방문했을 때 이들은 33 파운드나 되는 폭탄을 터뜨릴 계획을 하고 있다가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았었다. 이런 종류의 테러 분자들을 미국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미국의 “테러대전”은 다수의 테러 분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아주 좋은 예가 바로 아야드 알라위이다. 그는 이라크 “수상”으로 미국이 임명한 자로 오랫동안 중앙 정보부와 긴밀히 협력해왔다. 이런 자를 국제 테러에 대한 전쟁에 필요한 “강력한 지도자”라고 부시는 칭찬했다. 1970년대에 알라위는 사담 후세인을 위해 무하바라트 살인 부대를 운영했다. 1990년대에는 중앙 정보부의 돈을 받으면서 여러 초등 학생들을 죽인 경우를 포함해 이라크에서 여러 차례 폭탄 테러를 조직하는데 협력했다.

 

“테러대전”에서 부시의 가장 주요한 동지는 영국의 수상 토니 블레어이다. 1920년대에 이라크의 인민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영국 공군기들은 민간인 거주지역에 겨자 독가스탄을 투하했다. 이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지금 블레어는 이라크 침공을 합리화하기 위해 후세인이 “자기 민족”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며 분노하는 체했다. 그러면서도 영국과 미국이 애초부터 이 무기들을 후세인에게 제공했다는 사실을 그는 언급하지 않았다.

 

캐나다의 군사 계획자들과 31명의 병사들은 미/영 연합군과 함께 이라크 침공에 참여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캐나다는 이 전쟁에 불참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미국의 항공모함들을 보호하기 위해 1,300명의 수병을 실은 캐나다 군함 3척이 페르시아만에 모습을 나타냈다. 캐나다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미군을 이라크로 보낼 수 있도록 3천명의 병사들을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낸 것이었다. 캐나다 주재 미 대사 폴 쎌루치는 자유당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를 완전히 지원하고 있는 46개 국가들 대다수보다 캐나다는 간접적으로 더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글로브 앤드 메일]지, 2003년 3월 31일). 캐나다는 말하자면 “재칼(jackal)” 제국주의 국가이다. 거대 제국주의 국가 맹수들 뒤에서 따라가다가 이들이 뜯어먹다 남긴 고기를 처분하는 재칼과 똑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의지를 강제하기 위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위해 제시한 변명은 이 나라가 테러 분자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임박한 미국의 침공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 조치를 취하면서 탈레반 정권은 빈 라덴과 그의 동료들을 추방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미국은 이 제안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알카에다 조직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중앙 아시아와 중동을 장악하려는 거대 군사 전략의 일부였다.

 

2001년 9월 [분기별 국방 평가보고서]에서 미국 국방부는 “핵심 시장과 전략적 자원에 대한 접근”이 갖는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통령의 지휘 하에 국가와 비국가 단체들을 포함한 어떤 적에 대해서도 미군은 미국과 그 연합국들의 의지를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해야한다. 미국의 전략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적대국가의 정권을 교체하거나 외국 영토를 점령하는 등 적을 결정적으로 패배시켜야 한다.”

 

 소위 “테러대전”의 목표가 된 나라들의 대부분은 중요한 석유 매장지에 위치해 있거나 이것과 관련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이라크는 첫 번째로 매장량이 많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바로 이웃이다. 이라크의 한쪽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란도 중요한 석유 및 천연가스 매장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라크에 대한 범죄적 전쟁을 벌인 1주년을 기념하여 부시는 이렇게 주장했다: “테러 분자들”의 “궁극적 야망”은 “중동 인민들을 통제하고” “대대적인 테러 무기들을 통해 나머지 세계를 협박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이 주장이야말로 미국의 대외정책을 핵심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부시 독트린에 의하면 미래 언제든지 테러 분자들의 손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대량살상무기”를 소유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나라를 미국은 선제 공격할 권리가 있다. 물론 이것은 이라크를 침공할 때 내세운 변명이었다. 한편 미국은 “불량국가들”을 핵무기로 선제 공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외부로 유출된 국방부 문서에 따르면 2002년에는 7개국이 이 목록에 포함되었다: 중국, 러시아, 이란, 이라크, 북한, 시리아, 리비아([데일리 미러]지 (런던), 2002년 3월 11일). 물론 쿠바도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 나라가 핵공격 목표물에 포함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미국 본토의 플로리다주에 대단히 근접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중국, 쿠바, 북한 등에서 집단적 소유체제를 전복시키고 자본주의를 복귀시키는데 제국주의자들은 열을 올리고 있다. 노동자들이 정치혁명을 통해 이 체제들을 지배하는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을 타도할 것을 혁명가들은 촉구한다. 그러나 또 한편 내부의 반혁명과 제국주의 공격으로부터 이 체제들을 무조건 방어할 것을 역시 촉구한다. 그리고 이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할 권리를 방어한다.

 

 

국내의 전쟁

 

“테러대전”은 두 개의 전선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전쟁은 미국의 군사력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시킴과 동시에 국내에서 정치적 저항 특히 좌익과 노동운동으로부터의 저항을 약화시키고 이를 통해 미국 지배계급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이윤의 사회적 토대는 물질생산 과정에서 살아있는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사회적으로 필요한 생산활동이 없으면 자본주의는 기능을 정지한다. 지구를 지배하려는 제국주의 강대국은 우선 자기 노동계급을 굴복시켜야한다.

 

“테러대전”은 정치적 색채에 따라 타격 대상의 우선 순위를 정한다. 이 전쟁은 외부의 위협에 대한 피억압자들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이들이 억압자를 자기 동지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것은 지배자들이 오랫동안 애용해온 지배방식이다. 현재 북미 특히 미국에서는 외부의 적에 대한 두려움을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증폭시키려는 캠페인이 계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 결과 다수의 미국인들은 보통의 경우 수용하지 않을 광범위한 억압 조치들을 말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정교한 불심 검문, 밀고 체계, 신용카드와 도서관 기록과 보건 기록 등 개인 정보를 캐내는 일, “황색” “적색” 경보 발동 등을 테러 공격의 가상 위험에 대비한 조치들로 그냥 인정하고 있다.

 

2002년에 테러 공격으로 살해된 사람이 미국에는 몇 명인가? 2003년에는? 올해는? 사실은 한 명도 없다. 그러나 미국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민주적 권리를 침해하는 법들이 눈 더미처럼 늘어나고 있다. 자본가들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환상을 맑스주의자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인신보호법, 그리고 기타 민주적 권리들이 처절한 사회투쟁을 통해 쟁취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들을 지배계급이 침해하지 않도록 확실히 지켜야 한다.

 

2001년 12월 상원 청문회에서 미국의 법무장관 잔 애쉬크로프트는 시민적 자유 침해에 불만을 감히 터뜨리는 자들을 공개적으로 공격했다: “당신들의 전술은 테러 분자들을 도울 뿐이다. 왜냐하면 국민 단합을 해치고 우리의 결의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적들에게 총탄을 제공하고 우방들을 머뭇거리게 하기 때문이다”([CNN.com], 2001년 12월 7일).

 

소위 “테러대전”은 노동조합, 이민자, 소수민족 특히 회교도, 남아시아인, 아랍인 등에 대한 공격을 의미했다. 2001년 9월이래 5천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테러 용의자”로 미국 법무부에 의해 자의적으로 구금되어왔다. 이들 가운데 한 명만이 테러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로 배심원에 의해 유죄평결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달 디트로이트의 연방 판사는 이 유죄평결을 증거 부족과 검찰 측의 심각한 규정위반을 이유로 기각했다.

 

미국 정부는 회교도, 좌익 인사, 반전 활동가, 기타 “반체제 인사들”에 대해 비밀리에 그리고 자의적으로 “비행 금지”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미국에서 비행기 이용이 금지되었다. 이것은 진짜 정치 탄압이다. 노동운동은 민주적 권리에 대한 이런 공격들 모두에 대해 투쟁해야할 핵심적 이유가 있다. 소수자에 대한 공격은 모든 피억압 피착취 인민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애국자법의 적용 범위를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이 법에 따르면 “국내 테러”는 “위협이나 강제를 통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거나 민간인을 위협하거나 강제하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파업 방어선, 파업, 시위 등에 적용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문구가 다듬어졌다. “국내 안보”에 핵심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집단들에게 노동조합 결성의 권리를 금지하는 제안들이 미국 의회에 떠돌고 있다([워싱턴 포스트]지, 2004년 9월 27일). 그런데 정부는 이 범주를 확대하여 항만 노동자를 비롯하여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까지 포괄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 “테러대전”이란 미명 하에 정부가 앞장서서 노동조합을 파괴하라는 것이 이 제안의 내용이다.

 

올해 여름에 개최된 민주당과 공화당 전당대회 기간을 통해 강화되고 있는 미국의 권위주의적 분위기가 명백히 드러났다. 양당의 전당대회는 시위자에 대한 경찰의 대대적인 협박, 경찰의 체포용 닭장차, 시위 예방 차원의 체포, 기타 반대자들을 탄압하려는 선제 조치들을 선보였다. 최근 미국 연방조사국(FBI)은 각종 인디미디어 사이트들을 관리하는 인터넷 서버 컴퓨터들을 압수했다. 이 사이트들이 유럽의 비밀작전 경찰들의 폭력행위를 폭로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유출시켰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테러”와 관련하여 인디미디어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토론토에서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고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2000년 6월 퀸즈 공원에서 경찰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경찰청장 줄리언 판티노는 [빈곤 퇴치를 위한 온테리오주 연대] 단체가 “테러” 조직이라고 비난했다.

 

9월 11일 테러 여파로 캐나다 정부는 권위주의적 “테러방지법”(C-36 법안)을 제출하여 이것을 법으로 통과시켰다. 이 법은 테러를 “개인, 정부, 국내외 단체 등에게 어떤 행위를 하도록 또는 하지 말도록 강요하는” 행위 (또는 행위 미비)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애국자법과 같이 이 법은 테러 행위를 너무 넓게 규정하여 거의 모든 행위나 행위 미비가 테러 행위에 포함될 수 있다. 한마디로 경찰 탄압 백지 위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혁명만이 자본주의 테러를 끝장낼 수 있다!

 

뉴욕의 사무직 노동자, 예루살렘의 피자 상점 고객, 러시아의 어린 학생 등 모든 죄 없는 민간인에 대한 어떤 공격에 대해서도 맑스주의자는 단연코 반대한다. 그리고 노동계급과 피억압 인민에 대한 폭력이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쟁을 약화시키는 모든 행위 등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폭력 사용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평화주의는 억압자들이 피억압 인민에게 권장하는 이데올로기이다. 트로츠키의 표현에 따르면 평화주의는 노동계급을 “마비시키는 마약”이다.

 

이라크 저항 세력이 제국주의 점령군을 공격하면 자본주의 언론과 정치꾼들은 이것을 “테러 공격”이라고 규정한다. 아프가니스탄과 마찬가지로 이라크에서도 제국주의 점령군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투사들 대부분은 대단히 반동적이고 지극히 반(反)노동계급적 이데올로기를 수용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이라크 인민들은 외국 침략자들과 그 하수인들의 강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지금 이라크에서 문제는 민주주의 대 독재체제가 아니다. 미/영 제국주의 “연합군”이 식민지 지배를 다시 강요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진짜 문제이다.

 

“테러대전”은 기본적으로 미국 지배계급이 세계를 지배하는 전쟁을 선전하기 위해 의도된 선전술이다. 이것은 해외의 군사적 모험과 국내의 잔인한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사물이 그 성격에 맞게 이름이 불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착취는 공정한 교환이요 전쟁은 평화이고 점령은 해방이다. 소위 테러대전도 예외가 아니다. 이것은 실제로는 테러를 사용하는 전쟁이다.

 

매일 4만 명의 아동을 굶어죽게 만드는 이 고질적으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체제를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혁명뿐이다. 자본가들과 이들의 선전가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시장의 폭정에 대한 “대안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다. 인류의 절대 다수에게 자본주의는 테러 체제이다.

 

혁명 지도부와 함께 할 경우 노동자들은 봉기를 일으켜 자본주의를 타도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진실을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이 입증했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지도한 사회주의 혁명조직인 볼세비키당이 있었기 때문에 노동계급은 1917년 10월 혁명에서 승리했다. 착취자의 생산수단을 몰수하고 새로운 세계질서에 길을 열어줄 투쟁을 올바로 지도할 능력을 갖춘 대중적 혁명 노동자정당의 정치적 기초를 세우는 것, 바로 이것이 사회주의자의 임무이다. 이 새로운 세계질서에서는 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가 모든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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