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수자 해방운동

성매매방지법과 노동계급

by 볼셰비키-레닌주의자 posted Dec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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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방지법과 노동계급 

  

 

성매매특별법 그 후 6개월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의 여성단체가 주도하고 국회의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어 제정된 성매매방지법(‘성매매 알선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2004년 9월 시행된 이후 6개월 가량 지났다. 그들은 이 법의 의의와 목적을 ‘1961년 만들어진 윤락행위등방지법이 더 이상 변화하는 현실과 여성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성매매문제에 대응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여 성매매알선범죄를 엄중 처벌하고 성산업 규모를 축소시켜 나감과 동시에 피해자를 적극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용부호 안은 <성매매방지법의 올바른 시행을 위한 긴급토론회 2004.10> 자료집 중에서)

하지만 6개월여 지나면서 가장 상징적인 장소인 집창촌에 대한 타격 외에 애초의 목표라고 내걸었던 성산업 규모를 축소시키는 문제도 그리고 여성 단체들이 한결같이 그 표면적 피해자로 지적했던 성매매 여성들을 적극 보호하는 문제도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그 법을 주도하고 집행했던 노무현 정부와 여성단체조차도 이 법의 시행으로 인해 35만~150만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성매매여성들이 사라지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성매매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이 땅에서 성매매를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삶의 여건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그리고 ‘성매매여성에 대해 아무 대책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색내기 용으로 배정된 예산이 성매매를 그만두고 보통의(?) 삶으로 성매매여성들을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정부와 여성 단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으로 인해 ‘성매매는 범죄이다’라는 사실을 온 사회에 알린 것을 커다란 성과라고 자부하고 있다.

 

 

 손익계산서 

이 법으로 인해 이 나라의 국가는 하층민을 옴짝 못하게 할 또 다른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게 되었다. 이번 법으로 국가는 모든 남성, 특히 안전한 성매수의 시간과 공간을 갖지 못하는 하층 남성을 잠재적이거나 현재적인 성범죄자로 만들어 성적인 문제로 잡아들이거나 정치적으로 매장시킬 무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법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대표로 하는 일선 공권력은 성산업에서 떨어지는 짭짤한 떡고물을 앞으로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산업은 사라지지 않고 대신 이전보다 엄격히 불법화되어 있는 현실은 기존 업주들로 하여금 경찰과 이전보다 더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도록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커넥션을 통해 성산업에 종사할 수 있는 힘있는 포주는 이전보다 더 막강한 경제외적 강제를 성매매 여성들에게 행사할 수 있게 되고,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할 근거가 될 것이다.

자신은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로 성매매를 하는 지위로까지는 경제적 처지가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거나 실제로 그러한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 또한 이 법의 수혜자 중의 하나이다. 그들은 이 법으로 인해 잠재적이거나 현실적인 바람기를 가진 남편을 통제할 수 있는 법적 무기를 얻은 셈이다.

페미니즘, 정확히 말해 부르주아 여성운동 진영은 이 번 법안으로 인해 자신들이 부르주아 사회의 강력한 지지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막강한 권력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그리하여 여성 운동의 경력자들은 장관 등 국가권력의 중요한 인력 공급원이 되고 있고, 앞으로 이 현상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현 정부와 ‘여성단체’들이 보호하고자 한다는 바로 그 성매매여성들(특히 집창촌에 있는)이 가장 큰 피해자였다. 그들은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나서보기도 했지만, 정부와 여성 단체는 ‘그 법으로의 투항자’ 외에는 그들과 대화하는 것조차 외면했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단속이 아니라, 당장은 합법화, 나아가서는 이혼여성과 실직 여성에 대한 생계 보장, 남성과 동일한 임금의 적용,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필요한데 현 정부와 ‘여성단체’는 이러한 것을 고려한 적도 실시할 의지도 없다.

두 번째 피해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경제적 능력이 없어 결혼할 처지가 못 되는 하층 남성 노동자들이다. 성매매여성이 적게는 30만에서 많게는 150만이라는 것은, 돈 없이는 성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적령기의 남성이 또한 그 만큼이라는 것을 말한다. 안전하게 성을 매수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그들은, 성매매방지법에도 불구하고 망신살을 감수하고 모험을 하거나, 아니면 전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다.

세 번째 피해자는 모든 남성들이다. 그들은 사회구성원의 가장 내밀한 사적인 영역도 처벌할 수 있게 한 이 법으로 인해, 성매수를 할 수 있는 조건이 극히 한정적인 여성과 달리 잠재적인 범죄자이거나, 과거에 범죄를 저지른 자이거나, 현행범이거나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법은 국가보안법처럼 중세의 마녀 사냥과 비슷한 상태의 사회심리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이 법에도 불구하고 상층 남성은 별로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안이 통과된 후 경찰이 뜬 곳은 사창가, 이발소, 안마시술소 등이었지 호텔이나 고급룸살롱 그리고 연예비사로 오르내리는 재벌들이나 사회 최상층의 포주 노릇을 한다는 여러 방송 기획사나 여의도 근처가 아니었다. 다른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성적 자유도 철저히 계급적이라는 사실을 이 법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국 여성의 현실

계급 사회, 현재의 자본주의 아래에서 여성들의 처지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권력과 특권을 누리는 여성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도 남성과의 연줄을 통해서나 가능하다. 여성노동자 대부분은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이라는 이중의 멍에를 지고 있다. 유엔 통계에 의하면 여성은 전세계 노동의 3분의 2를 담당하고 있으며 세계 식량의 약 45%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전체 소득의 10%만을 벌고 있으며 재산은 1%만 소유하고 있다.”(‘국제볼세비키그룹(IBT)’의 기관지 [1917]의 <맑시즘, 페미니즘, 여성해방>에서 재인용)

한국에서의 여성의 처지는 더욱 열악하다. 식민지 자본주의로 특징지어지는 한국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들의 실업률은 50%를 넘으며, 설령 직장을 얻는다 하더라도, 530만 여성노동자 중에서 380만 명 즉,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이다. 기혼여성의 80%가 비정규직이며,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남성노동자의 62%에 불과하다. IMF시절에 보았듯이 정리해고 명단의 첫순위에 꼽히는 것도 여성들이다.

그것뿐인가. 1997년부터 시작된 노동자에 대한 신자유주의 맹공 이후 알다시피 엄청난 실업자가 양산되었고, 신용불량자가 400만을 넘나드는 현실에서 수많은 가정이 경제적 문제로 이혼했다고 한다. 이혼한 주부의 경우 이혼 수당을 비롯한 사회안전망이 전무한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과 같이 살아가는 것은 험난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차세대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출산장려운동으로 호들갑을 떠는 상황에서도 20대 여성들의 25%가 애를 낳지 않겠다고 하는 것(한겨레 2005. 3. 20)은 이러한 한국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 한국에 성매매 산업을 창궐하게 하는 원천인 것이다.

 

 

남성 우월주의를 조장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력(일차적으로 성인 남성의)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재생산할 시스템이 절실하다. 그리고 이윤추구를 최고의 목표로 하는 자본은 그 비용을 가급적 적게 들일 수 있는 방법을 선호한다.

“출산과 육아의 능력이 여성에게만 있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사이의 자연스러운 노동분업이 원시사회부터 발생했다. 그러나 이것이 자동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격하시키지는 않았다. 계급사회의 등장과 함께 여성들은 서서히 정치 및 경제 활동에서 배제되고 가정에 묶이는 신세로 전락했다. 사회와 시대마다 여성 억압의 형태, 정도, 강도는 다르지만 이 억압은 언제나 다음 세대의 생산이라는 여성의 역할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이 억압은 이어서 궁극적으로 지배적 생산양식과 이에 따르는 사회구조의 필요에 의해 고착되었다.

사회 유지에 필요한 가사노동을 돈도 받지 않고 제공하는 역할 때문에 여성은 자본주의 “자유시장” 체제에서 억압당하고 있다. 이 역할에는 식사와 의복과 청소에 대한 일차적 책임, 유아와 노인과 병자의 간호, 가족 성원 전부의 정서적 심리적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 등이 있다. 지배계급이 보기에 가정은 다른 어떤 방식보다 이 필수적 기능을 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가장 값싸게 제공하는 단위이다. 따라서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는 가정을 기본 단위로 설정하여 옹호해야할 절대적인 필요를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여성 억압의 물질적 토대이다.”–[1917], 위와 같은 글

위의 글에서처럼 산업혁명 후 노동력을 당장의 필요를 위해서만 무자비하게 혹사하던 자본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그 해법을 찾아내게 된다. 그것은 핵가족 제도의 보편화와 여성의 노동력 재생산에의 특화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구성원들에게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현모양처’가 모범적인 여성상이라는 사고가 주입된다. 여성은 식사와 세탁, 편한 잠자리 등의 무료서비스를 제공하여, 직장에서 혹독한 노동으로 인해 탈진한 남성노동자의 노동력을 다음날 아침까지 재충전시킬 것을 자신의 의무로 강요받는다. 한편 퇴사의 압박, 상관의 인격적 모욕, 도구화 등으로 황폐해진 남성의 마음은 집안에서만의 잠깐 동안의 대장 놀이(가부장 놀이)를 통해 존엄성을 회복할 것을 권장 받는다.

게다가 여성에 대한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노동력을 관리하기에도 편리하다. 즉, 호황기에 그들의 노동력을 싸게 끌어다 이용하고, 불황기에는 바로 그 편견을 이용하여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처분할 수 있다. 지난 IMF 시기를 보라. 정리해고 1순위는 여성노동자들이었다. 하지만 막강하게 구축된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그들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바로 이런 이유들로 인해 남성우월주의는 우리 사회에 봉건적 관계가 아닌 자본주의적 관계를 유지하기에 꽤 괜찮은 사상과 문화로 매스미디어, 학교교육과 가정교육, 법제도, 직장문화 등을 통해 옹호되고 재생산되어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남성(아버지나 남편)과의 연줄을 통해서 권력과 특권을 누리는 극소수의 여성을 제외하고, 노동자 아버지나 노동자 남편을 둔 대다수 여성들이라면 그 지위는 늘 사회의 최하층이 되어왔다.

 

 

페미니즘의 대응

페미니즘은 계급 모순을 부정하거나, 성적 모순이 계급 모순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며 운동이다. 페미니즘은 성적 차별의 그 역사적·계급적 성격을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간과하였기 때문에, 이 운동은 비과학적인 다른 모든 사상이 그러하듯이 기존의 현실 체제를 옹호하거나 투항하는 경향에 빠질 수밖에 없다. 20세기 최대의 노동계급의 패배였던 1991년 퇴보한 노동자국가 소련의 패망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소련의 붕괴로 인해 사회주의에 대한 패배주의가 만연해진 한국의 운동 풍토 속에서 패미니즘은 환경 운동 등과 함께 ‘부문 운동주의’에 빠져 문제의 근원이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더 이상 제기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페미니즘은 점차로 남편이나 아버지에 의존하여 자신의 지위를 보장받는 부르주아여성과 실력은 있으나 남성우월주의 장벽에 대한 좌절감에 사로잡힌 소부르주아 여성들을 위한 운동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번 성매매방지법은 그러한 한국 여성운동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성매매방지법을 주도하거나, 지지하는 여성 운동 단체나 운동가들은 위에서 언급한 여성에게 강요되는 우리의 사회 현실 즉, 수많은 하층 여성들이 성매매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혁파해야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한사코 외면한다. 그들은 IMF 이후 늘어난 수많은 노숙자와 신용불량자, 소련 등 몰락한 동구권 국가들에 이어 세계 5위에 이르는 자살율, 증가 추세에 있는 범죄 등의 문제들은 성매매문제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사고한다. 다음 글을 살펴보자.

“서구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탈산업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로 소위 ‘인적 자본’에 대한 논의가 있다. 지식 정보 사회에서 인적 요소는 그 이전 어느 사회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과 획득이 가능한 극소수를 제외한 ‘인간’의 대부분은 탈 산업적 세계화 시대 세계에서도 여전히 ‘자본’이 아니라 ‘상품’으로서 기능한다. 그 ‘인간 상품’ 중 가장 반인간적이면서도 소위 세계화 시대에 가장 이윤을 많이 남기는 상품이란 바로 ‘여성’이다. 그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여 사고 파는 성매매 산업은 이제 그 어느 ‘산업’보다도 ‘국경’을 쉽게 넘나들며 세계적 차원에서 막대한 이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구 사회주의 국가, 그 중에서도 러시아의 경우 그 문제의 정도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은 지 오래다.

미국 빙햄턴 대학 사회학과의 제임스 페트라스 교수는 자신의 글에서 비전시 상황에서 한 나라의 경제가 이토록 빠르고 철저하게 무너진 경우는 ‘러시아 자본주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를 포함한 구 사회주의 체제 국가들은 그 화려해진 겉모습들과는 달리, 내부적으로 심각한 사회 경제적 파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중 다수 인구의 빈곤과 사회 양극화, 공공 시스템(의료, 주택, 교육 등등)의 붕괴, 각종 질병의 창궐과 테러와 살인 등 범죄의 일상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러시아 자본주의’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과 이스라엘, 유럽의 은행, 유럽의 땅 투기꾼, 미국의 제국주의자, 군부, 초국적 기업과 이익을 같이 하는 러시아 마피아 과두 지배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러시아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병폐를 악화시키는 일을 자행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마약 및 무기 거래, 돈 세탁보다 안정적이고 안전한 성매매 산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함으로써 성매매 여성들을 양산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가장 반인간적이면서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상품, ‘여성’> [미디어 참세상]에서 인용

이 글은 붕괴 이후의 러시아의 참상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으며, 성매매가 어떤 경로로 왜 성행하게 되는지를 자연스럽게 짐작하게 해준다. 즉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심각한 사회 경제적 파탄, 다수 인구의 빈곤과 사회의 양극화, 공공 시스템(의료, 주택, 교육 등)의 붕괴’는 ‘미국과 이스라엘, 유럽의 은행, 유럽의 땅 투기꾼, 미국의 제국주의자, 군부, 초국적 기업과 이익을 같이 하는 러시아 마피아 과두 지배 집단’ 등이 국가소유 체제의 붕괴 이후의 러시아의 임자 없는 자산을 다투어 나누어 가지게 하고, 나아가 이들로 하여금 ‘안정적이고 안전한 성매매 산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함으로써 성매매 여성들을 양산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조건을 형성한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쓴 논자가 유물론적 분석과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쉽게도 결코 아니다. 위의 ‘탈 산업적 세계화 시대’라는 대단히 기묘한 시대 인식이 예고하는 것처럼, 결국 자신이 제기한 자명한 원인과 상관없이 교묘한 곡예를 거쳐 예의 그 관념론적인 도덕주의적 인식과 결론을 끌어낸다. 뒷부분을 들어보자.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설사 성매매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건전 가라오케라 할지라도 여성들이 돈에 의해 남성의 노리개 감으로 존재하여 남성의 옆에서 시중을 들어야 한다면 이 역시 그 자체로도 여성에 대한 모독이며 폭력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자 하며, 따라서 그러한 사고를 지적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한인 소유 성매매 업소를 철폐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여성들이 남성들의 술자리에 반드시 상품으로서 골라져 옆에 앉아서 온갖 시중을 들어야 하고 술 주정을 받아 주어야 하며 그들의 성적 희롱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 하는 수많은 한인 남성들의 착취와 폭력에 대한 반대는 어떠한 방해가 있더라도 중단 없이 지속될 것이다. 남성들의 성적 본능 해소를 위한 극단적 인간 모멸, 여성 비하적 폐쇄적 남성만의 성 해방구를 철폐하는 문제는 이제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문제제기 되어야 할 시점이다. ……꼭 승리하는 싸움을 만들어 나갈 것을 다짐해 본다.”

논리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진실을 진실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서로 호응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글은 위에서 자신이 지적한 문제의 원인에서 해결책을 찾지 않고 결국은 ‘남성들의 성적 본능 해소를 위한 극단적 인간 모멸, 여성 비하적 폐쇄적 남성만의 성 해방구’라는 그 페미니즘적 인식으로 회귀해 버리고 만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성매매와 같은 처지로 전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또한 그럴 것인 부르주아 또는 소부르주아 여성들에게 성매매여성의 생존권은 더 이상 고려의 대상이 아닌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은 바로 이 부르주아 또는 소부르주아 여성들의 이념적 포로이다. 부르주아 또는 소부르주아 여성들의 지위는 돈 잘 버는 아버지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는 남편을 통해 주로 획득된다. 이들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남성우월주의 사회의 희생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부르주아 또는 소부르주아적 성격으로 인해서 ‘남성의존적으로 획득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핵가족의 수호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아버지나 남편을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게 하는 각종 요소들 즉, 술·성매매여성에 대한 강력한 반대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그 악명 높은 금주법을 강력히 지지한 것이 이들이었고, 뉴질랜드는 이들에 의해 1967년까지 술집은 저녁 6시까지만 영업했었다고 한다. ([1917]의 <포르노, 자본주의 그리고 검열>에서)

경찰 추산 35만, 학자 추산 100~150만이라는 가공할 숫자의 성매매 여성은 한국의 부르주아 또는 소부르주아 여성들로 하여금 상시적 위기감에 휩싸이게 만든다. 게다가 남성우월주의 사회구조 속에서 남편들은 여자도 따라나온다는 술집에 ‘합법적’으로 다닌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자립되어 있지 않거나, 남편의 지위를 자신의 지위로 여기는 여성의 경우 쉽게 이혼할 수도 없다.

이러한 부르주아나 소부르주아 여성들의 계급적 처지는 반동적 페미니즘과 이번의 성매매방지법의 그 물질적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적 노동력 재생산 시스템의 도구인 남성우월주의와 더불어 계급적 입장을 도외시하는 페미니즘을 반동적 사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물론 소부르주아 여성들의 좌절감이나 위기의식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자본주의 사회가 조장하는 남성우월주의 사회의 피해자들이기 때문이고, 그들의 능력을 차별 없이 발휘할 것에 대한 그리고 안정적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요구는 정당하고 진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해는 상층부르주아나 페미니즘이 아니라, 하층 여성들 그리고 노동계급과의 연대를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과 노동 계급

위에서 논의한 것처럼 한국의 자본주의 현실은 성매매산업이 유례없을 만큼 성장하게 하는 진원지이다. 이 속에서 하층 여성들은 그 생존을 위해 성판매자로, 그로 인해 성적 상대방을 찾지 못하는 하층 남성들은 그 성매수자로 나서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성독점 시대에 성적으로도 가장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은 부르주아 남성들이다. 이들은 각종 연예인 스캔들의 익명의 주인공이 되거나, 재력으로 다른 여자를 두거나, 아니면 하룻밤 술값이 수백만 원 한다는 고급룸살롱에서 단속의 염려 없이 최상의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

성매매산업에 종사하는 하층 여성과 숨막히는 이윤추구의 현실 속에서 임금노예가 되어야 하는 남녀의 노동자는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구조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그 이해를 같이 한다. 인간 본연의 행위인 노동과 성이 상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달가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창조성의 외적 실현태인 노동이나, 인간으로서 누리는 쾌락의 하나인 성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 쓰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모두 모든 것을 이윤추구라는 목적에 종속요인으로 만들고야 마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비극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성 억압과 성매매의 근절을 위해서 사회보장의 광범한 실시를 위해 그리고 사회주의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도모하는 정부는 그 정치적 색깔이 어떠하든 국가가 더 이상 아동, 노인, 병자 등을 돌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비용은 “가정” 즉 주로 여성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사회보장 프로그램 삭감에 자연스럽게 대항할 세력은 누구인가?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들은 정부의 긴축정책과 이 결과 발생하는 부의 불공정한 분배를 일반적으로 지지한다.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사회적 필요를 위한 공공기금의 지출로 사적 자본의 축적이 방해받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사회보장 프로그램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노동계급 남성들은 탁아 보조비, 노인 연금, 의료 보험 등의 삭감에 맞선 투쟁에서 여성들과 함께 싸울 수 있는 자연스러운 동맹 세력이다. …중략…

여성해방은 개인적 삶의 영역에서 성취될 수 없다. 가사를 남녀가 좀더 균등하게 나누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 육아, 방 청소, 식사준비 등이 개인의 책임에서 사회의 책임으로 전환되어야한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서는 사회를 완전히 개조하여 자본주의의 무정부적 생산을 생산자들 자신이 운영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바꾸어야한다.”–[1917], 같은 글

 

무엇을 해야하는가?

성매매방지법은 철폐되어야 하며 성매매는 합법화 또는 비범죄화되어야 한다. 이 법은 한국 여성에게 강요되는 열악한 삶의 조건 속에서 성매매산업이 창궐하게 되었다는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고 그 피해자인 하층 여성과 남성을 공격하는 법이다. 이 법으로 인해 성매매에 나서는 하층 여성들은 생계의 벼랑으로 몰리고 있으며, 불법화로 인해 그들의 존엄은 앞으로 더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것이다.

또한 이 법은 구성원의 사적영역에 국가가 간섭하는 것을 용인하는 악법이기도 하다. 위에서 논의했던 것처럼 노동과 더불어 인간의 본연의 행위인 성이 상품화되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다. 하지만 성을 매매했다고 해서 범죄라고 하는 것은 국가의 월권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는 순간 그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결정권을 상실한다. 마찬가지로 성매매여성이 자신의 성을 시장에 내놓는 순간 그는 자신의 성행위에 대한 결정권을 상실한다. 다만 시장에 내놓겠다는 결정은 자유이다. 그 자유는 맑스가 언젠가 말한 노동자의 역설적인 두 가지 자유 즉, 토지로부터 벗어날 자유, 노동력을 팔 자유와 다를 바가 없다. 매매관계 속에서 그 결정이 수행된다는 점은 아픈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로 남성과 여성이 만난다고 해서, 국가가 이불을 들치거나 범법자로 체포할 권리가 있는가.

물론 합법화 나아가 비범죄화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다만 그것으로 성매매여성에 대한 착취 정도를 개선해 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런 비유를 해 보자. 노동조합을 결성한다고 해서 착취가 종식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적 기관이며, 착취를 종식시키는 기관이 아니라 착취를 덜 당하기 위한 흥정의 기관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결성되면 사주는 기존의 경제외적 강제 행위를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협상을 통해서 조금 더 개선된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 성매매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왜 그들이 포주의 협박과 폭력 등의 경제외적 강제에 시달리고 강박되어 있는가? 그것은 불법화된 지금의 구조 속에서 현지 경찰 등과 연결되어 있는 그들의 힘(성매매를 할 수 있게 하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합법화되면 그렇게 경제외적 강제를 가하는 포주는 거의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나아가 하층 여성들이 고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조적 원인을 차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성매매여성을 생산적인 일로 유입하기 위해,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의 단축을 통한 실업의 해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남녀 차별 없이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의 적용, 여성에 대한 각종 차별의 철폐를 주장한다. 동시에 자녀의 양육에 대한 국가의 현실적 지원과 이혼녀에 대한 사회보장의 실시, 실업자에 대한 실업 수당의 현실적 실시 등을 통해 여성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다.

성매매를 없애기 위한 이러한 요구들은 상층부르주아를 제외한 모든 여성들의 절실한 요구인 동시에 남성 노동자들 역시 절실히 요구하는 문제들이다. 바로 이 지점이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해방운동’이 노동계급 운동, 사회주의 운동과 만나는 지점인 것이다.

 

이 글을 쓰기에 많은 영감을 주었던 [1917]의 <맑시즘, 페미니즘, 여성해방>의 마지막 구절을 다시 인용하며 마치기로 한다.

“여성해방이 계급투쟁의 결과와 밀접히 관련되는 것과 똑같이 사회혁명의 운명도 빈민 및 노동계급 출신 여성들의 참여와 지지에 달려있다. 1868년 12월 12일 루드비히 쿠겔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카알 맑스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는 사람은 거대한 사회혁명들이 여성들의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성의 평등을 옹호하고 진전시키는 투쟁에 혁명가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 또한 사회주의 운동 내에 여성 지도자들의 발굴을 촉진시켜야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타도 투쟁에 참여함으로써만 여성들은 자신의 해방을 위한 길로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타도되어야 기아, 착취, 빈곤, 수천 년 지속된 남성 지배의 해악 등을 일소할 물질적 조건들이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투쟁 목표인가!”

 

 200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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