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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의 여성해방운동을 위하여!

-부르주아 여성운동과 단절하자!

 

<차례>

여성 억압의 기원: 가족, 사유재산, 국가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해악

러시아 혁명과 여성해방운동

노동계급의 여성해방운동을 위하여!

 

노동계급의 해방은 임금노예로 파편화되어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노동계급 의식으로 스스로 무장한 대오로 거듭날 때 가능하다. 만약 노동자가 자본주의 착취 체제와 스스로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을 모두 온전히 이해한다면, 이 체제는 단 일분도 지탱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와 경제만이 아니라 사회와 학문 등 모든 곳에서 그 계급 독재를 실행하고 있는, 그리하여 이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고, 그렇게 이삼 백년 동안 경험을 쌓아온 부르주아 계급은 노동 계급보다 더 정확하게 이 점을 이해하고 있다. 동시에 부르주아 계급은 그 추락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더 본능적이고 절실한 계급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노동 계급이 노동계급의식으로 각성하지 못하도록, 각종의 매체와 각종의 교묘한 사상을 통해서, 사물을 그 사물대로 보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하고 나선다. 노동계급 내에 침투한 부르주아 사상은 마치 악성 바이러스처럼 우리의 투쟁 동력을 약화시키고, 무장 해제시키는 역할을 한다.

노동계급을 무력화시키는 손쉬운 방법은 분열시키는 것이다. , ‘나누어서 다스린다.’라는 수천 년 간 이어져온 지배 철학은 오늘날에도 아주 효과적이고 강력한 지배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하여 부르주아 계급은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 호남 지역 노동자와 영남 지역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한국인 원주민 노동자와 외국 이주 노동자 그리고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이해가, 서로 다르고 나아가 적대적인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선전하여 노동 계급 의식을 무디게 하고, 단결을 차단하며, 노동계급과 부르주아 계급 간의 모순을 은폐한다.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흑인 노동자와 백인 노동자, 영남의 노동자와 호남의 노동자들처럼 피부색이나, 말씨 등 외적 특성이 손쉽게 드러나는 경우 그러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더욱 효과적으로 침투한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적 차이는 그러한 분열의 사상이 가장 쉽게 침투할 수 있는 영역이며, 페미니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하여,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를 분리하고, 노동계급의 단결을 방해하는 부르주아 사상이다.

이 페미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글 <성매매방지법과 노동계급>에서도 그러하였지만, 맑스와 엥겔스가 가르쳐 준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억압의 원천을 설명해 주는 가족의 기능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여성 억압의 기원: 가족, 사유재산, 국가

부르주아 계급에게 가족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사적 소유물을 자신의 적자에게 안전하게 양도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반면, 노동자 계급에게 가족은 자본의 이윤추구에 필수적인 조건인 노동력을 보수 유지하고 양육하는 기관이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처음부터 그 가족을 노동자에게까지 도입했던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초기, 개별 자본에게는 부려 쓸 수 있는 값싼 노동력이 충분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성인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이건 어린 아이이건 가리지 않고 공장에 부려 썼다. 그 당시 자본가들의 위선적 이론에 의하면 아동기는 10살까지였다.

자본주의 초기 개별자본의 이러한 무정부적인 탐욕은 곧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 이러한 무차별한 착취는 극심한 유아 사망률 등으로 노동력의 재생산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자본주의 유지에 꼭 필요한 노동력이 사회 전체적으로 심각하게 마모된다는 것이다.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유일한 통로인 인간의 노동은 그 생물학적 조건으로 인하여 무제한적으로 가동할 수 없다. 노동할 수 있는 힘은 수면을 포함한 휴식과 음식물의 섭취, 정서적 심리적 안정 등을 통하여 재생산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는 안정적이고 값싼 노동력 재생산 기제를 고안해 낸다. , 남편은 공장에서 일하고, 여성은 집안에서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일부일처제의 핵가족을 노동자들에게도 권장 보급한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여성은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영역으로 특화된다. , 그 자본주의 가족 속에서 여성은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현존 노동력의 보수자이며 미래 노동력의 보수 없는 양육자가 된다. 그리하여 현모양처라는 여성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온존될 뿐만 아니라, 강화된다.

총자본의 이해에 의하여 자제되고는 있었지만, 값싸고 고분고분한 노동력인 여성 노동력에 대한 자본의 미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유럽에서 터진 1차 세계 대전은 여성 노동력을 다시 광범위하게 활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남성노동자들이 자국의 시장을 방어하고 자국 자본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자본의 희생양으로 전쟁터에 끌려가 대포밥이 되는 사이, 빈 일터는 여성 노동력으로 메워졌다. 여성 노동자의 수가 급증했다. 이러한 경향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임시적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황으로 굳어졌다. 한편, 수도 · 전기의 보급과 가사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가전제품들의 개발은 여성 노동력의 고용으로 생긴 가사노동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워줄 수 있었다. 이제 자본은 여성 상위 시대’, ‘커리어 우먼을 외치기 시작한다.

자본에게 여성 노동력은 대단히 매력 있는 대상이다. 그 동안 형성된 여성은 집안 일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도 훨씬 적은 임금을 지불하고, 상대적으로 다루기 편하다. 거기에다 불황기에는 바로 그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별 저항을 받지 않고 처분할 수도 있다. 게다가, 결혼한 부부가 모두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 즉, 임금(실질)을 대폭 줄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맞벌이를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평균적인 삶은 개선되지 않으며, 이제는 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살아가기가 힘들게 된다. 그래서 둘이 벌어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탄식은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예사가 된다.

이렇게 이윤은 최대한으로 짜내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에 드는 비용은 최대한 지출하지 않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자본의 탐욕은 또 다시 가족 소멸의 위기를 부른다. 자녀의 양육과 교육, 의료 등의 사회 보장이 거의 전무한 한국사회에서 모성이 보호받지 못하고, 둘이 벌어도 빠듯하게 유지해야 한다. 게다가 여성은 전통적 편견으로 인해 가사와 양육에 대한 부담까지 더해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된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결혼한 부부의 갈등과 긴장을 증폭시키게 되고 나아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미 한국의 출산율은 1.1로 세계 최저 수준에 달했고, “미혼자 가운데 남성의 17.5%,여성의 26.2%가 각각 독신 의향을 밝혔고, 35세 이상 미혼 여성의 경우 절반이 결혼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한국사회보건연구원>, 20063)”고 한다. 이는 한국과 같은 초과 착취 지역의 경우 자본의 탐욕은 가족의 존재마저도 위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여성의 사회적 역사적 처지에 대한 이러한 계급적 분석을 거부한다. 페미니즘은 계급 모순을 부정하거나, 성적 모순이 계급 모순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억압의 근원이며, 해방을 위해 철폐해야하는 자본주의가, 그들에겐 선택 가능한 변수가 아니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수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그대로 둔 채, 그 틀 내에서 문제를 조금씩 다듬어 해결하려 하거나, 사회구성원들(특히 남성)의식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제기한다.

그들은 인류의 총체적 실천을 통해 검증된,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그 권리는 그것을 결정하는 사회의 경제 구조와 문화수준을 절대로 뛰어 넘을 수 없다.’는 맑스의 언명을 부정한다. 그 순간 그들은 현실을 관념적으로 해설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성 문제에 한해서 일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진전된 이후에 마지못해, 그리고 반동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매춘 문제나 저출산율에 관한 대책들을 보라!), 그것도 문제의 원인인 자본의 집행자인 국가에 청원하는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나아가 그 권력에 영합한다. 결국 페미니즘은 말로는 여성을 외치지만, 자본주의를 유지 보수 강화하는 일꾼인 것이다.

한편, 페미니즘은 사물을 사물대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착시와 무지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 페미니즘은 자본주의 유지에 기여한다는 점 때문에 부르주아 국가의 다각적 옹호 아래 자라나며, 실제로 사회 구조가 아니라 의식만 장애가 될 뿐인, 부르주아 또는 소부르주아 여성들이라는 계급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부르주아 여성 정치인이나 사업가에게 자본주의라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택도 없는 얘기이다. 그들에게 문제되는 것은 단지 여성은 아무래도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회적 편견일 뿐이다. 부르주아 남편이 자신의 고급스러운 삶의 기반이 되는 여성에겐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남편의 바람기가 문제이며, 이혼 위자료를 보장하는 법적 결혼 절차는 이미 들어둔 보험이다. 경쟁 남성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소부르주아 여성에겐 직장이나 학업 등에서의 차별만이 문제될 뿐, 자본주의 전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논점에서 벗어난 주장이 된다.

 

페미니즘의 해악

1. 노동계급의 분열 조장: 페미니즘의 가장 큰 해악은 억압받는 계층으로부터 여성들을 분리해내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는 부르주아 여성 정치인이나 자본가 여성보다 동료 남성 노동자와 더 밀접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페미니즘은 그 투쟁의 방향을 자본가와 자본가계급 그리고 자본주의국가가 아니라, 주위 남성에게 돌릴 것을 주장한다.

다음의 글의 결론을 살펴보자.

여성주의자들은 성계급적 의식을 가지고 침대에서, 부엌에서, 일터에서, 거리에서, 관계 맺음 속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에 맞서야 하며 여성과 관련한 아무리 사소한 정책일지라도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투쟁을 만들어가야 한다.”성매매합법화 반론글’ <마르크스주의 연구회, 북극곰(20058)>, 강조는 글쓴이

지난 200611, 이 글의 저자인 <마르크스주의 연구회, 북극곰>10월의 북한 핵실험에 대하여 북한의 핵실험과 한반도 전쟁 위기라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당시 <전국노동자정치협회>를 제외한 <노동해방실천연대>, <노동해방연대>, <현장노동자> 등의 맑스-레닌주의를 자임하는 정치단체들은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자신의 체제를 방어할 권리로서의 북한 핵무기 보유에 대해 반대한 바 있다. <다함께>의 국제 지도부인 <국제사회주의자그룹(IS)>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자국 내의 극심한 빨갱이 사냥의 압력에 짓눌려 어느 쪽도 편들 수 없다고 꼬리를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후 줄곧 그 굴복에 대해 소련은 국가자본주의이다.’라는 해괴한 논리를 알리바이로 삼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다함께>가 양비론을 내세운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맑스-레닌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이는(구체적인 정치적 내용은 더 따져봐야 하겠지만) 다른 단체들이 자신들이 견지하고 있던 국가자본주의론’, 또는 부르주아 평화주의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북한 핵의 방어를 포기한 것은 대단히 실망스런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학생들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는 <마르크스주의 연구회, 북극곰>은 비교적 탄탄한 맑스주의를 바탕으로 북한 핵을 그 방어의 수단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1년 정도 전의 글로 보이는 이 글은 실망스럽게도, ‘마르크스 연구회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마르크스적이지 않다. 오히려 대단히 반()마르크스적이다. <북극곰>성매매합법화론 반대를 주장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거에 마르크스 또는 마르크스주의는 없다. 대신 안드레아 드워킨(Andrea Dworkin)이나 캐슬린 베리(Kathleen Berry)와 같은 미국 급진페미니스트들에게서 얻은 페미니즘적 영감만이 있을 뿐이다.

<북극곰>은 그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성계급적 의식을 가지고 침대에서, 부엌에서, 거리에서, 일터에서, 관계 맺음 속에서 저항하라고 선동한다. 물론 맑스주의자는 여성을 억압하는 모든 편견, 폭력에 맞서 싸워야하고, 그 지점에서 부분적으로페미니즘과 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저항이 여성 억압의 근원이 자본주의 사회구조(그가 연구한다는 마르크스주의에 의하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북극곰>의 논거처럼 여성에게 계급은 곧바로 섹슈얼리티의 문제이며,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곧 계급 문제라는 소위 성계급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분리주의라면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세계관을 좀 더 들여다보자.

지난 몇 년간 급진 페미니즘이 주도한 가장 정치적이며 가장 반동적인 운동은 포르노 불법화 운동이었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은 가정의 가치를 떠벌이는 얌전빼는 우익 분자들과 다르다고 종종 주장한다. 하지만 포르노를 반대하는 이들은 낙태를 형사처벌하고 동성연애자들을 탄압하고 학교에서 진화론과 성교육 강좌를 금지시키려고 애쓰는 편협한 자들과 기꺼이 동맹을 맺어왔다. 국가의 사법 검열을 옹호하면서 자신들이 여성의 권익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포르노 금지운동의 가장 주요한 표적은 동성연애자들이었다.

국가의 검열을 옹호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타고난 잔인한 성욕이 중심이 된 불변의 남성성이 여성 억압의 근원이다.” 미국에서 국가 검열을 옹호하는 페미니즘의 화신인 안드레아 드워킨은 섹스와 살인은 남성 의식 속에 결합되어 있으므로 살인의 가능성이 없는 섹스는 생각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행동하기”, [밤을 되찾아라], 1980)” 따라서 이 남성 의식의 표현인 포르노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맑시즘, 페미니즘, 여성 해방', IBT(강조는 인용자)

안드레아 드워킨을 포함한 급진 페미니스트들에 의하면 타고난 잔인한 성욕이 중심이 된 불변의 남성성이 여성 억압의 근원이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그 투쟁의 대상은 사회구조가 아니라 불변의 남성성이고, 동시에 불변의것이기 때문에 분리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2. 관념론: 변증법적 유물론의 근본 명제 가운데 하나는 모든 사물은 상대적으로 정지할 뿐, 절대적으로 변화한다.’이다. 그런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지금의 부르주아 사회(상대적 정지 상태인)가 영원히 지속할 것이라는 허위의식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기 위해서는 현실과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 현실과 대조하기를 멈추고, 이론 그 자체만을 설명하거나 발전시켜야 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강력한 물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있기 때문에 잘 사라지지 않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관념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편, 현실과 맞지 않는 그래서 비논리적인 그 거짓 이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거짓됨이 잘 드러나지 않게 포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람들에게 이해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자주 생소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대중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부르주아는 이것이 가능하다. 별것 아닌 것을 저명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 다른 하나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그래서 뭔가 오묘한 것이 있을 것 같은 신비감을 조성하는 말의 낯설게 하기잔치는 페미니즘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요즘 페미니즘 논의에서 유행하는 말 중의 하나는 빈곤의 여성화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사회 하층 중에서도 여성은 더 약자이기 때문에 여성이 더욱 빈곤하다.’는 말일 텐데, 이것이 맞다면 여성의 빈곤화’(이것도 어색한 조어이지만) 정도가 더 낫지 않을까? 빈곤은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어서 결코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없다. 한국어 단어로 구성된 말 덩어리이지만 말의 형성법으로 보았을 때, 한국어가 아니다. 정말 심오한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일까?

<북극곰>의 글에서 하나 더 트집 잡아 보자. 말이 전체적으로 너무 어렵다. 대단히 몰계급적인 성의식을 담고 있는 윗글에 성매매는 남성이 여성의 성을 구매하는 위치라는 권력을 획득함으로써 가능하다. 다시 말해 남성들은 성매매를 통해 여성을 향한 폭력과 정복감을 통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존재로서 성매매 여성의 존재에 안도한다.”는 구절이 있다. 첫 문장은 매춘은 남성이 여성에게 돈을 지불하고 성행위를 하는 것이다정도의 내용일 것이다. 무슨 트집을 잡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면, ‘대신에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를 넣어 치환해 보자. “아이스크림 구매는 매수자가 매도자의 아이스크림을 구매하는 위치라는 권력을 획득함으로써 가능하다.” 왜 이렇게 말해야 하는가? 다른 글에서는 그렇게 유창하던 <북극곰>이 왜 이 글에서만 유독 말이 꼬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북극곰>은 이러한 말 바꾸기를 보면서, 아이스크림과 인간의 행위가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고 노여워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이윤의 요구에 의해작동되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 둘을 구별하지 않는다.

3. 사회주의에 대한 편견 조장: 부르주아 사상에 대항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사상이고, 페미니즘의 이론과 전통에 맞서는 것은 맑스주의의 여성해방이론과 그 실천의 역사이다.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그들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치명적인 경쟁 상대자인 사회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편견을 심어주기 위해 늘 노력해 왔다. , ‘사회주의는 여성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회주의자는 여성운동에 무관심하다. 사회주의자는 여성의 아픔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무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편견은 적어도 현재, 한국의좌익 내에서는 그 영향이 강력하여, 심지어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단체나 활동가들도 그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28~30일까지 열린다고 알리는 <맑스 꼬뮤날레>의 토론회 참가 협조 요청문의 토론 취지부분을 읽어보자.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고 성노동자들의 반대목소리가 터져 나왔던 시점에서 의외로 맑스주의 진영과 담론 내에서 이를 주목하고 이슈화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혹 있었다 하더라도 소수의 문제제기 수준에 그쳤거나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말하자면 성매매/성노동 문제는 맑스주의 내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다고 해도 좋은 상황이다.

맑스 코뮤날레는 맑스의 고전을 답습하는 학술행사가 아니라, 오늘날 맑스가 남긴 공백을 훌륭하게 메우기 위해(실제로 가사노동에 대한 공백은 페미니스트들이, 이주노동에 대한 공백은 이주노동자들 스스로에 의해 메워져 왔다) 총동원된 감각과 지성의 집합적 축제다. 그리고 성매매/성노동 부분은 맑스주의의 가장 큰 공백 중 하나다. 물론 맑스의 저작에는 매춘부라는 존재가 룸펜 프롤레타리아와 더불어 간헐적으로 언급되고 있기는 하다. 한편, <공산당선언>과 같은 저작에서는 강령 중 하나로 매춘을 사라져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정도의 언급만으로 만족하기에는 오늘날의 사회는 너무나 빠르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이유로 이 토론은 맑스의 한계와 공백을 다른 그 어떤 주제보다 더 잘 드러낼지도 모른다. 또한 오늘날 맑스주의를 새롭게 하는데 매우 풍부한 사유의 순간이 주어질 수도 있다. 토론의 목적은 성매매/성노동에 대한 여러 목소리를 듣고, 맑스주의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던 이 주제를 공론의 장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강조는 인용자)

그다지 길지 않은 이 안내문엔 여성 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의 무능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답답하게도 <맑스 꼬뮤날레>는 맑스주의를 말하면서 맑스만 말한다. 마치 맑스주의는 맑스가 시작했고 맑스로 끝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안내문이다. 혹시 맑스 고전 읽기 꼬뮤날레일까?

너무나 잘 알다시피 맑스주의는 19세기에 멈춘 사상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노동계급을 옹호하고 사회주의를 준비할 것을 말하는 맑스의 사상은 그 이후, 1차 대전 전후의 투쟁, 러시아 혁명, 스탈린에 대항한 트로츠키의 좌익반대파 운동, 사민주의 조직과 스탈린주의 조직에 투항한 파블로주의에 반대하는 투쟁, 중국혁명, 한국전, 쿠바 혁명, 베트남전, 68운동,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지는 계급투쟁과 검증의 용광로 속에서 세계에 대한 그 과학적 이해를 더 정확히 그리고 더 풍부히 해왔고, 그것을 우리는 맑스주의라고 부르는 것 아닌가?

사실 한국 사회주의 운동은 일정한 변명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대량 반공 학살과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이어진 살인적인 탄압 속에서, 한국의 사회주의는 연속성을 가지고 축적 발전될 수 없었다. 또한 사회주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스탈린주의에 경도된 기형적 사회주의였다. 트로츠키가 제국주의 스파이가 아니라, ‘첫째가는 볼셰비키(레닌)’라고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사회주의가 다른 부문과 더불어 여성 해방의 이론적 수준이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맑스주의 전체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여성 해방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독일 이데올로기>나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 등의 초기 연구는 레닌,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등의 혁명가들에 의해 꽤 방대한 양으로 계승되었다. 트로츠키주의를 자임하는 이러저러한 국제사이트에 들어가서 여성, 여성 해방등으로 검색해 보면 그 조직의 역사에 따라 여성 해방을 다루는 글이 적게는 수 종, 많게는 수십 종이 검색될 것이다. 다른 부문에서도 그러하듯이 여성 해방을 위해 가장 치열하게 싸워왔고, 가장 과학적인 분석을 해낸(해내고 있는) 사상은 맑시즘 이외엔 없다.

 

러시아 혁명과 여성해방운동

러시아 혁명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 혁명의 교과서이다. 그것은 여성해방 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러시아 혁명에 투영된 가족과 여성에 대한 사회주의 정책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페미니즘과 사회주의의 여성 해방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고찰을 통해, 지금 우리의 정책은 어떻게 제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영감을 얻어 보기로 하자.

1. 혁명 전: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말했던 것처럼, 볼셰비키는 모든 억압과 차별에 대해 맞서 싸우는 민중의 호민관(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자)으로 싸워왔다. 그들은 투표권의 쟁취와 더불어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유급 육아 휴직, 공장 내의 보육 시설, 남편의 폭력과 직장 내 폭력으로부터 여성 노동자 방어등을 내걸고 싸웠다.

1899<러시아사회민주당> 창립 강령 제 9 조에서 레닌은 여성과 남성의 완전한 평등권의 실현을 말했고, 이것은 19032차 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구체화되었다. “노동계급의 물리적, 정신적인 퇴보를 막고 해방 투쟁을 고무한다는 관점에서, 여성은 여성 신체에 해로운 산업에 고용하지 않고, 산모에게 출산 전에는 4주 그리고 출산 후에는 6주의 유급휴가를 제공하며, 모든 기업은 아기와 어린이들 위한 보육 시설을 갖추고, 아이 엄마에게는 3시간 이내에 최소 30분의 휴식을 제공하며, 여성 노동자가 일하는 곳의 남성 감독원은 여성으로 교체한다.”

클라라 제트킨의 <레닌에 대한 회상>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 내에서 그리고 대중 사업에서 우리는 반드시 남성의 낡은 지배의식을 뿌리 뽑아야 한다. 노동 여성들 속에서 사업할 여성과 남성을 이론과 실천의 측면에서 잘 훈련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적 과업 중의 하나이다.” 볼셰비키는 또한 <라보트니챠(여성노동자: Rabotnitsa)>라는 신문을 발간하고 여성조직을 구성하여 투쟁했는데, 이것은 10월 혁명 이후 세계 최초의 국가 여성위원회인 제노텔(Zhenodtel)이 되었다.

강령과 전략의 측면에서 페미니즘과 볼셰비즘은 그 근본부터 달랐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의 가장 절박한 요구는, 정부의 모든 부서에 참여할 권리를 포함한, 남성과 동등한 정치적 권리라고 주장했다. 이 요구를 이루어내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은 평등권을 위한 계급연합을 구성했다. 한편, 사회주의 조직 또한 여성의 평등권을 위해 싸웠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페미니즘의 개량주의 전략을 거부하고 완전한 평등은 사회주의 사회 아래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억압당하는 여성들과 함께 싸우면서, 동시에 그들을 혁명으로 이끌었다.

2. 2월 혁명: 1917년 혁명이 시작된 것은 여성의 날이었다. 볼셰비키 지구당의 파업 자제 요청이 있었음에도, 전쟁과 기아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여성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섰고, 그것은 곧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트로츠키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게 2월 혁명은 혁명조직들의 저항을 극복하고 아래로부터 시작되었다. 노동계급의 가장 억압받고, 핍박받은 여성 섬유 노동자들이 스스로 선두에 섰다. 이들 중에는 전선에 나간 병사들의 부인이 많이 있었다. 너무 길게 늘어선 빵 배급줄이 혁명을 촉발시킨 마지막 자극이 되었다.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풀무질)”

4월 러시아로 귀환한 레닌은 ‘4월 테제로 잘 알려진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과제>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여성이 정치적 영역만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공적인 사회 각 분야에서 독립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완전하고 안정된 민주주의를 말할 수도 없다. 병든 사람과 집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먹거리를 살피는 등의 치안 기능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여성이 남성과 완전히 동등한 위치에 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레닌의 제안으로 볼셰비키가 주도하는 첫 번째 여성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나중에 제노텔의 초대 장관이 된 사모일로바는 볼셰비키 조직의 지도에 따르는 여성 정치 운동을 조직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멘셰비키 대표들은 여성운동은 어떠한 정당으로부터도 독립해야 하고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주장은 서너 명의 찬성을 얻는 데에 그쳤다. 또한 남편이 일하고 있는 경우 여성을 우선적으로 해고한다는 임시정부의 법안에 맞서 싸웠는데, 그것은 그러한 법안이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단결을 방해한다는 것을 볼셰비키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3. 10월 혁명: 페트로그라드 여성노동자 대회가 열린 날은 무장봉기가 일어난 날이었다. 회의장에 모여 정부 문제와 여성에 대한 복지 등의 현안을 논의하던 여성 대표들은 무장봉기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즉각 봉기에 가세했다.

무장봉기의 성공으로 권력을 장악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여성의 완전한 평등권을 위한 개척자가 될 것이다. 그것은 여성의 권리를 말하는 여러 권의 책들보다 훨씬 근본적으로 모든 편견들을 없앨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강조는 인용자).

4. 혁명 후의 가족법: 1차 대전으로 인한 산업의 후퇴, 내전과 같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1918,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에, 가족법을 통해 다음과 같은 정책들을 실행했다.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는 원칙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모든 가사 노동(청소, 식사, 주거, 자녀 양육, 의복 등)을 사회화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누군가 다치거나 이익이 손상되지 않는 한, 국가나 사회는 성적인 문제에 절대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혼의 자유가 명문화되었고, 절차가 간편해졌다. 결혼 기간은 둘이 함께 살 의사가 있는 기간 동안으로 인정되었다. 이혼 여성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남성의 부양금 지급이 명문화되었다. 그런데 이 법에 대해서 결혼 항목과 부양금 지급 규정을 법에서 삭제하자는 의견이 제출되었다. 남녀의 성적 만남을 국가에서 관리할 이유가 없고, 부양금 지급은 사랑의 대가가 아니냐는 이유 때문이었다. 앞으로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당시 소련의 사회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이러한 항목들이 잠정적으로 존속할 수밖에 없었다.

-호모섹스 등 상호 합의에 의한 모든 형태의 성행위가 합법화되었다.

-가장 인기 있던 정책은 제노텔 책임자이며, 초대 사회복지장관이었던 알렉산드라 꼴론타이가 고안한 모성보호 정책이었다. 이 법은 8주간의 출산 유급 휴가, 무료 산전 산후 의료 혜택, 양육을 위한 작업 중 휴식, 휴식 시설 그리고 양육비 보조 등으로 구성되었다.

-세계 최초로 생리휴가가 도입되었고, 육체적으로 혹독한 작업에는 여성을 배치하지 않았다.

-또한 세계 최초로 낙태가 합법화되었고, 국가 의료 기관에서 무료로 시술하였다.

-고아를 포함한 모든 어린이에 대해 국가가 부양책임을 졌다.

5. 제노텔: 여성들의 이행 조직은[(transitional); 일상적이고 경험적인 의식을 혁명적 의식으로 끌어올린다는 측면에서] <독일사회민주당>이 먼저 개발한 것이었다. 이것을 본받아 볼셰비키도 여성 조직을 건설했고, 그것은 혁명 후 제노텔[(Zhenodtel); 노동 여성과 농민 여성부]로 계승되었다. 제노텔은 이네사 아르망과 콘코르디아 사모일로바가 제안한 것처럼 당의 가장 활동적인 여성들을 조직하여, 여성들 속에서 공산주의 의식을 실천할 선전과 선동을 수행할목적으로 조직된 것이었다.

혁명 후 열린 제노텔 대회에서는 가족, 복지, 국제 혁명에서의 여성의 역할, 조직 문제, 소련에서의 매춘 문제, 주택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논의되었다. 제노텔의 책임자였던 알렉산드라 꼴론타이의 이상적인 여성상은 자급자족하고, 사회와 정치 분야에 참여하며, 이성과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고, 공동 식당에서 식사하며, 아이들은 국가 보육기관에서 행복하게 자라고, 집안 청소, 빨래, 옷 수선은 공공 노동자가 담당하는그런 여성이었다. 물론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것은 혁명으로 이미 이루어졌다.

6. 소련판 테르미도르 반동: 스탈린 관료주의는 10월 혁명으로 성취한 성과물들의 일부를 훼손했다. 낙태는 다시 불법이 되었고, 당의 여성부는 해소되었다. 남녀공학이 없어졌고, 이혼은 좀더 까다롭게 되고, 여성들에게 다시 집안일과 자녀 양육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강조되었다. 계속되는 제국주의의 포위와 압박, 스탈린을 중심으로 하는 관료의 장악, 일국 사회주의노선과 사회주의 완성 선언 등은 최초의 노동자 혁명으로 등장한 노동자 국가가 여성 해방을 완성시키지 못하는 물적, 사상적 요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다음과 같은 인정처럼 노동자국가는 높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1990년대 이전에 중동부 유럽 그리고 구소련(지금의 독립국가연합) 국가들은 높은 수준의 기본적 사회보장을 인민에게 제공하여 주목을 받았다완전 평생 고용이 보장되었다. 현금 수입은 적었지만 안정적이고 변동이 없었다. 수많은 기본 소비재와 서비스는 국가 보조금을 받아 공급이 규칙적으로 유지되었다. 의식주 문제는 안정적으로 해결되었다. 교육과 의료는 무상으로 보장되었다. 퇴직자들에게 연금이 보장되었고 많은 종류의 사회보장 프로그램으로 이들은 정기적인 혜택을 누렸다.”[유엔개발프로그램]1999년 연구보고서IBT, '러시아 자본주의 생지옥'에서 재인용

7. 자본주의 반혁명: 결정적인 여성 해방의 패배는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왔다. 1991-92년의 자본주의 반혁명 이후, 10년 동안 국민 총생산은 약 53% 하락했다. 인구는 6백만 명이 줄었다. 남성의 평균 수명은 63세에서 58(95)로 떨어졌다. 공공의료체계가 붕괴하여 결핵, 에이즈, 매독 같은 병들이 급격히 증가했다. 2003년엔 세계 1위의 자살률을 기록했다.

이러한 반혁명은 사회 약자인 장애인, 고령 연금 생활자, 아동, 여성에게 더욱 가혹했다. 배우자나 범죄에 의한 여성 폭력이 증가했다. 마약 사범이 증가했다. 2001년엔 25십만 명 이상의 아동이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여성의 매춘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러한 반혁명의 재앙을 유엔의 말로 정리해 보자.

러시아 인민은 꽤 좋은 교육, 건강한 생활, 적절한 영양 등을 더 이상 안정적으로 누릴 수 없다. 증가하는 사망률, 곧 닥칠 새롭고 파괴적인 유행병 등으로 생존 자체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구소련과 동구 국가들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실제로는 대공황의 완곡한 표현일 뿐이다. 생산의 붕괴와 치솟는 인플레는 사상 유례가 없다. 인간의 안정적 삶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보수적인 수치에 의하면 1억이 넘는 인민이 빈곤으로 추락했으며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인민은 불안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뿐이다.”[유엔개발프로그램] 보고서IBT, <러시아 자본주의 생지옥>에서 재인용

 

노동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위하여!

20049월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유엔, 정부 그리고 부르주아 양대 정당이 압박 동의 엄호하는 가운데,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가들이 행동대로 나서 통과된 바 있다. 그 이후 이 법은 노동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 사이에 사상적이고 실천적인 전선을 이루고 있다.

나는 <성매매방지법과 노동계급(20054)>에서 매춘은 우리 사회의 실업자 수, 비정규직 비율과 그 중 여성의 비율, 신용불량자 수, 자살률, 결혼율과 출산율의 급감 등의 사회 지표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모든 사회악의 근원인 자본주의 국가에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청원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그간의 악행에 면죄부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민에 대한 도덕적 심판자로서의 권리까지 부여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설령 노동 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국가라 하더라도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국가가 개입할 이유가 없다. 매춘은 공권력을 동원한 단속이 아니라, 사회 복지의 실현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노동력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상품화된다. 매춘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노동자들은 단결할 권리가 있고, 우리는 그 권리를 옹호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바 있다.

많은 좌익 조직들이 매춘 문제 자체를 회피하거나, 아니면 국가불간섭주의(합법화 또는 비범죄화)’를 채택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은 페미니즘의 영향에 갇혀 있거나, 까다로운 문제는 피해가고 뭔가 고상한(?) 문제만 다루겠다는 정치적 비겁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성 운동계 내부에 이 파장을 중심으로 일정한 분리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 두 개의 문건을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구공탄>분리주의를 넘어 계급적 여성주의를!(20071)’이고, 다른 하나는 정지영의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성주류화운동 평가(20074)’이다.

전자는 이 글에서 남녀의 대결구도가 아닌 여성과 계급의 결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후자는 한국 여성운동의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좋은 참고 자료가 되었다. 이 글은 “1980년대의 주 입장인 마르크스 페미니즘이 1990년대 들어 영페미니스트의 영향으로 분리주의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이후 여성계 인사의 공직 진출 등으로 국가와 파트너쉽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것은 사회변혁적 지향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결론으로 이 글은 일부 여성이 아닌 보편적 여성권의 확산,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사회운동, 노동운동과의 연대 강화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여성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르주아 여성운동 즉, 페미니즘은 한국의 노동계급 진영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어느덧 노동운동까지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위에서 논증한 것처럼 맑스주의, 사회주의 등을 표방하는 좌익단체들마저도 페미니즘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노동계급의 이익에 복무해야 하는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계급 전선을 교란하는 것을 방조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 문제와 관련하여 부르주아 계급과 사상적으로 인적으로 단절하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 인적 단절을 한다고 해서 페미니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모두와 단절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부르주아 사상에 감염되어 있다고 노동자와 단절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적어도 부르주아 정당과 국가에 참여하고 있는 자나 부르주아 조직과 조직적 연대를 하는 자와는 단절해야 할 것이다.

계급 사회에서의 여성은 노예의 노예(엥겔스)’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억압의 근원이 되는 그 해방은, 계급 전선을 해체한 채 계급을 초월한 여성 대 남성의 대결이라는 사상을 통해서는 성취될 수 없다. 그 해방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무정부적 생산을 생산자들 자신이 운영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바꾸어야 한다. 동시에 그 혁명의 성공은 노동계급 여성의 참여와 지지여부에 절대적으로 의존되어 있다.

실비아 판커스트(Sylvia Pankhurst, 1882~1960)는 바로 이러한 여성해방운동의 모범이었다. 실비아 판커스트의 어머니인 에멀린 판커스트는 여성 투표권을 위해 싸운 여성운동가였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부르주아 여성들에게만 있었다. 딸인 실비아 판커스트도 처음엔 어머니와 함께 <여성사회정치연대>라는 단체에서 활동했지만, 이후 그녀는 어머니의 부르주아 페미니즘을 거부하고 그 단체를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여성의 투표권만이 아니라 하층여성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노동계급의 투사가 된다. 뒤에 그녀는 <공산당>을 창립하고, 이 정당은 제3인터내셔널의 영국 지부가 된다.

지금 우리의 사회주의 운동은 또 다른 실비아 판커스트가 절실하다.

 

-노동계급 여성의 해방은 노동계급 남성과의 연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부르주아지와 단절하고 노동계급의 여성해방운동을 조직하자!

-성노동자의 단결권을 옹호하고, 사회 복지의 실현을 통해 매춘을 종식시키자!

-임금 삭감 없는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해서 모든 실업을 해소하자!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쟁취하고, 고용과 직장에서의 모든 여성 차별을 철폐하자!

-무료 낙태, 출산, 양육, 교육, 의료, 노인 부양을 쟁취하자!

-모든 가사 노동을 사회화하자!

-동성애 등 모든 합의 성행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저지하자!

 

2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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