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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격변

제국주의 범죄와 음모

다음은 2013년 10월 4일 IBT의 공개 모임에서 행한 톰 라일리 동지의 연설을 편집, 보완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의 전략적 패배는 이란을 지배하는 회교성직자들의 지위를 강화시켰다. 그들은 국경 서쪽 아프가니스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시아파가 지배하는 동쪽 이라크에서도 소중한 동맹자를 얻었다. 이러한 상황 전개에 놀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그리고 페르시안만(灣) 미국 하수인 왕조국가들은, (이란 핵심동맹국인) 시리아와 이라크, 레바논 등지의 지하드 봉기를 재정적 물질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또 다른 중동지역 맹방들인 요르단, 이집트, 터키, 이스라엘 등도 사우디가 주도하는 이러한 움직임을 널리 지지하고 있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이중적이고 삐걱거리며 일관성이 없다. 시리아와 이란에 대해 호전적 위협과 외교적 협상이 섞여 있다. 이전 실패의 교훈으로 미국은, 노골적 군사력 사용에 정치적 동맹과 술책을 보조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미국인 다수를 사로잡고 있는 ‘침략 피로’ 때문일 것이다. 미국인 다수는, 국내 생활여건이 추락하는데도 계속되는, 값비싼 신식민지 전쟁을 반대한다.

2013년, 러시아가 중재한 협상이 화학무기를 넘겨주겠다는 시리아 바트당 정부의 약속을 끌어내자, 미국은 시리아 내전개입을 철회했다. 민간 핵발전 개발을 위한 조건을 협의하자는 이란 정부와의 임시 약정이 그 뒤에 이어졌다. 이란과 시리아에 대한 미국 정책은, 지배계급 내 군사 개입을 지지하는 분파와 그로 인한 막대한 위험을 걱정하면서 이란과 성사된 협약이 큰 이익이 된다고 보는 분파 사이에, 상당한 논쟁 대상이 되고 있다. 조지 부시와 오바마 정부 모두에서 국방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게이츠는, 이란에 대한 공격은 “그 지역에서 여러 세대 동안 우리를 힘들게 할 재앙이 될지 모른다.”라는 견해를 최근에 공개적으로 표명했다(Virginian-Pilot, 2012년 10월 4일).

한 달 사이 중동 지역에서 극적 변화가 있었다. 몇 주 전에는 미국의 시리아 군사개입이 임박했다고 보였는데, 러시아가 중재하여 시리아 화학무기를 제거하기로 하는 협약에 미국이 응했다. 2013년 8월 21일 시리아 정부가 다마스쿠스 지역 구오타에서 사린 가스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미국 군사공격의 명분이었다. 정부의 연속적 반격에 시달리던 ‘반란군’이 미국의 군사개입으로 커다란 이익을 얻을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들이 사실 그 가스 공격에 책임이 있다는 증거가 나타났다.

구오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화학무기를 둘러싼 소란은 아사드 반대자들을 떠받칠 군사공격의 명분이었다. 중동지역 새로운 군사모험에 대한 미국 압도적 다수의 반대 역시, 오바마가 폭격 철회를 결정한 중요 요인이었다. 작은 ‘히틀러’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려는 대중매체들의 광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잣대는 그다지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을 항상 바보로 만들 수는 없다.”라는 아브라함 링컨의 말처럼.

(1978-79년 미국의 주요 동맹이었던 팔라비 왕조를 끌어내린 회교혁명 이후) 지난 35년 이래 처음으로, 미국과 이란의 관계 개선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몇몇 화해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2013년 9월 25일 유엔 연설을 통해 “중동지역의 핵심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군사력 포함 모든 힘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오바마는 분명히 밝혔다. 그 “핵심이익”이 무엇인지도 밝혔다: “우리는 그 지역에서 세계로 향하는 에너지의 자유로운 흐름을 확보할 것이다.” 에너지의 “자유로운 흐름”을 끔찍이 생각하는 이 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란의 석유수출 봉쇄를 풀지는 않았다. 왜냐 하면 오바마가 의미하는 “자유로운 흐름”은 ‘자유세계’ 즉, 미국 석유회사들의 지배하에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중동의 석유: ‘전략적 힘의 거대한 원천’

중동 정세는 복잡하고 유동적이다. 서로 다른 이해를 추구하고, 사태가 변함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여러 참가자들이 있다. 뭔가 단순하고 간명한 설명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대단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으로 사태변화와 “돈의 흐름”을 추적하면 그 근저에 흐르는 기본 동향을 포착할 수 있다.

한 세기 이전 내연기관이 성공적으로 상용화된 이래, 중동 역사는 광대한 에너지자원을 뽑아낼 권리를 주장하는 외국세력의 각축으로 점철되었다. 1차 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면서, 영국과 프랑스는 ‘나누어서 다스리기’ 편리하도록 부족공동체를 가로질러 이라크, 시리아와 레바논의 국경선을 그었다. 15년 이후 1933년, 아라비아 세습군주들과 미국 석유회사의 합작으로 설립된 아람코(Aramco: the Arabian-American Oil Company)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이 개시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세기’가 동트기 시작할 무렵, 미 국무부 전략가들은 중동 지역 석유를 “전략적 힘의 거대한 원천이고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획득물 가운데 하나”라고 묘사했다(멜빈 레플러, 『힘의 우세』에서 인용). 이 말은 두 측면을 적절히 담은 표현이었다. 즉, 중동의 석유 자산이 그 자체로 막대한 “획득물”일 뿐만 아니라, 영국과 미국 제국주의자들이 일본이나 독일 같은 잠재적 경쟁자에 대해 “거대한” 전략적 우위를 행사할 능력이라는 점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퇴보한 노동자국가 소련과의 냉전으로 인하여,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의 중동 정책은 종종, 대중적 좌익민족주의 운동을 억압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자유세계’의 지역 동맹자들은 보수적 세습군주와 전통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이었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 자산을 ‘해방’시킴으로써 자신들이 마치 ‘반(反)식민’의 사도인 양 행세했다.

1951년 이란 수상 모하메드 모사데크가 영국-이란석유(지금은 영국석유: British Petroleum—BP)를 국유화했을 때, 군사개입에 나서려는 영국을 미국이 제지했다. 그러나 뒤이어 미국 석유회사들의 접근마저 거부하자, 모사데크는 곧 미움을 샀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지역의 동맹자가 필요하다. 1953년 CIA가 주도한 쿠데타의 성공으로 팔라비 왕족의 통치가 복구되었는데 이때는 <이슬람 헌신자들(Devotees of Islam: 모사데크의 현대화 계획을 반대한 지하조직)>과 함께 한 아야톨라 세이드 아볼카셈 카사니가 핵심 역할을 했다. 모사데크가 물러가자 국유화 정책은 뒤집혔다. 그러나 영국 독점이 부활하는 대신에, 이번에는 40%의 이란 석유가 미국 회사들에 배정되었다.

이 쿠데타가 일어나기 4년 전에는 시리아에서 덜 성공적인 개입이 있었다. CIA가 ‘정권교체’를 처음으로 시도한 1949년의 시리아 쿠데타는 ‘아랍 관통 송유관(Trans-Arabian Pipeline)’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석유를 지중해로 운반하려는 아람코의 계획에 대한 시리아의 저항으로 촉발되었다. 요르단과 레바논 정부는 계획을 승인했지만, 시리아는 거부했다. 비밀 해제된 미국 문서에서 더글라스 리틀에 따르면, “1948년 11월 30일 이후 [CIA 요원 스테판] 미어드는 [시리아 육군 참모총장 후시니] 자임을 최소한 6 차례 이상 비밀리에 만나면서 ‘군부독재 가능성’을 논의했다.”라고 한다(「냉전과 비밀작전」, Middle East Journal, 1990년 겨울).

자임은, 1949년 3월에 권력을 장악하여 몇 개월 후 자신이 타도되기까지, 아람코 송유관을 승인하고 시리아공산당을 금지했다. 이것은 시리아에 말 잘 듣는 정권을 수립하려는 몇몇 성공하지 못한 시도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로 인해 시리아는 소련과의 긴밀한 동맹관계를 맺게 되었다. 1960년대 소련은 (바쉬르 아사드의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 집권 시기 바트당 군대와 비밀 요원들의 훈련을 도왔다. 그리고 러시아는 지금까지 시리아의 핵심 국제동맹으로 남았다.

1978~79년 이란의 회교혁명은 미국의 중요한 지역 동맹자 샤 왕조를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석유자산을 몰수하여 미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이후, 회교혁명을 전복하는 것은 미국 정책입안자들의 우선적 고려사항이 되었다. 아사드 정권에 대한 미국의 적개심은,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분노와 시리아 시민들을 걱정하는 인도주의의 발로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 그 적개심은, 시리아가 이란회교공화국을 지역 동맹자로 여기고, 레바논 정치를 지배하는 시아파 저항 운동인 헤즈볼라에 거점을 제공하기 때문인 것이다.

1980년대에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이란과 전쟁을 벌인 8년 동안, 사담 후세인 정권의 무장을 돕고 재정을 지원했다. 이란인들을 상대로 처음 사용하고 그 다음엔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반군을 대상으로 사용한 화학무기 원료를 미국이 (그리고 영국도) 제공하였다. 몇 년 뒤 파렴치한 제국주의 정보조작의 대가들은, 이라크 침략 명분으로 그들이 이전에 지원한 바로 그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을 내세웠다.
 
“보호책임”

2차 대전 결과, ‘침략’ 혐의 즉, 다른 나라들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는 공격 혐의로, 뉘른베르크에서 몇 백 명의 나치 간부들이 전범 재판을 받았다. 히틀러의 몇몇 이름난 심복들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그 자체로 온갖 죄악을 집적한 범죄로 다른 전쟁 범죄와 구별되는 최고의 국제범죄”라고 그 혐의가 묘사되었다.

그 내용은 유엔헌장의 기본정신으로 그럴듯하게 들어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주권 국가에 대한 정당한 이유 없는 침략인 “최고의 국제범죄”는 제국주의 선전가들에 의해 재규정되었다. 그들은 “보호책임”이 무조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삼키기 위한 첫걸음이었던 주데텐지방 합병을 정당화하기 위해 히틀러가 1938년에 내세웠던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이 “보호책임”을 들어 약소국 침략을 자기 편리한 대로 정당화한다. 물론 이 “책임”이 늘 발동되는 것은 아니다. 서방 정치가들은 시리아와 이란 반정부세력의 운명에 대해서는 격분하다가도, 이스라엘 분리정책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희생자들, 또는 바레인에서 총격당한 시아파 시위대, 또는 ‘정숙’하지 않았다고 처벌당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강간 피해 여성 앞에서는 잠잠해진다.

“보호책임”주의는 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이 원하는 때와 장소에서 ‘침략할 권리’를 다시 치켜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냉전 시대에 제국주의에 대한 강력한 견제세력이었던 퇴보한 노동자국가 소련 붕괴의 직접적 결과이다. 이전 소연방 인민들의 삶의 질과 기대수명을 곤두박질시킨 자본주의 반혁명의 승리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내의 불평등을 촉진했고, 예전에 소연방과 함께 했던 신식민지 ‘깡패’ 국가들에 대한 공격 물꼬를 텄다. 그 첫 번째가 이라크를 침략한 1991년의 ‘사막의 폭풍’ 작전이었다.

2007년, 전 나토 최고사령관이었던 웨슬리 클라크 장군은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끌어낸 (당시 미국무부 차관이었던) 폴 월포위츠와 1991년 나눈 대화를 회상한 연설을 했다.

“우리는 중동지역에서 우리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고 소련은 우리를 제지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다음의 거대열강이 우리 앞에 나타나기 이전, 시리아, 이란, 이라크 등 오랜 소련 동맹국들을 정리하기 위해 5년에서 10년이 필요할 것이다.”—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TY2DKzastu8



클라크 장군이 자신의 저서 『현대전의 승리』라는 책에서 2003년에 다시 밝힌 것처럼, 2001년경에, 이 “정리” 목록은 7개로 늘었다.

“2001년 11월 펜타곤에 돌아갔을 때, 군 고위간부 중 한 명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이라크를 상대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 있었다. 당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논의되고 있었는데, 이라크에서 시작하여 다음엔 시리아 그리고 레바논, 리비아, 이란, 소말리아 그리고 수단에 이르기까지 총 7개 나라가 들어있었다.’”



지금까지, 그 목록에 있던 나라 중 (이라크와 리비아) 두 나라가 이른바 ‘인도주의적인’ 제국주의 군사침략의 공포를 겪었다. 두 경우 모두 사회와 경제 간접시설들이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그로 인해 수백만의 인민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최소한 1991년부터 미 국방부의 목표가 되어 왔던 시리아는 이 물결의 세 번째가 될 것이었다.

2006년, 헤즈볼라 분쇄에 실패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 당시, 2006년 7월 30일치 <예루살렘포스트>는 이스라엘 정부가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공격하는 것에 관심 있다는 언질을 미국으로부터 받았다.”라고 보도했다. 이미 제 코가 석자였던 이스라엘은 이 제안을 거부했고 몇몇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사실, 레바논에서 철수한 이후, 이스라엘 국가안전국방부 장관은 시리아와 평화 논의를 제안했다. 미국은 이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하렛츠>지에 따르면, 이스라엘 관료들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부장관에게 시리아와 예비협상을 지속하는 문제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는 ‘생각도 하지 말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Foreign Policy in Focus, 2007년 5월 1일



이스라엘 군정보부 수장인 아비브 코차비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Haaretz, 2013년 7월 24일): ‘대체로 미군의 이란 공격을 지지해왔던 이스라엘 지배계급은, 시리아를 ‘세계 이슬람성전의 아성’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 축출에 그다지 열광적이지 않다.’ CIA 부국장을 지내다 은퇴한 마이클 모렐도 비슷한 우려를 표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의 2013년 8월 6일 인터뷰에서 그는 “시리아 알카에다 근본주의와 내전의 위태한 조합은 미국 안보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라고 경고했다.
 
2007년: 미국의 이라크 ‘작전변경’

‘알카에다 근본주의’는, 아프가니스탄 좌파 민족주의자와 소련에 대항해 싸울 지하드 외국 전투요원들의 훈련, 무장, 수송을 목적으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합작하여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 이 모험의 첫 지원자 가운데에 하나가 나중에 알카에다 지도자가 되는 부유한 사우디아라비아인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2003년 이란 정복은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 군사 지배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상당히 위험한 시도였고, 예상과 대단히 다른 결과를 낳았다. 미 국방부 전략가들은, 미국 중동지배의 핵심 방해세력인 이란과 정면으로 맞설 만한 유일한 아랍 군대를 파괴한 이후에, 수니파 사담 후세인에 의해 오랫동안 억압당해왔던, 이라크 다수를 구성하는 시아파 인민이 침략자들을 해방군으로 반기고 군대에 적극적으로 들어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이라크 시아파 지도자들은 이웃한 이란 회교공화국과의 친선도모를 선택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미 점령군은, 바트당 세속민족주의자들과 회교 지하드 전사들 모두 가세한, 수니파의 맹렬하고도 효과적인 군사 저항에 직면했다. 점령자들과의 협력을 배제한 ‘이슬람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전투적 성직자인 무크타다 알사드르 추종자들 같은 다수 종족 시아파들과도 대립해야 했다. 2004년 4월 수니파 저항 근거지인 팔루자를 미 해병이 공격했을 때, 수니파 전사들을 돕기 위해 다른 시아파 투사들이 팔루자로 향하는 동안, 사드르의 ‘마흐디 군’은 점령군을 남쪽으로 유인했다. 종족공동체의 차이를 초월한 이 단결은 ‘분할 통치’ 전략을 추구해 왔던 현장 지휘관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팔루자에서 일어난 일은 과거 점령기간 동안 그리고 심지어 이라크의 현대사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단결을 이루어낸 것이었다…. 1년 전 미국 병사들이 침공하였을 때, 이라크의 다수 시아파와 권력 전체를 차지했었던 수니파 사이의 내전을 막는 것은 부시 행정부의 주된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저항은 달아오르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번지고, 수니파와 시아파가 함께 한다. 그들은 서로 가까이 지켜보고 있다고 미국 군사지도자는 말한다.

“점령군 지휘관 리카도 산체스 장군은 ‘위험은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에 가장 낮은 수준에서 상호 연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것이 단지 전술적 차원에 머물도록 힘써야 한다.’라고 오늘 말했다.”—뉴욕타임스, 2004년 4월 8일



끈질긴 수니파 저항을 저지하는 데에 실패한 수 년 간의 시도 뒤에, 미 전략가들은 이 지역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이 성장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갑작스런 전술변환을 실행했다. 전역장교 언론인 시무어 허쉬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시아파가 우세한 이란을 약화시키기 위해, 부시 행정부는 중동의 우선순위 재조정을 결정했다. 레바논에서 미 정부는, 수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협력하여,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조직 헤즈볼라 약화 목적의 비밀작전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과 그 동맹국인 시리아를 겨냥한 비밀작전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 작전들의 부작용으로, 미국에 적대적이고 알카에다에 동조하며 전투적 이슬람을 신봉하는 수니 근본주의 조직들이 강화되었다.

“새로운 전략의 모순적 측면 중 하나는 이렇다. 지금까지 이라크에서 미군을 겨냥한 물리적 공격 대부분은 시아파가 아니라 수니파에 의해 자행되었다. 그러나 미 정부 전망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의 가장 심대한 그러나 의도되지 않은 전략적 결과는 이란의 강화이다.”—뉴요커, 2007년 3월 5일



이 전략의 많은 구체적 실천사항 처리는 사우디에 위임되었다. 이 위임은 미국과 회교 전사들 모두에게 ‘그럴듯한 부인권’을 제공한다. 즉, 둘 모두는 서로가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들켜서는 안 된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란과 시리아를 상대로 한 미국의 비밀작업은 믿음직한 똘마니 영국의 도움을 받았다. 2013년 6월, 프랑스 전(前)외무장관 롤랑 뒤마는 영국이 시리아 전사들을 훈련시키고 있다는 정보를 2009년에 접했다고 프랑스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시리아에 대한 적대정책이 시작되기 거의 2년 전에 영국에 갔다. 시리아 때문이 아니라, 우연히 다른 일 때문에 그곳에 있었다. 몇몇은 내 친구이기도 한 영국 관료들은 한편으로는 나를 설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백하듯이 시리아에서 뭔가 준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었다. 영국은 시리아를 침공할 군사요원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이 작전은 한참 전부터 준비된 일이란 것을 말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준비되고 고안되고 계획된 것이다…. 시리아 정부 전복을 목적으로.”—www.youtube.com/watch?v=jeyRwFHR8WY



 
시리아 내전

이제 2년 반 동안이나 치러진 시리아 내전은, 2011년 친서방 독재자들을 끌어내린 ‘아랍의 봄’ 시위가 일어난 튀니지와 이집트 동료들을 따르려는 젊은 시위대를 아사드 정권이 철권 진압하면서 시작되었다. 유사한 시위가 중동 전역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언론들은, 미국의 ‘정권교체’ 명부에 있는 나라들에서는, 왜 비폭력적인 정치 시위가 장기적 유혈 갈등으로 발전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리비아와 시리아 시위대에 대한 처음의 대응은, 미국 제5함대 기지가 있는 걸프 왕국인 바레인의 그것보다, 더 조심스런 것이었다. 대개의 경우, 시위가담자는 총에 맞아 쓰러지고 주모자는 정보기관에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살해되었다. 신식민지 독재 국가에서 보통 일어나는 일들이다. 서방 언론은 특정한 나라의 행위에 다른 나라의 행위에 대한 것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시리아 바트당 지도부는 “자기 나라 인민을 학살하는” 자들로 비난되었다. 미국 잡지 <외교정책의 초점(Foreign Policy In Focus)> 편집자 피터 세르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사드 정부는 당연히 잔혹한 정권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전이지 일방적인 학살이 아니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초여름에 [반정부] 시리아 인권감시단은, 이 갈등에서 사망한 것으로 생각되는 10만 명의 시리아인 가운데 43%는 아사드 정부 편에서 싸우다 죽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것은 비전투요원과 반정부군 사망자 모두보다 많은 것이다.”—2013년 9월 6일



부르주아 언론은 시리아 갈등의 뿌리가 최소한 5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일상적으로 무시한다. 1960년대에 무슬림형제단에 의한 대중시위는 바트당 ‘무신론’ 정권과 그 ‘사회주의’ 정책 특히 정교분리 정책에 저항했다. 1970년대 후반 경, 이 투쟁은 (소련 고문관들과) 시리아 군부에 맞선 무자헤딘 회교전사들의 게릴라 투쟁으로 발전되었다. 결국 반란군은 잔혹하게 진압되었다(1982년 반란군 근거지 하마에서 6천명에서 2만 명가량이 살해되었다). 무슬림형제단은 지하로 들어갔고 그 지도자들은 2011년 ‘아랍의 봄’ 이전까지 망명했다. 그들은, 대다수가 추방자들 그리고 노골적인 친제국주의자들로 구성된 <시리아국가위원회(Syrian National Council)>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SNC는 미국과 (터키, 걸프 지역 왕조국가들 그리고 과거 식민 지배자들로 구성된) <시리아의 친구들>의 지지를 받았다.

리비아에서처럼 시리아에서도, 이슬람 반란자들에 대한 자금과 물자지원은 미국의 지역동맹자 특히 터키, 카타르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담당했다. 러시아는 군수품과 정치적 지원을 통해 현 정권을 지지한다. 아사드는 이라크와 이란 그리고 레바논 헤즈볼라 시아파 동맹자들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외국 개입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시리아 갈등은 본질적으로 바트당 정권과 이슬람 조직들이 점점 더 부상하는 반대조직들의 결합체 사이의 권력 투쟁이다. 오늘날 대략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저항군 가운데 아주 ‘작은 소수파’만이 비종교인이다.

“국방 고문 IHS Jane의 새 연구에 따르면 알카에다에 연결된 강력한 파벌들에 소속되어 싸우는 1만 명의 지하드 전사들이 있고 외국에서 온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또 다른 3만 명에서 3만 5천 명의 강경 이슬람주의자들은 지하드와 대부분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국제적 투쟁보다는 시리아 전쟁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그 외에 최소한 3만 명가량의 온건분자들이 있고 그들은 이슬람 성격을 갖는 조직들에 소속되어 있다. 비종교적이거나 순전히 민족주의적 조직들은 반란군 내에서 소수이다.”—텔레그라프(런던), 2013년 9월 15일



시리아 내전은 중요한 부족공동체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지방의 수니파와 도시 빈민들은 반란군 편을 든다. 바트당 정권은 (군부와 정보부처 핵심간부 대부분을 구성하는) 알라위트(Alawite) 시아파 소수 그리고 도시 수니파 자본가계급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 기독교인과 시리아의 20개 남짓한 소수 부족과 종교인 대부분은 반대세력보다 일반적으로 친정부적이다. 2011년 12월 카타리 여론조사기관의 시리아의 마지막 여론조사에 따르면 놀랍게도 55%가 아사드의 퇴임을 반대한다. 이것은 바트당 독재에 대한 지지를 표현한 것이라기보다는 수니 이슬람 정권이 더 나쁠 것에 대한 공포를 반영한 것이다.

2011년 3월 최초의 시위에 참여했던 많은 비종교 조직들은 SNC보다는 <민주적 변화를 위한 국가협력위원회(National Coordinating Committee for Democratic Change: NCC)>와 함께 했다. 내전에 의해 세력이 상당히 약화된 것으로 보이는 NCC는 주로 두 가지 점에서 SNC와 구별된다. 하나는 외국 군사개입에 대한 단호한 반대이고 다른 하나는 바트당 국가에 대해 군사대립보다는 협상을 통해 양보를 얻어내려 한다는 점이다.

2012년 3월 이스탄불에서 열린 <시리아의 친구들> 회의는 SNC가 시리아 인민의 ‘정통성 있는’ 대표자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 선언도 그들이 대중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실을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7개월 이후,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의 요청에 따라 <시리아의 친구들>은 다시 회의를 소집했다. 카타르에서 열린 이 행사의 목적은 서로 협력하여 보다 그럴듯한 꼭두각시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클린턴 여사는,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는 인물들과 조직들을 추천하는 등, 그 회의를 소집하는 일에 크게 관여했다고 말했다.

“시리아국가위원회(SNC)를 언급하며 클린턴 여사는, ‘우리는 SNC가 더 이상 반대파의 지도자라고 보이지 않게 만들기 위해 일해 왔다. 반대파에 참여할 수는 있으나, 그 반대파는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을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시리아 안팎 사람들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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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그 위원회는 터키의 지원을 받는 장기 망명자 조직 무슬림형제단의 주요 기관으로 비쳤다. 그 위원회는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고 있고 근본주의자들과 지나치게 긴밀하다고 클린턴 여사는 지적했다.

“모든 시리아 사람을 대표하고 보호하는 일에 복무할 반대파 지도조직, 그리고 시리아 혁명을 가로채려는 근본주의자들의 시도에 강력히 저항할 반대파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뉴욕타임스, 2012년 11월 1일



혁명적 정통성의 자격증을 발급하겠다는 미 국무부의 생각은 상당히 괴이한 발상이다. 그러나 “시리아 혁명을 가로채려는”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클린턴의 걱정은 스스로 맑스주의 조직이라고 주장하는 세계 많은 조직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들은 지난 몇 년 간 모종의 ‘혁명적 과정’이 진행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지하드의 역할을 무시해왔다.

물론 미 국무성이 SNC를 개칭한 <시리아혁명과 반대세력 연합(National Coalition of Syrian Revolutionary and Opposition Forces)>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제국주의 꼭두각시이고 실재적 기반이 없는 조직이다. 지난 여름 아사드 정권과 동맹자들이 군사적 우위에 서자, 반대자 연합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자유시리아군(Free Syrian Army)> 몇몇 부대는 정권과 협상을 하는 한편, 대부분의 전투를 수행한 강경 지하드주의자들이, 덜 헌신적인 참가자들을 비난하면서, 반대파 연합에서 떨어져 나갔다.
 
파이프라인 정치와 시리아 갈등

서방 언론이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는 시리아 갈등의 핵심 요인은, 에너지 자원 특히, 유럽연합에 공급하는 가스관을 둘러싼 투쟁이다. (시리아 타르투스에 있는 러시아 해군기지에서 멀지 않은) 이 지역에서 최근 발견된 천연가스는 그 경쟁을 더 날카롭게 했다. 카타르와 이란 사이 페르시아만(걸프만) 아래쪽 파르스 남부 가스전이 가장 대규모이다. 이라크 가스를 EU 여러 나라에 실어 나르기 위해, 터키와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고 헝가리를 거쳐 오스트리아에 이르는 (나부코 또는 터키-오스트리아 송유관이라고 알려진) 가스관 건설 계획은 미국이 바그다드 통치권을 잃자 연기되었다. 그것은 단지 상업적 기획만이 아니라,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유럽의 의존을 줄이기 위한 시도였다. 남부 파르스 지방의 카타르 가스를 수송하려는 나부코 계획이 지금 다시 논의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시리아를 거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인도 국방연구분석부(Institute for Defense Studies and Analyses: IDSA)는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2009년 카타르 왕 세이크 하마드 빈 타니가 터키를 방문한 동안, 터키의 나부코와 연결하는 송유관 건설이 합의되었다. 그 관은 카타르에서 시작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그리고 시리아를 거쳐 터키에 이를 것이다. 유럽 시장은 탐욕스러운 터키와 그 자원을 나눌 것이다.”—「시리아를 둘러싼 가스 전쟁」, 굴산 디에틀, 2013년 9월 9일



그러나 아사드 정권은 협력을 거부했다.

“프랑스 전 외무장관 뒤마의 주장에 따르면, 영국이 시리아에서 작전을 개시한 해와 같은 해인 2009년, 아사드는 카타르가 제안한 협약 승인을 거부했다. 그 협약은 러시아를 따돌리고 유럽 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카타르의 북부 가스전, 이란의 남부 파르스 가스전을 경유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시리아를 통과하여 터키에 이르는 가스관 건설에 관한 것이었다. 아사드가 거부사유로 든 것은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제1 공급자이자 시리아의 동맹인 러시아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그 다음 해, 아사드는 이라크와 시리아를 관통하는 100억 달러에 달하는 가스관 공사 협상을 이란과 추진했다. 그 또한 카타르와 공유한 남부 파르스 가스전에서 나오는 가스를 이란이 유럽에 공급하게 될 것이었다. 그 계획의 양해각서(MoU)는, 시리아 내전이 다마스쿠스와 알레포로 확산되던, 2012년 7월 승인되었다. 그리고 그 해 초 이라크는 가스관 건설 협약안에 서명했다.

“이란-이라크-시리아 가스관 계획은 카타르 계획을 노골적으로 엿 먹이는 것이었다.”—가디언, 2013년 8월 30일



(러시아 거대 에너지회사 가즈프롬이 건설에 참여할) 가스관 계획은, 건설하기에 더 용이한 지역(터키엔 산악지대가 많다)을 더 짧게 관통할 것이기 때문에, 경쟁 상대인 나부코 계획에 비해 훨씬 쌀 것이었다. IDSA 연구가 말하는 것처럼 두 가스관 건설의 가능성 여부는 시리아 내전의 결과에 달려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시리아 경로가 더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겠지만, 정치 환경이 지금 전혀 좋지 않다. 시리아와 이란 모두는 경제제재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외부 투자를 끌어내기 어렵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상당 기간 동안 넓은 지역에서 가스관 건설이 불가능하다.”



미 전략가들은 나부코 계획을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의존을 완화할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몇몇 유럽 자본가들은 그들이 공급자들과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중동 에너지에 접근하기 위해 미국 중개인에게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시리아 내전은 깊은 지리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EU는 이미 1/4의 천연가스를 러시아에서 충당한다. 만약 이란에서 시작하는 가스관이 연결되면 미국 회사들은 아마도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독일과 (이란,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와 연결된) 러시아 사이의 긴밀한 경제 협력은 유라시아 세력 균형에 큰 변화를 낳을 것이다.

“보도하기에 적절치 않은” 것으로 북미 매체들이 판단한 시리아 내전 관련 사실들을 독일 매체들이 보도하는 경향은 독일이 미국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2003년 독일 제국주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고, 2011년에는 나토의 리비아 폭격을 결정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 중국과 함께 기권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은, 기울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세계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과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레닌주의와 제국주의 침략

맑스주의자는 노동계급과 피억압 인민의 역사적 기억의 저장고이다. 지난 백 년 동안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은 후진국들을 셀 수 없이 많이 침략했다. 그것들은 모두, 문명의 혜택을 공유하고, 영혼을 구하고, 요즘엔 살인 정권의 희생자를 구한다는 둥, 이타적 동기 때문이라고 묘사되었다. 그러나 그 ‘인도주의’ 가림막 뒤에서, 제국주의자들은 항상 그들의 경제와 지정학적 이익을 추구했다. 바로 이것이 혁명가들이 언제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신식민지 토착 세력들과, 얼마나 반동적인지와 상관없이, 군사적으로 같은 편에 서는 이유이다.

1983년 이슬람 지하드가 베이루트에 주둔한 미국 해병과 프랑스 외인부대 병영을 날려버렸을 때, 우리는 이것을 식민 점령에 대한 방어적 반격이라고 규정했다. 우리는, 트럭 폭탄공격 등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제국주의 요새들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취했다. 이 입장은 좌익 개량주의 주류들 그리고 제국주의 날강도들의 운명을 걱정하며 좌익적 언사를 일삼는 사이비 혁명조직 스파르타쿠스동맹의 입장과 날카롭게 충돌한다.

현 시리아 내전에서 혁명가들은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제국주의자들의 직접적 공격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노동인민은, 한쪽의 바트당 독재 그리고 또 다른 쪽의 친제국주의 반대자들과 반동적인 종교지도자들 중 그 어느 쪽의 승리도 지지할 수 없다. 많은 좌익들은 아사드 반대파들의 성격 규정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마치 그 ‘반란자’들이, 몇몇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혁명적’ 내용을 대표한다고 말한다. 지난 2011년에는, 거의 똑같은 조직들이, 제국주의 열강들이 지원하는 리비아의 카다피 반대자들을 흡사한 관점으로 바라보았다(<1917> 34호에 실린 「리비아와 좌익」을 볼 것). 오늘날 우리는, 이란 성직자와 시리아 바트당 살인자들에 어떠한 지지도 보내지 않으면서, 제국주의 군사침략에 맞서 이란과 시리아를 무조건적으로 방어한다. 이 입장은 새로울 것도 없고 처음도 아니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이끌던 혁명적 코민테른에 의해 거의 백 년 전에 수립된 정책일 뿐이다.
 
연속혁명과 중동

현대 경제에서 극도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상품인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지가 많은 나라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저개발’ 나라들과 더불어 중동 인민은, 자본주의의 이윤 최대화 논리로 인해 끝없는 억압과 도탄 속에 살고 있다. 중동엔 터키의 자동차 공장, 이집트의 섬유산업 그리고 대부분 외국자본이 장악한 에너지 부문 등 선진 산업 분야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지역은 가난, 실업 그리고 경제적 후진성을 그 특징으로 가지고 있다. 이것을 바로 레온 트로츠키가 “불균등 결합발전”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수 세기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시골의 농촌 경제 바로 옆에 현대적 생산이 공존하는 식이다.

트로츠키 연속혁명론의 핵심은, 제국주의 지배에 가로막힌 반(半)식민지, 또는 의존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발전은 오직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적 발전이 지체된 지역 특히, 식민지 또는 반(半)식민지 나라들에서 연속혁명론은 민주주의와 민족해방을 획득할 완전한 해결책은 종속 민족의 지도자 특히 농민대중의 지도자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의미한다.”—『연속혁명』, 1931년



이 입장은 1925년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관료집단이 제출한 입장과 전적으로 대립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진보’ 분파와 ‘혁명 동맹’을 건설하는 것이 식민지 또는 신식민지 혁명가들의 임무라는 입장을 제출했다.

“민족자본가가 이미 혁명 정당과 화해추구 정당으로 나뉜, 그러나 자본가의 화해 분파가 아직 제국주의와 밀착되지 않은 이집트나 중국 같은 나라에서…. 공산주의자는 반드시 민족통일전선 정책을 통해 노동자와 소자본가들의 혁명적 동맹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한 나라들에서 이 동맹은 국민당 같은 노동자와 농민의 단일 정당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월터 라퀘르 『중동의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인용



중국에서 스탈린이 추구한 부르주아지와의 단결 정책은 2년 뒤, 크렘린이 충성을 맹세하라고 명령한 “노동자와 농민의 단일 정당”에 의해 중국공산당이 참수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비슷한 결과가 중동에서 재현되었다.

수십 년 동안 퇴보한 노동자국가 소련은 중동에 대한 미국과 여타 제국주의 나라들의 침략을 제한하는 견제세력 역할을 했다. 이것은,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투쟁에서 토착 공산주의 투사들의 역할과 더불어, 소련을 지지하는 정당들이, 1950년대 중동 주요 나라들에서, 노동대중과 민족적/종교적 피억압 소수 인민들의 지지를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크렘린의 기생적이고 반혁명적 스탈린주의 지배집단은 제국주의와 장기적인 ‘평화공존’이라는 덧없는 희망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그러한 신뢰를 저버렸다. 혁명적 잠재력을 가진 투쟁들이 시리아, 이집트 그리고 이란에서 연달아 터졌을 때, 공산당들은 크렘린의 직접적 조직처럼 움직였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강력한 봉기를, 이집트의 압델 나세르나 이란의 모하메드 모사데크 같은 이른바 ‘반제국주의’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을 향한 지지로 향하게 했다. 모든 나라들에서, 소부르주아 보나파르트 ‘차악’들은 안정을 회복한 이후 좌익과 노동자 운동을 분쇄했다.
‘진보적’ 아랍 민족주의 독재자들에 대한 재앙적 굴종은 (스탈린주의와 동일시된) 맑스주의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우리가 지금 중동 전역에서 목도하는 것처럼, 부족주의와 종교적 반동의 득세를 낳았다. 세계 자본주의의 수백 만 희생자들의 눈에 이슬람 지하드는 억압적 독재자와 그들의 제국주의 상전에 맞서는 유일한 세력으로 비쳐진다.

지금 인기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객관적으로 진보적인 운동’이라고 묘사하려 드는 사이비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소망은 스탈린주의자들의 배신과 짝을 이루고 있다. 1970년대에 이것은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회교혁명에 머리를 조아리고 CIA가 조직한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을 ‘자유 투사’라며 지지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최근엔 같은 정치 조류들이 이집트의 반동적인 무슬림형제단이나 시리아 반란군 그리고 나토의 리비아 하수인들을 ‘혁명가들’이라고 환호한다.

혁명 조직이나 그에 근접한 조직이 부재한다고 해서 계급투쟁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매체들은, 중동지역 제국주의 핵심 하수인 호시니 무바라크를 극적으로 끌어내린, 2011년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 시위에서 소셜미디어와 연계된 젊은이들을 과대평가한다. 그러나 그 정치현상은, 급등하는 식료품 가격과 엄청난 불평등 그리고 부패 정권에 맞선 7년 동안의 노동투쟁에 기초한 것이었다.

“지난 4년[2004-2008년]의 파업 물결 동안, 약 1천 7백 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한 1,900건 이상의 파업이 있었다.

“비료회사에서 일하는 어느 노동자가 말한 것처럼, 지속되는 파업은 ‘고용주들이 자신들의 회사에 사람이 일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들은 우리가 마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여겨왔다.’

“파업은 의류와 섬유 부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건설노동자, 운송노동자, 식료품생산 노동자 그리고 카이로지하철 노동자들에게로 번졌다. 2006년, 가장 크고 중요한 투쟁이 2만5천 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이집트방직(Misr Spinning and Weaving)에서 일어났다.”—가디언, 2011년 2월 10일



2008년 이집트방직 노동자들은 무바라크 독재정권이 수행하는 IMF 긴축정책에 맞서 산업도시 마할라의 저항을 주도하였다.

“경찰은 최소한 3명의 사망자를 낳고 수백 명을 가두고 고문한 뒤, 이틀 만에 봉기를 가라앉혔다. 무바라크 포스터를 끌어내리고 거리에서 경찰병력과 싸우고, 혐오스런 민족민주당 상징을 훼손하는 등 ‘마할라 인티파다’로 명명된 봉기의 각 장면들은 2011년 항쟁의 리허설이었다. 곧이어 나일 강 유역 북부 엘보롤로스에서 비슷한 봉기가 터졌다.”—가디언, 2011년 3월 2일



이집트 군부가 타흐리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대신 무바라크를 하야시킨 이유는, 비슷한 저항이 더 넓은 지역으로 번질 것을 염려한 때문이었다.
 
혁명 지도부의 필요성

이집트와 중동 전역에서 노동계급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 지도부는 음식, 주거, 고용안정 등 인민의 즉각적 요구와 외국소유든 국내소유든 자본주의 생산수단의 몰수 필요성을 연계시키는 강령을 움켜쥐어야 한다. 노동계급은 이윤을 위한 생산 체제를 전복할 역사적 이해와 (상품 생산과 분배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회적 힘 모두를 가지고 있다.

중동지역 한 나라의 혁명적 분출은 이슬람 세계 모든 노동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을 것이다. 한 나라에서 승리한 노동계급은 중동사회주의연방 건설을 선언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부족과 종교의 완전한 평등을 보장하는 것을 통해, 수십 년 동안의 제국주의 ‘분할 통치’ 결과인 부족 분쟁을 종식시키는 작업을 바로 시작할 것이다. 이 정책들은 열화와 같은 지지를 촉발할 것이다. 혁명적 노동자당은 동성애/양성애/성전환자들(LGBT)과 모든 부족 그리고 종교 소수자들 그리고 여성의 완전한 평등을 위한 싸움에서 반드시 선두에 설 것이다. 또한 모든 종류의 종교로부터 국가의 완전한 분리를 주창할 것이다. 계급의식으로 무장된 노동계급의 권력을 통해서만—쿠르드, 터키, 시아, 수니, 드루즈, 마론파, 콥트,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스라엘 유대인 등—다양한 인민들이 복잡하게 뒤섞인 이 지역의 만성적 불만들과 분쟁을 풀어낼 공정한 해결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제국주의 본고장에서의 임금, 연금, 사회보장 그리고 민주적 권리에 대한 요즘의 공격은 자본주의 착취와 억압 체제를 전복하는 데에 후진국과 선진국에 사는 압도적 다수 모두의 객관적 이해가 서로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 세계 약탈자들이 강력하고 전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희생자들이 세계적으로 공통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착취자들의 지위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경제 안에서 사회적 긴장의 축적과 집중은 한 지역에서 심각한 투쟁이 일어나면 그에 연결된 다른 고리로 퍼져나갈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심지어 구조물 전체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그 동안 무조건적으로 굴복해 온 전통적 정치적 후진층까지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바마 정부는 제국주의 나라의 정치적으로 가장 후진적인 미국 인민들로부터도 시리아 공격에 대한 지지를 끌어낼 수 없었다.

이윤을 위한 생산이라는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인 체제가 인류문명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에 맞서, 대중투쟁을 촉발하는 열쇠는 국제 노동운동 안에서 새로운 봉기 지도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수많은 희생자들의 에너지와 분노를 효과적인 혁명행동으로 집중시킬 수 있는 강령으로 무장한 레닌주의 전위정당 말이다. 국제볼셰비키그룹(IBT)은 제4인터내셔널을 재건한 혁명조직 건설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 혁명조직은 노동계급 지도부의 역사적 위기를 타개하고, 사적이윤의 최대화가 아니라 인류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계획경제에 기초한 세계 경제체제 건설로 나아갈 길을 열어젖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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