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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식민침략에 맞서 이란을 방어하자!

반제국주의 해방투쟁의 승리를 사회주의 혁명으로!

 

미국의 대() 이란 도발과 그 목표

미 제국주의가 신식민지 이란에 대한 도발 수위를 극도로 높이고 있다. 이미 이 해역에 항공모함과 전폭기 부대를 파견했고, 6~8만의 주둔병력을 12만으로 늘린다는 보도가 나온다. 15일에는 이란과 인접한 이라크 주재 자국 공무원 철수 명령을 내렸다. 자국민 소개 명령은 전쟁 직전에나 발효되는 것이다. 지난 422일 미국은 이란 석유수출 원천봉쇄를 위해 수입국가도 경제제재에 포함시키겠다고 으르렁댔다. 이는 선전포고나 다름 없는 조치였고 이에 대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언급하며 완강히 버텼다.

2015UN 상임이사국인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와 독일이 참여한 가운데 미국과 이란은 핵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와 핵무기 개발 중단을 맞바꾸는 조건이었고, 이것으로 미국과 이란의 해묵은 갈등이 잠깐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런데 작년 201858일 미국이 그 협정을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그 협정에 참여한 국가들의 비난과 우려를 아랑곳하지 않는 안하무인의 태도였다. 기만적 협정을 통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일시적으로 주저앉힌 미국은 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미국의 목표는 중동의 눈엣가시 이란 민족주의 보나파르트 정권을 교체하고 1979년 이전과 같은 고분고분한 친미 하수인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미국의 정권교체 작전에 대한 노동계급의 입장

이란의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이 침략행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거의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한 것과 같다. ‘그 저항을 누가 이끄느냐와 관계없이, 이란과 세계 노동계급은 미제의 패배와 이란의 승리를 위해 싸운다. 그러나 이란 인민의 반제국주의 의지와 이란 방어 의지는 오직 사회주의적 전망 속에서 최대화될 수 있다. 동시에 사회주의적 전망 속에서만 이란과 세계 인민은 제국주의 야만으로부터 근본적 해방을 꿈꿀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수문장 현 이슬람 정권에 어떤 정치적 기대와 환상도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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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와 이란 인민의 투쟁

다른 ()식민지 나라들처럼 이란 역시 제국주의 주도로 자본주의화되었다. 이란에 구축된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착취/약탈 시스템 방어를 위해 국가기구는 친제국주의적으로 재편되었다. 1979년 인민항쟁으로 타도된 팔레비 왕조는 악명 높았던 친미 하수인 정권이었다. ‘중동의 헌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팔레비 왕조의 이란은 중동지역 미국 패권의 핵심도구였다. 썩어빠지고 폭압적이던 왕조의 권력은 미제국주의 자본과 군사력으로 지탱되었다.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석유자원 약탈은 이란 인민의 불만과 저항의 원천이었다. 1951년 의회에서 수상으로 추대된 모하메드 모사데크는 이란 인민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석유산업 국유화를 단행했다. 서방과 이란의 관계는 급속히 긴장되었고 영국과 미국은 이란에 경제제재를 가하는 동시에 아약스 작전으로 명명된 쿠데타를 모의했다. 1953815일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 CIAM16의 지휘 하에 샤와 그의 장군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 쿠데타는 모사데크의 정당인 국민전선과 이란의 공산당 투데당(Tudeh: 이란민중당)이 조직한 전()인민적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샤는 로마로 도망쳤고 시위대는 샤의 동상을 부수면서 전제군주제 타도를 외쳤다. ()쿠데타 투쟁이 격화되자 18일에 모사데크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투데당에게 집회 해산을 요구했다. 투데당은 이에 저항하지 않고 모사데크의 요구를 받아들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샤의 장군 파즐롤라 자헤디가 두 번째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번에는 성공했다. 그리하여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사데크가 쫓겨나고 샤가 돌아왔다.

 

쿠데타 저지 실패의 후과

1953년의 패배는 이란 노동인민에게 거대한 재앙이 되었다. 한때 이란 노동계급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군대 내에도 많은 동조자가 있었고 다수의 지식인 역시 당원으로 거느렸던 투데당은 전멸했다. 거의 모든 노동조합이 파괴되었고 노조 자체가 금지되었다. 사회주의 신문과 간행물들이 폐간되고 숨 막히는 검열이 시행되었다. 모사데크가 시행한 소작료 인하 정책은 지주계급을 위해 폐기되었다. 미국의 도움으로 설립된 비밀경찰 사바크가 공장, 대학, 사회단체 곳곳에 침투하여 납치, 감금, 고문, 살인 등 온갖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승리를 거둔 미국 금융자본에게 53년부터 79년까지 이란은 그야말로 노다지 땅이 되었다. 미국의 5대 석유회사들은 영국이 독점했던 이란 석유이권의 지분을 40%나 할당받았다. 73년 오일쇼크 이후 샤가 광적으로 첨단무기를 사들이기 시작하자 미국 군수회사들은 베트남전 이후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 미국 은행들은 이란 정부의 막대한 석유수익금을 예치하고 이란에 차관을 빌려주어 엄청난 이자수익을 얻었다.


1979년 반팔레비 봉기

친제국주의 식민지 하수인 정권의 역할은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초과착취와 약탈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기생적이고 의존적 정권이기에 예외없이 부패하고 반인민적이다. 초과 착취와 폭압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낳는다. 축적되던 사회불만은 1978~79년 인민봉기로 폭발했고 이로 인해 팔레비 왕조는 타도되었다.

그 승리로 이란 인민은 사회주의로 나아갈 유력한 기회를 맞았다. 이란 노동계급은 그 봉기에서 구경꾼이 아니었다. 석유산업을 필두로 이란 기간산업 노동자의 총파업은 팔레비 왕조 타도의 결정적 지렛대가 되었다. 혁명 과정에서 수립된 전국파업위원회 쇼라(Shuras)’는 노동자소비에트의 맹아였다. 1917년 러시아처럼 혁명적 지침을 제공하는 지도부가 있었다면, 이란은 친제국주의 왕조 타도에 이어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혁명 지도부의 부재와 투데당의 배신

그 동안 반제국주의 해방투쟁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것처럼, 혁명지도부의 부재가 이란 봉기의 한계가 되었다. 혁명을 자본주의 지역으로 연착륙시키기 위해 서방 제국주의자들은 동분서주했다. 혁명이 계급적으로 발전하여 사회주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연착륙작전에서, 완고한 반공주의 성직자 호메이니는 그 중심이 되었다. 이란 노동계급은 호메이니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그가 계급의 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했다. 곧 드러날 계급적 균열과 투쟁을 위해 정치적으로 단단히 준비해야 했다. 그것은 오직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와 같은 혁명전위를 건설해야만 성취될 수 있는 목표였다.

스탈린주의 공산당 투데(Tudeh: 이란민중당)는 노동계급 내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투데당은 팔레비 왕조 타도 이후의 결정적 국면에서 자본가와의 계급협조주의(‘인민전선’)로 일관했다. 팔레비 타도 직후, 이슬람국가를 수립하려는 호메이니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이 큰 규모로 벌어졌고,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페다인과 무자헤딘 등이 그 투쟁을 이끌었다. 그러나 투데당은 그 운동과 조직들을 군사적으로 탄압하는 호메이니 편에 섰다. 호메이니 정권에 대한 환상과 협조 정책으로 노동계급의 자산을 탕진하며 고립되던 투데당은 급기야 1983년 그 자신마저 궤멸되었다.

 

이란좌익들의 계급협조주의

1979년 혁명 당시 좌익진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조직은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페다인과 좌익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무자헤딘이었다. 이들은 모두 샤에 맞서 게릴라투쟁을 영웅적으로 벌였고 1979년 혁명의 마지막을 장식한 무장봉기의 주역이었기에 광범위한 지지와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두 조직 모두 이론적 능력이 저열했기 때문에 호메이니 일파의 계급적 성격을 규명하지 못했다. 그 결과 두 조직 모두 호메이니를 진정한 반제국주의투사로 여겨 호메이니 진영과의 투쟁을 회피하고 단결을 꾀했다.

투데당은 1953년 패배의 책임과 지도급 인사들의 전향 그리고 샤의 집요한 탄압으로 이란 내 사회적 기반이 거의 없었고 평판도 나빴기에 1979년에 큰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게다가 투데당은 다른 스탈린주의 정당들이 그러하듯, 고질적인 계급협조주의(인민전선) 노선을 가지고 있었다. 투데당은 호메이니와의 공동행동으로 귀결되는 인민전선 노선과 소련의 후광을 바탕으로, 계급협조와 비타협적 투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페다인을 분열시켜 전자를 추구하던 다수파를 획득하게 된다.

 

호메이니 진영의 공세와 좌익의 패배

무자헤딘은, 1979년부터 19805월에 국회의원 선거가 끝날 때까지, 호메이니에 대한 비판을 삼가고 호메이니 진영의 반민주적 테러에 수동적으로 대응했다. 심지어 그들은 호메이니 진영이 자신들에게 테러를 자행할 때도 결정적 충돌을 회피하고 호메이니에 대한 비판을 삼갔다. 그러나 국회의원 선거가 부정선거로 끝나고 호메이니가 좌익 대학생들을 공격하는 문화혁명을 일으키자 그제야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호메이니의 측근이었던 바니 사드르 대통령과 동맹을 맺고 호메이니 진영에 대항했다. 무자헤딘은 바니 사드르와의 동맹 때문에 자신의 구호를 자유주의적 요구에 한정시켰다.

투데당과 페다인 다수파 그리고 소련은 소위 반제국주의적인 호메이니와의 계급동맹이 가능하리라고 보았다. 투데-페다인 다수파는 호메이니 진영과 갈등의 수위를 높이던 무자헤딘에게 반제국주의민주전선’(Anti-Imperialist Democratic Front)에 합류하여 호메이니와 화해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무자헤딘은 이를 거부했다.

1981620일 바니 사드르와 무자헤딘은 거리로 나서 호메이니파 이슬람주의자 타도를 호소했다. 여러 도시에서 많은 대중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에 참여했고 이와 동시에 호메이니파의 유혈진압이 시작되었다. 투데당과 페다인 다수파는 시위대가 아닌 호메이니 편을 들었고 시위는 분쇄되었다. 그 결과 테헤란대학교 근처에서만 50여 명이 죽고 1000여 명이 체포되었다. 무자헤딘은 많은 조직원을 잃었고 호메이니 측근들에 대한 테러와 게릴라 투쟁을 시작했다. 호메이니는 즉각 보복을 가해 그해 12월까지 공표된 숫자로만 4800명을 처형했다. 이중에는 무자헤딘, 페다인 소수파 조직원과 기타 좌익조직 활동가 그리고 노동운동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좌익노동진영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19821월 이란의 마오주의 조직인 공산주의동맹이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해 지방의 소도시 아몰(Amol)에서 봉기하자 투데당과 페다인 다수파는 군대와 함께 이들을 진압했다.

한편 좌익조직들은 쇼라에게 정치적, 이론적 지도를 제공하기는커녕 방치하거나 심지어 쇼라를 공격하는 적들에 협조했다. 그 결과 쇼라는 1981년 들어 하나둘씩 이슬람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아 무너지거나 이슬람 쇼라로 어용화되었다.

 

투데당의 파멸과 이슬람 혁명의 완성

1982, 좌익노동계급 진영이 크게 약화되자, 호메이니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투데당과 페다인 다수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1982년 투데당에 깊이 관여했던 KGB요원 블라디미르 쿠지킨이 영국으로 망명해 투데당에 대한 모든 정보를 영국정보국에 넘겼다. 영국은 이 정보를 호메이니에게 건넸고 이를 바탕으로 19832월 대규모 체포가 시작되어 지도자부터 평당원까지 대부분의 당원들이 체포되었다. 19835월에는 투데당 지도자 일부가 TV에 나와 자신들이 소련의 스파이임과 이슬람의 우월성자백했다. 덕분에 그들은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평당원들은 총살대와 감옥에서 죽어갔고 이란 사회주의 혁명도 끝장났다.

그리하여 노동인민의 열망으로 터져올랐던 반팔레비 반제국주의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일그러지며 이슬람공화국이라는 기형아를 낳았다.

 

미제국주의의 손실

노동계급 혁명지도부의 부재와 투데당의 배신으로 1979년 이란 혁명은 쪼그라들고 말았지만, 미제국주의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되었다. 매장량 세계 제4위의 석유와 제2위의 가스뿐 아니라, 이란은 금속, 비금속 등 풍부한 천연자원의 보고이다. 게다가 중동의 헌병으로 불렸던 것처럼 이란은 미 제국주의 패권을 확장 강화할 요충지였다. 그러나 미제국주의에게 지금의 이란은 눈엣가시이다. ‘정권교체작전대상인 시리아 아사드 정부에 대한 이란의 지원은, 러시아의 지원과 더불어, 미국이 시리아에서 고전하는 중요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저항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친미 하수인 정권이 타도된 이란은 미국에게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시리아 리비아 소말리아 레바논 베네수엘라 북한 등과 더불어 깡패국가나 정권교체 목록 앞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슬람정권의 반동성

이란의 이슬람정권은 식민지 노동계급과 피억압인민의 민족해방투쟁에 업혀 등장했지만, 사회주의 혁명을 가로막고 제국주의와 타협하려는 보나파르트주의 자본가 정부이다. 노동계급을 탄압하고 정치적 자유를 야만적으로 억누르는 폭압정권이다. 히잡 강요로 상징되는 것처럼, 여성을 봉건적으로 억압하는 신정국가이다. 우리는 이 이슬람정권이 노동계급의 이해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어떠한 정치적 기대도 하지 않는다. 지금은 제국주의 침략에 직면해 살짝 감추어져 있지만, 더욱 근본적인 적대는 계급 사이에 있다. 1970~80년대 역사가 보여주듯이 이란의 이슬람정권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처럼, 제국주의 학정을 거부하는 노동인민에 떠밀려 오늘 반제국주의 투쟁에 나서고 있지만, 자본주의 질서의 수장이라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머지않아 투쟁을 잠식하거나 가로막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란 노동계급은 오늘 군사적 공동전선에 참여하면서, 훗날 부르주아 체제 타도를 위한 조직적·정치적 무장에 착수해야 한다.

 

제국주의의 발작증세

몇 년 간의 경제호황으로 기고만장해진 미국 트럼프 정권은 제국주의 탐욕을 숨기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시비를 걸며 폭력을 휘둘러대고 있다. 8년 동안 이어지는 정권교체 내전으로 시리아를 황폐화시키고 대량의 유럽난민 사태를 낳았음에도, 미국은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제국주의는 베네수엘라 정권교체 작전을 벌이고 있고, 중국에 무역전쟁을 선포했으며, 지난 1년 동안의 극적 평화무드를 차갑게 식히며 북한 화물선박을 억류했다. 미국은 지금 전세계를 들쑤시며 인류를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 이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기보다, 제 모순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쥐어뜯으며 닥치는 대로 날뛰는 제국주의 말기적 증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승리의 조건

이란과 세계 노동계급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중동에서 미제와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 꼭두각시 국가들의 패배를 간절히 바란다. 제국주의와 그 하수인들에 대한 이란, 이라크, 예멘, 팔레스타인 등 중동인민의 승리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세계 노동인민의 사기를 북돋고 국제적 역관계를 유리하게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 승리를 통해 이란과 노동계급에게는 또 다시 사회주의적 전망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 전망 실현을 위해서는, ‘계급 대 계급의 원칙을 비타협적으로 견지하고, 반제국주의 해방투쟁의 에너지를 사회주의 혁명으로 인도하는, 연속혁명의 강령으로 체화된 레닌-트로츠키주의 혁명지도부라는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2019520

볼셰비키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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