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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 2015 참관기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맑시즘행사가 26~8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렸다. 10년여 동안 지속되며 매 해 상당한 수의 선진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이 행사는 맑스주의 대중화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사이사이엔 기회주의가 맑스주의로 포장돼 전달되기 때문에 노동계급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소련 등 노동자국가 방어노선 포기를 위해 발명된 국가자본주의론은 노동자연대와 그 본류인 국제사회주의자(IS) 전통이 지닌 기회주의의 뿌리이다. 기회주의는 총체적이다. ‘국가자본주의론이라는 후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제국주의론을 왜곡하고, 계급협조주의(‘야권연대라고 순화되어 불리는 인민전선)를 합리화한다.

노동자연대가 주최하지만, 한국노동계급의 자산이기도 한(이 문제는 다음 참관기에서 더 논한다.) 맑시즘 행사에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참여해 왔고, 그 내용을 문서로 남겨왔다.

맑시즘2013 참관기: “정전협정 60: 한반도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맑시즘 2012참관기 1: 혁명가들과 그 고전들 레닌의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맑시즘 2012’ 참관기 2: ‘맑시즘,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해방

맑시즘 2012’ 참관기 3: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귀환동아시아는 어디로?’

맑시즘 2012’ 참관기 4: ‘오늘날 그리스의 경제·정치 위기와 저항

다른 모든 것들이 그렇듯, 노동계급의 정치의식도 오직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을 통해 발전한다. 맑시즘 행사 참가와 참관기를 통해 우리가 제기하는 정치 논쟁이 노동계급의 정치의식의 성장에 그리하여 해방에 기여할 것을 믿는다.


참관기 1: ‘중국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2015 27일 토요일 오전 11:50~오후 1:10

연사: 이정구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소속 연구원


연사의 발제

연사는 먼저, 1949년 혁명부터 현재에 이르는 중국 현대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1949년 혁명을 위대한 민족해방혁명으로 규정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게걸음친 것이지만 제국주의에 대항했다는 점은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전형적 클리프주의 이론에 따라 일탈한 영구혁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주의 공산당의 관료들이 새롭게지배계급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클리프의 군사적 경쟁론에 따라 중국에 계획 경제가 수립되었지만 외부 압력에 의한 계획은 진정한 계획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통찰력 있는 주장도 있었다. 덩샤오핑 이후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중국이 시장경제가 되었다는 인상적 평가가 흔해졌지만 연사는 여전히 중국 경제는 국가가 강력히 통제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민영화가 많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국유기업 자회사를 만들어서 민영화시키는 방식을 취해왔기 때문에 핵심부문은 여전히 국가소유라는 것이다.

중국 현대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한 뒤 중국 국가자본주의론을 옹호하기 위한 통계 수치를 제시했다. 시대별로 중국의 중공업과 경공업 비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경공업보다 중공업의 수치가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연사는 이는 대만보다도 중공업 비중이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모종의 사회주의라면 인민의 필요와 소비 진작을 더 중시했을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천안문 항쟁을 언급했다. 중국을 모종의 사회주의라고 본다면 인민항쟁을 모두 CIA의 첩자들이 일으키는 자본주의 반혁명 책동으로 인식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국가자본주의로 봐야 천안문항쟁을 오롯이 지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천안문항쟁 당시 베이징 노동자자치연합을 폴란드의 연대노조와 비슷한 성격의 독립노조라고 주장하며, 최근의 홍콩 시위를 천안문 항쟁과 비슷한 성격으로 보았다.


청중 토론

앞서 몇몇이 발언하고 우리 동지 중 한 명이 발언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중국의 사회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맑스주의적 관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곧 자본가 계급이 소유한 생산수단의 몰수를 뜻한다. 자본가 계급이 폐지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것은 단순히 형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적 소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1949년 혁명으로 중국에 노동계급 소유, 계획경제 체제가 확립되었다. 이는 진보적 사건이며 세계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심대한 타격이었다.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부분적 국유화, 시장을 성장시키기 위한 국가 개입 따위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전면적 국유화는 시장을 위한 국유화와 달리 사회의 운영원리 자체를 바꿔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는 소유 형태를 역사를 분석하는 핵심으로 본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장화는 자본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다. 현재 시장화의 근본적 성격은 공산당 관료들이 통제하는 국유 경제에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여 낙후한 생산력을 끌어올리려는 조치이다. 계획경제는 직접 생산자인 노동자들의 통제가 이루어질 때, 노동자 민주주의가 보장될 때 그 효율성도 발휘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관료지배층이 노동자 민주주의를 도입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부분적인 시장화를 시도한 것이다.

중국의 국가 소유 체제가 아직 살아 남아있다면 이것은 방어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중국의 관료지배층을 타도하는 정치혁명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제국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국가 소유 체제를 방어해야 한다.”

그러자 노동자연대의 한 동지가 나와 국가자본주의론을 옹호했다. 그는 사적소유 철폐는 사회주의가 아니라며,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논거로 소련이 해체된 뒤 많은 공산당 관료들이 자본가로 변신했다는 점을 들어 둘 사이에 계급적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했다.

몇몇이 더 발언 한 후 우리 동지 중 다른 한 명이 발언했다.

중국 노동계급이 다시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다가올 격변에서 중국 노동계급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라는 연사의 문제제기에 동의한다. 과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격변에서 노동계급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중국이다. 연사는 사회주의 아니면 자본주의라는 이분법을 통해 중국은 자본주의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노동자연대는 중국만이 아니라, 소련 등 사적 소유가 철폐된 모든 나라들을 자본주의라고 규정했다.

연사는 중국이 자본주의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수치와 사건들을 소개했다. 그러나 사실 중국은, 그런 수치나 사건들 이전에, 노동자연대에게는 무조건 자본주의이어야 한다. 그런 수치나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소련 동유럽 북한 쿠바 베트남 모두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소련에서 혁명이 일어나 사적소유가 철폐되었다. 스탈린관료집단이 당과 국가를 장악했지만 사적소유가 부활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노동자연대는 그 소련을 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 내전을 거쳐서 자본가를 제압하고, 사적소유를 철폐했는데, ‘자본주의 국가가 수립되었다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왜 자본주의 국가가 타도되고 국내의 자본가들 그리고 국외의 제국주의자들과 전쟁을 치르고, 왜 사적소유가 철폐되어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흠결 하나 없는 완벽한 나라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이다.’라는 흑백논리만 있다.

북한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이다. 해방 이후 자본가들은 모두 미국과 남한 정부 편을 들면서 북한 지역에서 사라졌다. 사적소유는 자연스럽게 철폐되었다. 이렇게 자본가들이 사라지고 사적소유가 철폐된 북한 땅에 수립된 국가는 자본주의국가이다. 노동자연대에 따르면 그렇다!

노동자연대 동지들은 이들 나라들 내부의 자본주의 복귀 운동 그리고 미국 일본을 포함한 제국주의와의 갈등에서 위의 나라들을 방어하지 않아왔다. 오히려 후자 편을 들었다. 사실 그러한 태도를 합리화하기 발명된 이론이 바로 국가자본주의론이다. 딱 한 나라 예외가 있었다. 베트남이다. 아시다시피, 그 당시에 베트남 편을 드는 것은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그때에만 노동자연대 전통은 기존 이론과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다른 태도를 취했다.

노동자연대 동지들에게 사적소유 철폐는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대신 노동자의 자기해방이야말로 제1원칙이다!’라고 외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사적소유 철폐 국가들을 방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진짜 제1원칙은 무엇일까? 맑스-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산주의의 명백한 특질은 부르주아적 소유의 폐지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주의 이론은 사적소유의 폐지라는 단 하나의 문구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발언 도중 객석의 누군가가 노동자연대 얘기 그만하고 자기 할 말만 해요하고 고함쳤다. 진행자는 제지하지 않았다.

그 뒤 노동자연대 회원으로 보이는 다른 동지가 나와 실질적 소유법적 소유를 구분해야 한다며, 소련에서 노동계급이 생산수단을 실질적으로 소유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소련은 노동자들의 소외가 사라지지 않은 사회이므로 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


연사와 청중발언으로 제기된 몇 가지 쟁점들

1. “중국이 모종의 사회주의라면 인민의 필요와 소비 진작을 더 중시했을 것이 아닌가?”

참으로 한가한 이야기다. 세계 혁명이 완전히 성공하기 전까지 모든 노동자국가는(그것이 건강한 노동자국가든,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든 간에) 자본주의 국가들과 군사적 경쟁을 벌여야 한다. 당연히 중공업 발전을 경시할 수 없다. 물론 지금 중국이나 북한 등지에 트로츠키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면 인민의 소비 수준 향상에 좀 더 신경 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계급투쟁의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제국주의에 의해 포위된 노동자국가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마땅히 군비에 막대한 지출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사회주의는 인민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려야 하는 체제이니 군비는 어떤 경우든 조금만 써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혁명을 애들 장난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노동자연대의 경제주의적 관점, 미래의 지배계급이 아니라 임금노예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노동자국가에서는 소비와 축적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 권력을 장악한 노동계급은 생산력을 발전시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 생산수단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반면 개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부를 증대시키고 싶어 한다. 축적 수준을 너무 높여 대중의 소비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지면 노동 규율을 무너트려 오히려 생산력의 발전을 저해한다. 반면 대중의 소비 수준을 높이기 위해 축적 수준을 너무 낮추면 생산수단에 대한 투자가 줄어 생산력 발전이 저해된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 사회의 지배계급인 노동계급의 정책은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한다. 노동자들의 소비 수준은 이 계급투쟁 상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특히나 과거 러시아처럼 인구의 다수가 농민이고 노동계급이 소수인 경우에 공업화를 통해 노동계급을 강화하는 것은 사활적 문제였다.

이 흥미로운 문제에 대한 소련은 왜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가?[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트로츠키주의 혁명조직이었던 스파르타쿠스동맹(SL)19774월에 출판한 소책자]의 분석을 들어보자.

클리프와 섁트먼의 정치노선을 러시아 혁명 당시에 대입한다면 이들은 혁명 초기부터 레닌과 트로츠키의 정책을 반대했을 것이다. 1921년 이들은 조합주의적인 노동자 반대파에 가담하여 레닌과 트로츠키에 대항했을 것이며 1920년대 후반부 스탈린의 정치적 반혁명 이후에는 부하린 분파의 톰스키 파벌에 가담했을 것이다. 클리프의 노선을 견지할 경우 좌익반대파의 경제정책을 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20년대 후반부에 부하린의 우익반대파는 트로츠키주의 좌익반대파를 ()공업화론자라고 규정했다. 국가의 경제적 축적을 희생하여 노동자 임금을 극대화시키는 정책을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결코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27년 스탈린/부하린 정권이 좌익반대파에 대항하는 참주선동적 정책을 펴서 노동일을 8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였을 때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는 이 조치가 소비에트 경제에 해를 끼친다고 반대했다.

레닌은소련의 경제적 군사적 역량을 혁명의 국제적 확산에 대치시킨 적이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러시아 노동자국가 초기에 볼셰비키당 내 가장 격렬한 분파투쟁들 그리고 러시아 노동운동 내 볼셰비키당과 다른 경향들 사이의 투쟁들은 중앙 집중화 되고 효율적인 경제기구를 수립하려는 레닌의 일관된 노력 때문에 촉발되었다. 상당한 반대를 무릅쓰고 레닌은 노동자에게 위임된 경영체제를 일인 경영체제로 대체시키고 높은 임금을 받는 부르주아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고 도급제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정책을 위해 투쟁했다.

이 당시 레닌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이것 이었다: 내전과 소비에트 노동자국가의 고립 때문에 소련 산업이 해체되고 이 결과 러시아 노동계급이 소부르주아로 변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1922년 코민테른 제 4차 세계대회 때 그가 행한 연설을 들어보자:

우리의 중공업은 아직도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있다종종 대중을 희생시키기는 하지만 우리는 절약해야한다.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공업을 구하고 회복시키지 않는 한 산업을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업이 없이는 독립국으로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망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아주 잘 인식하고 있다.

러시아의 구원은 농장의 풍작에만 달려있지 않다. 이것으로는 불충분하다. 경공업의 좋은 상태에 달려있지도 않다. 이것은 농민에게 소비재를 제공할 뿐이다. 이것으로도 불충분하다. 우리는 중공업도 필요하다.” (강조는 인용자)─「러시아 혁명의 5년과 세계혁명의 전망, [레닌 전집] 33, (1966년 판본)

─『소련은 왜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가?5. "국가 자본주의" 이론의 반()맑스주의

이 점에서 클리프주의자들의 주장은 좌익반대파의 공업화 계획이 아니라 부하린의 거북이 걸음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는 노선에 가깝다(토니 클리프파의 계보를 참조할 것).


2. “많은 소련 공산당 관료들이 자본가로 변신했으므로 둘 사이에 계급적 차이가 없다.”?

생산양식의 변화를 이런 식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러시아 혁명 때도 짜르 치하의 많은 관료, 행정가, 기술자, 장교 등이 볼셰비키 정권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렇다고 짜르 치하의 러시아와 소비에트 러시아가 계급적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한 새롭게 형성된 러시아의 자본가 계급이 소련공산당 서열에 따라 지위를 획득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일반 노동자들보다 유리한 지위를 이용해 개별적으로 생존기술을 발휘해 운 좋게 새로운 지배계급에 끼어들었을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러시아 자본주의 생지옥(<1917> 24)이 훌륭히 답하고 있다.

급조된 부르주아 계급 가운데 상당수는 구 소련의 고위관료 출신들이다. 반면 폴란드나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 이들은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극소수에 불과하다. 구스타프슨은 모스크바의 사회학자 올가 크리쉬타노프스카야의 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이 연구에 의하면 러시아의 자본가 엘리트 가운데 3분의 2 정도가 소련의 고위 관료 출신이다.

그러나 몇몇 석유 및 가스 족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족벌들은 소련공산당 서열에 따라 지위를 획득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구체제에서 블라디미르 구신스키는 극장 감독이었고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는 수학자였으며 알파 그룹의 미하일 프리드만은 물리학자였다. 스탈린주의 지배집단 내부의 연줄은 각본에 없는 무질서한 민영화 진흙탕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구 소련의 관리인, 경제전문가, 엔지니어 등이 자본주의 복귀 체제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상은 짜르 치하의 관료, 행정가, 기술자, 군대의 장교 등 수천 명이 볼세비키 정권 초기에 고용된 현상과 별 차이가 없다.

한편 고위관료층의 최상부 인자 특히 중앙경제부처 책임자, 이론-선전가, 공산당 조직의 최고위 관료 대부분은 직책이 없어지면서 실업자가 되었다. 옐친의 집권과 함께 구체제의 "경제, 사회, 국가" 운영자들이 계속 권력을 유지했다는 주장을 엘먼과 콘토로비치는 일언지하에 거부한다:

당과 국가기구 관료들이 국가소유를 자신의 개인 소유로 바꾸기 위하여 구체제를 타도했다는 이론이 요즘 유행한다. 그러나 이 주장을 지지할 증거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관료들은 고르바초프를 혐오했지만 체제 방어를 위한 집단행동을 주도할 능력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는 체제 붕괴를 재촉할 능력도 없었다. 이들이 체제 붕괴 후 자기 자리를 찾았다면 이것은 거대한 음모의 결과가 아니라 개개인의 생존기술 덕분이었다.”


3. “소련의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실질적으로 소유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소련의 생산수단은 누가 소유했을까? 클리프주의자들은 겉보기에 소련의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핍박을 받았으므로 이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았다고 인상적으로판단한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얼마나 관념론적으로 사고하는지를 드러낸다.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그저 형식에 불과한 것이거나 자본가 계급이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생산수단이 국유화되려면 자본가들이 소유하고 있던 생산수단을 모두 몰수해야 한다. 이를 통해 수립되는 계획경제 체제는 '여러 개의' 자본이 이윤을 놓고 벌이는 생사를 건 투쟁을 철폐한다. 이러한 자본가 계급에 대한 독재를 노동계급 이외의 어느 계급이 수행할 수 있을까?

클리프주의자들은 소련에는 노동자 민주주의가 없었으므로 소련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민주주의라는 상부구조를 통해 사회 성격을 파악하는 카우츠키주의의 방법론이지 맑스주의의 유물론이 아니다.

사노위 내 강령 토론 당시 우리가 제출한 소련 등 노동자국가 성격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제기에 대한 대답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엥겔스는 계급내전에서 승리한 프롤레타리아가 먼저 취해야 할 조치로 민주적 통제를 말한 적이 결코 없다. 기존의 소유계급으로부터 생산수단을 몰수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엥겔스를 인용[“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권력을 잡고 나서는 먼저 생산수단을 국유화한다.”]한 레닌은 무어라 말했을까.

현재 계급 지배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지주와 자본가의 소유는 철폐되었다. 승리한 노동계급은 이 소유를 철폐하고 철저히 파괴시켰다. 바로 이 점에서 노동계급의 지배는 표현되고 있으며 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유의 문제가 우선이다. 현실에서 소유의 문제가 결정되면 계급 지배는 확보된 것이다.지배 계급들이 서로 뒤바뀌었을 때 이들은 소유관계도 뒤바꾸었다.”레닌 전집 제 4, 30, 426-427

그러나 오늘날의 이른바 노동자 민주주의의 신봉자들은 무엇보다도 소유의 문제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간단히 무시하고 있다. 소련, 중국, 북한, 쿠바 등을 모종의 자본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이들 나라에는 노동자 민주주의/소비에트 민주주의가 없고, 노동자 자주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본가들의 생산수단을 몰수하는 것을 통하여 사적 소유가 폐기된 이 나라들을 자본주의 국가라고 말한다. 이것은 맑스와 레닌의 정식인가? 아니다. 바로 카우츠키의 정식이다. “노동계급 독재의 핵심 특징은 노동 대중에 의한 정부의 민주적 통제이다.”

물론 민주적 통제는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노동자 민주주의/소비에트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을 타도하고 노동자의 직접적인 지배체제를 수립하는 정치혁명을 지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이 스스로의 소유를 남의 간섭 없이 직접 관리, 통제하는 것만이 집산화된 계획경제를 온전하게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선진 자본주의 수준의 생산력과 교육수준을 갖춘 노동자계급이라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집산화된 계획경제 하에서 생산은 가치법칙이 아닌 정치적 고려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자신의 모든 정치적 고려가 특권유지에 맞추어진 관료집단에 의해 생산 전반이 통제된다면 그 사회에서의 생산은 인민대중들의 요구를 결코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며, 스탈린주의 체제 하에서 나타나는 비효율, 부패와 낭비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또한 당내 민주주의/소비에트 민주주의를 통해서만이 당과 노동자 국가의 건강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 ‘노동자 민주주의는 매우 탁월한 연장이다.’

이것은 노동자 민주주의를 그 자체로써 떠받들고 찬미하는 경향, ‘노동자 민주주의를 자연법 내지는 인권, 기본권의 범주로 승격시키는 경향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결코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구축되는 노동자 국가의 핵심은 사적 소유의 폐지이다.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 주객을 전도하는 것은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물신론자들의 것이지 맑스주의가 아니다.


4. “노동소외가 사라지지 않으면 자본주의 국가인가?

클리프주의자들은 이행기 체제의 모순을 이해하지 못한다. 노동계급은 이전의 모든 지배계급과 다른 특성을 가진 계급이다. 사적으로 소유하는 이전의 모든 지배계급과 달리 노동계급 독재에서 노동자들은 집단적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한다. 사적소유의 철폐로 착취가 사라지고 모든 억압이 일소될 가장 중요한 단초가 마련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억압과 소외가 일시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은 사회주의적으로 조직되지만 분배는 아직 부르주아적 규범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리고 국내의 계급투쟁은 거의 종식되지만 국제적 수준의 계급투쟁은 격화된다. 그리하여 폭력적 강제기구인 국가는 아직 살아남는다.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수립된 노동자국가의 억압 정도 그리고 구성원이 겪는 소외의 정도는 일국적 차원의 것이 아니다. 세계경제 속에서 그 사회의 생산력 수준 그리고 국제적 계급투쟁의 역관계라는 물적 토대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노동자국가의 이중적 성격에 대한 트로츠키의 설명을 들어보자.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되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원하는 만큼의 재화를 즉시 제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재화를 생산하도록 독려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독려하는 역할은 자연스럽게 국가의 몫이 된다. 그리고 이 상황은 다시 자본주의에서 확립된 임금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물론 다양한 상황에 따라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이 의미를 마르크스는 1875 년에 이렇게 표현했다: “부르주아 법은‥‥‥오랜 분만의 고통을 겪은 후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탄생하는 공산주의 체제의 초기단계에서 불가피하게 존재한다. 경제체제와 이것에 의해 조건 지워지는 사회의 문화적 발전을 법은 결코 초월할 수 없다.”

마르크스의 이 주목할 만한 견해를 설명하면서 레닌은 이렇게 덧붙였다: “소비재 분배와 관련해 존재하는 부르주아 법은 당연히 부르주아 국가를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규범의 준수를 강제할 수 있는 기구가 없이는 법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는 당분간 부르주아 법이 존재할 뿐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이 없는 부르주아 국가도 존재한다!” 현재 소련의 공식 이론가들에 의해서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이 매우 의미 있는 결론은 소련의 국가 성격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련이라는 국가를 이해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사회주의 건설의 임무를 맡고 있는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하여 불평등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면 즉, 소수의 물질적 특권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면 이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이 없는 부르주아국가일 수밖에 없다. 이 주장에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칭찬이나 비난이 전혀 없다. 다만 사물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부르는 것뿐이다.

부르주아 분배 규범은 물질적 생산력의 성장을 촉진하면서 사회주의 건설의 목적에 봉사해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는 시작부터 곧바로 이중적인 성격을 띤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형태를 옹호하는 한 사회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생필품의 분배가 자본주의 가치척도에 따라 이루어지고 이 모든 결과들을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한, 부르주아 국가이다.’트로츠키, 배반당한 혁명3장 사회주의 체제와 국가 중 3. 노동자국가의 이중적 성격

소련은 노동의 소외가 사라지지 않은 사회이니 노동자 국가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이행기 체제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2015318

볼셰비키

맑시즘 2015 참관기 2: ‘사회주의 전략 전술―공동전선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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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욱 2019.09.28 11:46
    볼셰비키그룹 이야말로 자본주의랑 노동자국가에 대한 무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게

    러시아혁명 직후 가장 엄혹했던 시기인 신경제정책 시기조차 공산당원ㅡ전문경영인, 공장노조대표 셋이서 합의해서 기업의 운영과 생산을 결정하는 트로이카체제를 유지했고 즉 노동자의 생산통제가 유지됬고

    또한 생산재보다 소비재가 중점적으로 생산됬는데

    그때 레닌과 볼셰비키 고참들이 바보라서 그랬겠는가?


    또한 노동자 국가안보랑 생산력 증대는 국제혁명의 확산으로 해결해야지

    국제혁명은 죄다 압살시키고, 노동자들은 생산의 자주관리는 고사하고 노동3권, 집회ㆍ표현의 자유 등의 초보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 못누리게 하는 스탈린주의 체제들이 무슨 노동자국가인가?



    어거지 작작 부리고 말이나 되는 소리를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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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레리꼴레리 2022.04.25 04:47

    퇴보한 노동자국가 소련의 관료들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정치권력 장악 이후 전시의 일시적 조치였던 것(당내 분파금지, 소비에트 내 야당 불법화 등)들을 사회주의 기본원칙으로 영구화하고 재욱 님이 언급하신 공장/기업의 삼두경영 체제라던가 관료의 선출 및 소환권, 특권 폐지와 숙련노동자 평균임금만 지급, 상비군과 경찰의 폐지 등을 죄다 철회하면서 노동자민주주의를 완전히 압살했고 말씀하신대로 세계혁명은 커녕 국유경제의 관리자로서 누리는 특권 방어에 올인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생산수단의 소유권은 노동계급에게 있었습니다. 사적소유에 기초한 자본-임노동 관계도, 잉여가치를 위한 생산도, 자본축적도, 과잉생산과 공황도, 실업도 없었습니다. 인민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하는 것이 생산의 목적이었고 중앙집중적 계획경제를 했습니다. 관료들은 생산수단을 사적소유할 수 없었고 대신 ‘편법을 써서’ 국유재산의 일부를 자신의 개인적 축재로 활용했던거지 노동자들은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임노동자가 아닌 생산수단의 집단적 소유자였습니다. 그런 소련이 과연 노동자국가가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