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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리비아와 좌익

나토 제국주의 군대, 반란군 그리고 ‘혁명적’ 추종자들


[   ]……역주



무아마르 카다피 처형에 관한 청문회에서, 지난 2009년, 카메라 앞에서 카다피와 나란히 포즈를 취했던, 미 대통령 바락 오바마는 “리비아에서, 우방국 그리고 동맹국과 함께 한 작전을 통해, 21세기에 어떠한 협동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우리는 보여주었다.”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지상군 단 한 명도 없이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에 특히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미래의 목표물에 대해 암시했다.

이 지역의 다른 독재자들을 지적하며,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철권통치는 필연적으로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오늘 사건은 증명한다.”

그 발언이 시위대를 잔혹하게 진압하고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를 겨냥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백악관 대변인 제이 카니는, 아사드는 “이미 정통성을 상실했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뉴욕 포스트, 2011년 10월 21일

리비아의 성과를, 미국 부통령 조 바이든은, 덜 성공적인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작전과 비교했다.

“이번에 미국은 20억 달러를 지출했고, 한 명도 잃지 않았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했던 방식과 달리 앞으로 우리가 세계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같은 글

이스라엘 언론가 올리 아줄레이는 “강력한 공군”과 “지역 반란군”의 결합을 지적하며, 오바마의 “새 전쟁 정책”에 찬사를 보냈다.

“카다피 장군의 죽음은 미 대통령 바락 오바마가 채택한, 적국에 지상군은 파견하지 않고, 무인 조종기를 포함한 강력한 공군력을 이용하여 적의 근거지를 분쇄하는, 새로운 전쟁 정책의 또 다른 승리이다. 리비아의 경우, 이 작전은 토착 반란군과의 협동작전을 통해 수행되었다.—Ynetnews.com, 21 October 2011

‘카다피에 충성하는 군대를 “막강한 공군력”이 분쇄한 후, 토착 앞잡이들이 열린 문으로 다투어 들어가 진공 상태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 이것이 리비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대체적 요약이다. 그러나 일이 항상 계획한 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토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존립 가능한 새 권력을 구축하는 것보다, 기존 권력을 끌어내리는 것이 보통 쉽다.

리비아와 아프가니스탄 모두에서, “정권교체”는 미국과 끈끈하게 맺어져있는 새로운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는 것이었다. 2001년 독일 본에서 열린 회의에서 추대된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는, 20년 전 CIA와 함께 반(反)소련 무자헤딘을 위한 기금모금자로 일했던 자이다. 새로운 리비아 수상으로 선임된 압두라힘 엘 케입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앨라배마 대학에서 가르친 미국 시민권 소지자이다. 이후 그는 아랍에미리트연방으로 건너가 석유대학의 전기기술부 책임자 자리를 맡았고, 그의 연구를 미국 에너지부가 지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볼 때, 그는 1970년대 초반 카다피 정권이 국유화했던 리비아의 석유가스를 서방에 넘겨주는 작업을 관장하기에 아주 적합한 인물로 보인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신식민지를 군사적으로 방어하자!

사회민주주의자와 달리 맑스주의자는, ‘선진 자본주의’ 열강들의 탐욕에 대한 피정복 국가의 저항권을 무조건적으로 방어한다. 1956년 영국/프랑스/이스라엘 연합군이 국유화된 수에즈 운하를 되찾기 위해 이집트를 공격했을 때, 혁명가들은 이집트를 지지했다. 미국/영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세르비아를 1999년 공격했을 때 그리고 2001년 아프가니스탄 사태 때 그리고 2년 뒤 이라크 사태 때, 그 정권들이 반동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자들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물라 오마르 그리고 사담 후세인 편에 섰다.

세르비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경우에서처럼, 리비아 공격에 앞서 한 다발의 거짓말이 퍼졌다. 리비아 경우는 2월 17일 ‘분노의 날’ 시위 이후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한다는 주장을 집중 부각시켰다. 이러한 보도의 주된 공급자는 카타르 지배계급이 운영하는 알 자지라였고 이들은 또한 반란자들에게 수백 명의 병사와 무기를 공급했다. 리비아 공군이 시민을 학살했다는 꽤나 그럴듯한 이야기는 심각하게 과장된 말임이 드러났다.

2011년 3월, 폭격이 있기 두 주 전에, 미군 합동참모부장 마이크 물렌 장군은 의회 분과위원회에서 “국무성은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가 공군을 시민학살에 사용했다는 확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CBS 뉴스, 2011년 3월 2일).”라고 말했다. 폭격이 시작된 이후 3월 22일, 유세스에이 투데이지(誌)는 텍사스 대학의 알란 쿠퍼맨의 논문을 실었다. 그는 논문에서 “수많은 휴대폰에도 불구하고, 반란자들이 주장하는 대량학살과 관련된 사진이 하나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2주 후 미국 대외관계위원회 의장 리처드 하스는 “대규모의 학살이 있었다거나 임박했다는 증거는 없다(Huffington Post, 2011년 4월 6일).”라고 썼다.

2003년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던 것처럼, 리비아에는 “대량학살”이 없었다는 것이 이제는 명확해졌다. 군사침략을 거짓말로 정당화하는 것은 유서 깊은 전술이다. 폴란드 침공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면서 최고위 지휘자들에게 아돌프 히틀러는 1939년 8월 22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쟁 개시의 명분을 제시해야겠지. 그것이 그럴듯하건 아니건 간에. 거짓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승리자에겐 묻지 않는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그 따위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승리만 문제될 뿐이다.”—알란 불록, “히틀러와 스탈린”

이것이 리비아에 벌어진 일이다. 그것이 군사 개입의 그토록 중요한 명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언론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 정권이 저지른 시민 학살 이야기를 추적하려 하지 않는다. ‘혁명적임’을 뽐내는 세계의 많은 좌익들이 열정적으로 그 제국주의자들의 선전을 집어삼키고 재탕한 사실은—그리고 그들이 아직까지 제국주의 선전에 낚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그들이 자본주의 사회질서에 정치적으로 순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는, 리비아 인민의 복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떠벌이면서, 리비아에 대한 제재와 해외자산 동결 그리고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정당화하는 데에 이 이야기를 이용했다. 그리고 곧 벵가지에 근거를 둔 제국주의와 연계된 반란자들과 카다피 사이의 내전에 나토 공군을 투입했다.

4월부터 10월까지 영국, 프랑스 그리고 여타의 나토 공군에 의한 9,600차례에 달하는 소위 ‘인도적’ 폭격으로 인한 사상자 총 수는, 일치된 통계는 없지만, 무고한 시민을 포함해서 최소한 수천 명의 리비아인들이 죽고 또 다른 수천 명 정도가 중상을 입었다는 데에 대체로 동의한다. 나토의 폭격은 리비아 사회간접시설을 심각하게 파괴했고 수만 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이 파괴가 시민 “보호”조치였다고 선전하지만, 나토 공습으로 인한 희생자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수백 명의 외국 특수부대원의 지원을 받는 반란군의 도움 속에서 제국주의자들의 지속적 폭격은 카다피 군대를 무력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많은 소식통에 따르면, 정권에 맞서 가장 효율적으로 싸운 토착 세력은 일부가 알 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세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반란군”은 이번 사건의 주역이 아니었다. 물론 카다피 군으로부터 사격을 이끌어내고 그리하여 나토의 공습 명분을 만드는 데에는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반(反)카다피 잡동사니 전사들은, 제국주의의 개입을 처음부터 즐겼던 임시국가위원회(Transitional National Council: TNC)처럼, 리비아 “정권교체”의 명분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사회주의와 전쟁(1905)’에서 위대한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은, 그것이 “인도적”이건 아니면 다른 무엇이건 간에, 신식민지에 대한 제국주의의 모든 군사적 공격에 대해서, “모든 사회주의자는 억압하는, 노예소유의, 침략적인 열강에 맞서, 피억압, 종속, 약소국가의 승리를 지지한다.”라고 천명했다. 다음과 같은 사실엔 어떤 애매모호함도 없다: ‘지배정권의 (실제 아니면 거짓의) 범죄행위에도 불구하고, 혁명가들은 제국주의 공격에 맞서 군사적으로 피억압 국가들 편에 선다.’ 무솔리니가 1935년에 에티오피아를 침공했을 때, 레온 트로츠키는 즉각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물론, 우리는 에티오피아의 승리, 이탈리아의 패배를 지지한다(“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1935년 7월 17일).” 하일레 셀라시에 정권 하에 광범하게 존재했던 노예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약 무솔리니가 승리한다면 파시즘의 증강, 제국주의의 강화 그리고 아프리카와 그 밖 지역 식민지 인민들의 사기저하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네구스[왕, 하일레 셀라시에를 의미]의 승리는 단지 이탈리아 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진영 전체에 강력한 한 방이 될 것이고, 피억압 저항세력들에게 의미심장한 영감을 주게 될 것이다. 오직 장님만이 이러한 점을 보지 못할 것이다.”—“독재자와 오슬로 고원에 대하여”, 1936년 4월 22일

미국 제국주의를 위한 오바마의 “새로운 전쟁 정책”은 카다피에 대한 나토의 승리로 검증되었고, 이는 앞으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대하는 기본태도가 될 것이다. 세계의 자칭 “트로츠키주의” 조직들 절대 다수가 제국주의자들의 선전을 열심히 받아먹는 모습은, 자신들이 계승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적 유산으로부터 그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극적으로 증명했다. 나토 제국주의 군대와 그 하수인들에 대한 카다피 군의 군사적 승리 편에 분명하게 서는 대신, 이 수정주의자들은 전자[제국주의 하수인들]가 “혁명적” 운동을 대표한다고 보고 지지하거나, 또는 기껏해야 중립을 취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레닌과 트로츠키 당시 코민테른의 반(反)제국주의 노선을 배신했다.


제국주의 하수인에 대한 지지의 합리화

가장 노골적으로 친제국주의 입장을 취한 조직은 아마도 영국 노동해방동맹(British Alliance for Workers’ Liberty: AWL)일 것이다. 그들은 부드러운 어조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지금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북아프리카] 봉기는 리비아에서 일어난 것이다. 물론 궁극적 성공이 나토의 군사적 개입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은 개운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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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개입을 저지하기 위한 서방 좌익의 성공적 시위는 아마도 혁명 운동 자체의 소망을 표현하기에는 적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벵가지의 대량학살을 낳았을 것이고, 그것은 그 자체로 비극일 뿐 아니라 ‘아랍의 봄’ 전체에 심대한 패배를 안기는 것이다.”—“노동해방(AWL)은 나토의 개입을 반대하지 않았다.”—2011년 10월 5일

벵가지에 있는 제국주의 오랜 하수인들, 이슬람 반동 그리고 카다피 정권 이탈자들의 뒤범벅을, 우리가 존중해야할 “혁명적” 운동의 지도자라고 규정하는 AWL의 관점을 많은 자칭 ‘트로츠키주의’ 조직들이 공유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보통, 리비아 전쟁에서 나토의 중심적 역할에 대해 조금 덜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그 입장의 궁극적 귀결에 대해 조금 덜 분명하게 말하려고 한다. 대신 그들은, 한편으로 (친제국주의 독재자를 끌어내린 튀니지와 이집트 저항 청년과 혼동되었던) 나토 하수인들을 지지하면서, ‘반제국주의’적 제스처를 유지하기 위해 어색한 설명을 하거나, 논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펴거나 하면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대단한 기회주의 조직인 국제맑스주의경향(International Marxist Tendency: IMT) 지도자 알란 우즈도, 나토의 벵가지 동맹자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던 자들 가운데 있었다.

“국가는 무장기구라고 엥겔스는 설명했다. 반란군이 장악한 벵가지와 다른 도시들에서, 구 국가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 도시들에서 국가는, 레닌이 새 국가기구의 맹아라고 말한, 혁명 투사와 무장한 인민에 의해 대체되었다.”—“리비아 봉기: 흔들어라, 압제를!”, 2011년 2월 23일

조금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평가를 노동자인터내셔널조직위원회(Committee for a Workers’ International : CWI—1992년 IMT로부터 분립한 조직)가 제출했다. 그들 또한, 한편으로 카다피 정권 잔당과 친자본주의 반대파 ‘지도자’들, 반동적인 부족 지도자들 그리고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 등을 경계하면서, 벵가지 봉기를 “혁명”이라고 규정했다(“카다피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결전을 위한 투쟁”, 2011년 2월 28일). 몇 주 후 CWI는 유엔의 ‘비행금지구역’을 제국주의 군사개입으로 비판했다.

“벵가지와 토브룩 거리에서는 환영받고 있지만,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결정한 ‘비행금지구역’은 리비아 혁명을 방어하려는 것이 전혀 아니다. 이번 결정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리비아 혁명가들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실수이다. 거기엔 제국주의 열강들의 속 들여다보이는 경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서방 군사 개입 반대—리비아 혁명의 승리—노동자와 청년의 독립적 운동의 건설”, 2011년 3월 19일

“벵가지에서 결성된 ‘국가위원회’가 구정권 잔당들과 그보다 더 친제국주의적 분자들 사이의 결합이라는 것을 지적하면서(같은 글)”, CWI는 임시국가위원회(TNC)가 진두지휘하는 소위 ‘리비아 혁명’에 대한 예찬을 계속했다.

사회주의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 SWP)은 경쟁조직인 CWI와 기본적으로 같은—서방에 기금원조와 나토의 공중지원을 호소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위협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혁명”을 찬양하는—입장을 취했다.

“혁명 과정에서 나온, 리비아의 임시국가위원회(TNC)는 봉기의 결정적인 첫 며칠 동안 간명한 요구를 제출했다. TNC 인정, 무기와 시급한 물품 구입을 위해 압류된 자금에 대한 접근 보장, 그리고 카다피 정권에 용병을 실어 나르는 항공편 운항의 즉각 중지 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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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은 실질적으로 혁명을 위협하고 있다.”—<사회주의노동자>, 2011년 3월 26일

IMT나 CWI처럼, SWP는 폭동을 촉발한 2011년 2월 17일의 시위를 애초부터 자발적인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영감을 얻은, 젊은 활동가들과 저명한 판사나 변호사가 포함된 유명 인사들의 느슨한 네트워크는 2월 17일 평화적인 시위를 소집했다. 이 시위는 온건한 요구를 제기했지만, 정권에 대한 반대가 공공연히 표출된 첫 번째 장이었다.”—Socialist Review, 2011년 4월

사실상, 그것은 “젊은 활동가들의 느슨한 네트워크”가 아니었다. 나중에 SWP도 인정했지만, 2월 17일 시위는 제국주의와 연계된 ‘반대를 위한 리비아 전국회의(National Conference for the Libyan Opposition: NCLO, 이후에 TNC로 편입됨)’가 주도한 시위였다. “젊은 활동가들의 느슨한 네트워크”에서 저항이 비롯되었다는 이전 주장을 분명하게 철회하지 않으면서, 2011년 5월 사회주의평론(Socialist Review)은 “반대를 위한 리비아 전국회의(NCLO)의 망명자들이 반체제인사들과 더불어 2월 17일 ‘분노의 날’을 기획했다.”라고 말한다. 2011년 4월 1일 성명서에서 우리가 지적한 것처럼, CIA와의 오랜 연계 속에서 활동해 왔던 인자들이 창립한 NCLO를 [제국주의자들이] “위협”할 필요는 없었다. (나토의 침략에 맞서 리비아를 방어하자! 를 볼 것)

벵가지 반란군에 대한 소위 ‘트로츠키주의’ 선전가들은 임시국가위원회(TNC)가 ‘비행금지’ 구역을 지지했다는 보도를 처음에는 무시했다. 그 이후에는 외국군대 개입에 대한 TNC의 공식적 반대 입장을 극구 강조했다. 예를 들어, IMT는 2011년 3월 1일 다음과 같이 썼다.

“알 자지라에 따르면, 반대파로 넘어간 압둘 파타 유니스 전 내무장관은 인민들이 외국군을 환영할 것이라는 생각은 ‘당치 않은 소리’라고 일축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벵가지에 새롭게 구성된 TNC 대변인 하피즈 고가에 의해 확인되었다. 고가는 ‘우리는 외국군의 개입에 대해 반대한다. 리비아 전역은 인민의 손에 의해 해방될 것이다.…그리고 카다피 보안군은 리비아 인민에 의해 분쇄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리비아에 대한 외국군 개입을 반대한다.”

TNC가 처음에 외국군 개입에 반대하는 듯한 모습을 취했던 것은 대중적 지지를 끌어내고, 리비아 석유자원을 차지하는 것이 주목적인 외국의 이해와 저항 지도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카다피 정권의 주장(기본적으로 맞는)을 회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처음 몇 주 동안,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포함하는 몇몇 유명 인사들이 이탈했고, 벵가지 반란자들과 지지자들은 카다피 정권이 스스로 붕괴될 것이라고 희망했었다. 하지만 카다피 충성파들이 전열을 추슬러 벵가지 탈환에 나서자, TNC는 나토의 공중지원을 간절하게 원했다. 이러한 태도 변화가 반란군 진영에 어떤 종류의 불화도 낳지 않았다는 사실은 ‘혁명이 [외국의 간섭에 의해] 탈취되었다’는 류의 모든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사실상, ‘리비아 혁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벵가지 봉기는 근본적으로 전통적 지배엘리트 내의 오랜 불화의 표현이다. 군주주의자와 (리비아이슬람전투조직: Libyan Islamic Fighting Group의 간부들이 나중에 합류한) 전 카다피 충성파들이 불안정한 결합 속에서 권력을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그 불안정한 결합이 반란으로 파열되었고, 쌓여있던 분노와 저항의 물꼬를 터뜨렸다. 그리고 대부분의 TNC 지지자들은 그 지역 독재자들을 끌어내린 ‘아랍의 봄’의 새로운 국면에 자신들이 진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비아 봉기는 처음부터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바로 그것이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다른 나토 국가들이 열광적 지지를 표한 이유이다.

2011년 3월 중순, 폭격이 시작될 무렵, 심지어 IMT조차도 그때까지 그들이 추켜세웠던 “반란군” 지도자들의 성격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했다.

“혁명을 맞아 국가가 붕괴되었을 때, 진공상태의 벵가지 권력을 이 사람들이 차지했다. 이들은 혁명을 강화시키기보다는 약화시켰다. 거기엔 노동인민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핵심과제로 삼을 뿐, 평범한 노동인민의 사회 경제적 요구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 인권운동가들과 민주주의 조직들이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과 더불어 거기엔 혁명적 청년과 노동계급 그리고 빈민이 있었다.”—“왜 리비아에서 혁명은 지연되고 있는가?”, 2011년 3월 17일

몇 주 후, IMT는 그들을 아프가니스탄의 카르자이 정권 또는 이라크 말리키 정권과 비교하면서, ‘반란군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를 더 낮추었다.

“벵가지에 설립된 임시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대중들이 국가권력을 붕괴시키자, 이 임시위원회는 불쑥 그 공간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 국가를 무엇으로 대체할지는 몰랐다. 사실상의 권력 공백이 만들어졌다. 이 상황에서 우연적 인자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고, 지금 이 자들이 명백한 반혁명적 역할을 하고 있다.”—“리비아 임시정부—제국주의 하수인”, 2011년 4월 1일

TNC 지도부가 반혁명적인 것은 틀림없지만, “우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TNC는 2월 17일의 ‘분노의 날’ 시위 주도자들을 포함해, 카다피 반대파 대표들로 구성된 것이다.

2011년 10월, 제국주의자들이 카다피 살해를 축하하고 있을 때, 알란 우즈는 여전히 “리비아 혁명”을 떠벌이고 있었다.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상황이다. 그 결과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한편으로, 노동계급을 포함한 대중운동은 자신들의 요구를 제출하고 있다. 다른 한편, 부르주아 인자들은 제국주의자들과 더불어 상황을 장악하려고 획책하고 있다. 혁명의 주요 동력은 정직하고 용감한 청년층이지만 그들 또한 혼란스럽고 방향을 상실하고 있어서 근본주의자들과 다른 선동가들의 손에 놀아날 가능성이 있다.”—“카다피 죽음 이후: 리비아의 혁명과 반혁명”, 2011년 10월 21일

상황은 매우 명확하다: ‘나토가 석유가스 자원을 다시 약탈하기 위해 리비아의 ‘정권교체’를 지휘했다.’ 그러나 “혼란스럽고 방향을 상실”한 청년층이 있었다고 해도, 알란 우즈의 아무 생각 없는 객관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IMT 회원들보다 그 청년층이 더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IMT와 달리, TNC가 이끄는 ‘리비아 혁명’에 대한 많은 찬양자들은, 트리폴리가 함락되었을 때 그 주역이 리비아 대중이 아니라, 제국주의자들이라는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영국 SWP는 주 수혜자가 서방 석유회사들일 것이라는 것을 한편으로 인정하면서도, 카다피 정권의 붕괴를 “축하”하는 등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모습을 보였다.

“카다피 정권의 종말은 축하할 만한 일이다. 그는 이 해에 몰락한 세 번째 아랍 독재자이다.

“그러나 리비아 투쟁의 성격은 이제 이 투쟁에 영감을 주었던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방 세력들이 이 투쟁을 이용하겠다고 생각한 이후 그렇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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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열강들은 리비아 봉기를 탈취했고 그들의 요구에 맞게 구부렸다. 그들은 벵가지의 반란기구를 압박하여 거래 계약과 국제 석유 거래를 재확인했다.”—사회주의노동자(Socialist Worker), 2011년 8월 20일

다른 조직들도 혁명의 “탈취”를 언급했다. 2011년 3월, 프랑스 제국주의에게 TNC 인정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스탈린주의 공산당 등과 더불어 발표했던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NPA)은, 8월 21일 다른 성명서를 제출했다. 그 성명서는 리비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튀니지, 이집트에서 진행된 혁명적 과정”과 유사한 것이지만, “공중 폭격을 통해 그 혁명을 탈취하려는 유엔과 나토 회원국들의 영향 아래” 있다고 주장한다.

NPA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조직인 사회주의행동(Socialisit Action: SA) 역시 리비아 “혁명”에 환호한다. 그러나 “리비아에 제국주의자들의 개입을 끌어들인 하수인들에 대한 투쟁을 정치적으로 지지한다(Socialist Action, 2011년 3월).”라는 언사로 TNC를 지지하는 자신들의 입장에 좌익적 색채를 칠하려 한다. 곧 이은 TNC 하수인들의 제국주의 개입에 대한 적극적 요구는, 아마도 SA로 하여금 궁극적 입장을 재고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토가 개입을 준비하고 있을 때, SA는 어네스트 만델의 제4인터내셔널통합서기국(United Secretariat of the Fourth International: USec) 조직들과 더불어 “우고 차베스[베네수엘라], 다니엘 오르테가[니카라과], 카스트로[쿠바]가 카다피의 억압과 학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이 사건에 대한 제국주의의 이해만을 편파적으로 비난하는 것(같은 글)”에 대해 비판했다. 물론 수 년 동안 SA와 통합서기국이 알랑대었던 이 민족주의 좌파 제3세계 보나파르트주의자들이 카다피의 반민주적 범죄행위에 대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딱히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들은 제국주의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있고, TNC를 탁월한 “혁명” 조직이라고 묘사하지도 않는다.

아직은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는 SA의 노선변화는 트리폴리가 지난 8월 나토와 TNC 동맹에 의해 함락되기 전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2011년 9월 2일, “제국주의의 승리는 리비아 인민들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SA의 지도자인 제프 맥클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대중 시위의 처음 며칠 동안, 건물 지붕에 반정부 시위대가 ‘외국 개입반대: 리비아 인민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글을 새긴 현수막을 내걸었을 때, 반(反)카다피 지도부의 최소한 일부가 독립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오해의 여지가 없는 증거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조차도, 반대파의 주요 인사들이 유엔/나토 군대의 지원과 ‘비행금지구역’을 언급하거나 심지어 요구한 것을 보면, 외국 개입의 반대가 단지 지상군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카다피 정권이 붕괴되는 것처럼 보일 때, 외국의 간섭 없이 리비아 사회 재건을 바란다고 주장하는 것이 TNC 지도부에게 그럴듯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카다피 지지자들이 유효한 반격을 조직하는 데 성공했을 때, TNC의 목소리는 달라졌다. 맥클러는 그의 성명서에서 상황의 급속한 변화를 인정했다.

“대중 시위 초기에 구성된 자치조직은 카다피군이 벵가지를 공격하였기 때문에 식량배급과 필수적 업무 수행을 위해 조직된 자생적 조직이었다. 우리는 이 조직이 대중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된 독립적 정치세력인가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지도적 부르주아와 친제국주의 세력을 하나로 뭉치기 위해 조직되었다는 증거도 없다.

“반(反)카다피 세력의 공백으로 인해, TNC는 국가의 ‘합법’ 정부로 재빨리 인식되었다.…유럽과 미국이 겉으로 내세웠던, 시민을 카다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수사는, ‘정권교체’라는 실제적 목표의 이행으로 급속히 바뀌었다.”

나토의 개입 이후의 갈등을 “제국주의 주도의 리비아 점령”으로 규정하면서, SA의 성명서는 이어진다.

“모든 피억압 국가의 자결권은, 심지어 혐오스런 독재자의 나라라고 하더라도,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반드시 지지되어야 한다. 피억압 국가와의 모든 종류의 갈등에서, 제국주의의 패배는 앞으로의 침략 능력을 약화시키며 다른 피억압인민을 고무시킨다. 모든 독재자들을 비난할 권리와 의무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가지지만, 그 권리와 의무는 제국주의 개입과 침략 격퇴에 종속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제국주의 침략자 그리고 식민지 본국의 패배를 지지한다.”

이 성명서는, 명확하게 언급하지는 않지만, SA와 동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치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자가 제국주의자와 그들의 TNC 꼭두각시에 맞선 카다피군에 군사적지지 입장을 취했어야 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맥클러 또한 ‘분노의 날’ 조직에서 CIA와 연계된 NCLO가 한 역할을 인식하지 못한다. 대신에 벵가지 사태가 처음부터 자생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TNC의 집권으로 “가혹한 패배가 리비아 인민에게 가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한다.

“오늘 제국주의자들의 군화가 리비아 땅을 디뎠고 발자국이 깊게 새겨졌다. 리비아 대중들은 해방되지 않았다. 수 천 명이 학살당했다. 제국주의자들은 같은 짓을 시리아와 나아가 이란에서 자행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때 늦고 불충분하지만, SA의 노선변화는 최소한, 카다피 정권의 몰락은 제국주의의 승리이고 노동인민과 피억압인민의 패배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것은 아직 그 출발점과 궁극적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좌익들에게 명확한 변화를 대표한다.

오랜 기간 제4인터내셔널통합서기국(Usec) 지지자이고 SA의 노선변화에 비판적인 켄 히버트는—만약 2011년 3월이 “리비아 인민에 대한 학살과 파괴를 낳은, 지난 6개월 동안 이어진 공격”의 시작이었다면—왜 SA는 “2011년 4월 28일까지도 봉기의 승리를 호소했는가? 왜 9월 호에 가서야 SA는 그 관점을 수정했는가?”하고 묻는다. SA 새 입장의 논리는, 나토에 대항한 카다피의 승리를 주장한 그룹들이 “SA의 지도부보다 더 멀리 내다본 것”을 의미한다고 히버트는 지적한다. 만약 “리비아 군대가 제국주의 침략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라면, 우리는 그 군대와 지도부를 지지했어야 했던 것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의문들에 SA는 아직 대답하지 않고 있다.

미래의 “심각한 패배”를 피하기 위해, 히버트의 질문들에 SA는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부정하고 있는 애초의 실수와 그 과정의 뿌리를 허심탄회하게 점검해야 한다.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나토에 맞서 카다피 군대와 군사적으로 연대했어야 했다는 것을 SA는 분명히 언명해야 한다.


세계사회주의자웹사이트(WSWS): 나토의 패배를 주장하나, 리비아 방어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SA가 회고적으로 채택한 정책은 WSWS(World Socialist Web Site—사회주의평등당(SEP)의 다른 이름)의 데이비드 노쓰가 도달한 입장과 거의 같다. 2011년 2월 18일, 초기에 WSWS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리비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쓸고 있는 봉기의 일부이다. 리비아의 저항자들은 이집트와 튀니지 저항자들과 같은 궤에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대중운동이 리비아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고, 벤 알리(튀니지)와 호스니 무바라크(이집트)의 몰락으로 촉발된 저항에 참여하고 있다고 카다피에 맞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벵가지 봉기를 촉발한 2011년 2월 17일 ‘분노의 날’이 CIA와 오랜 기간 연계된 리비아 반체제인사들이 창립한 NCLO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 또한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벵가지 봉기를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고, 바람직한 봉기가 나쁜 놈들에 “탈취”되었다고 주장하는 조직들과 달리, WSWS는 그 지도부의 친제국주의적 성향이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직시했다. 반란자들을 “정당한 대중 저항”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성격이 뭔가 이상하게 바뀌고 있다고 SEP 지도부는 재빠르게 판단했다.

“폭압적인 카다피 정권에 대한 대중적 저항으로 시작했었지만, 벵가지 임시정부의 도움 아래, 제국주의 침략의 구실로 점점 바뀌고 있다. 그 작전은 리비아에 실질적인 꼭두각시 정권을 수립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막대한 석유가스 매장지에 대한 통제권을 제국주의 세력이 장악하게 되고, 리비아는 모로코에서 이라크에 이르는 그 지역 전체의 노동계급 저항에 맞선 반동의 요새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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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의 전 법무장관이었고 지금은 벵가지에 있는 반(反)카다피 조직인 리비아국가위원회(NLC)를 이끌고 있는 무스타파 압델 잘릴은 공중폭격과 비행금지구역을 요청했다. 위원회 인사들의 말을 인용하며, 뉴욕 타임스는 그 결정은 ‘강한 반대의사’가 개진된 위원회 회의에서 결정되었다고 보도했다. 신식민지 통치로 되돌아갈 것에 대한 두려움—카다피가 리비아 자결권의 방어자로 행세하는 데에 이용해 온 그 두려움—때문에 반(反)카다피 대중 운동 내에 그와 같은 요청에 대한 깊은 반대가 있어 왔다.—2011년 3월 5일

나토의 폭격이 시작되자, 리비아 자결권 문제가 심각해졌고, 갈등의 성격은 지배권력 내부의 투쟁에서 신식민지 정권과 제국주의자들의 동맹과 그 하수인 사이의 투쟁으로 변했다. 그에 따라 맑스주의자들의 입장은 양쪽의 패배를 주장하는 것에서 제국주의와 그 TNC 협조자들에 맞서 카다피에 대해 군사적 지지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WSWS는 나토 침략의 성격을 다음처럼 올바르게 평가했다.

“카다피를 교체한 정권이 리비아 인민이 아니라 워싱턴과 석유자본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그 지역 노동자들의 혁명 운동을 진압할 기지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2011년 3월 18일

다음날 WSWS는 다음과 같은 호소를 실었다.

“구역질나는 인도적 가면 뒤에 감춰진 전쟁선전에 반대할 것을, 노동자와 청년들에 WSWS는 호소한다. 억압과 착취, 전쟁에 대한 투쟁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 속에서 하나가 된 국제적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운동의 건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2011년 3월 19일

하지만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려는 카다피 군대에 대한 군사적지지 호소는 빠져 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SEP는 모든 민족의 자결권을 인정하는 레닌주의 정책은 그 실효가 사라졌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리비아 방어 입장 채택을 꺼리는 것은 바로 그러한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입장은 “맑스주의, 기회주의 그리고 발칸 위기(1994년)”라는 문건에 서술되어 있다.

“정치에서, 특정 시기 일정한 사회계급적 함의를 가진 용어는 종종 다른 시기에 다른 뜻을 표현하게 된다. ‘자결권’이라는 구호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세계 경제 정치 관계의 광대한 변화는 민족 운동의 성격에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보스니아나 카자흐스탄 또는 카시미르의 민족 부르주아지가 ‘국내 시장 장악’을 원하고 그것으로 ‘상품생산의 전면화’를 위한 조건을 창출하고 그리하여 계급투쟁을 충분히 발전시킬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와 반대로, 이 민족중심적 운동들은 현존 국가들의 발칸화[원래 지역과 국가가 서로 적대적이고 비협조적인 지역들과 국가들로 갈라지는 것]를 지향했다. 국내시장을 창출하기보다, 그들은 제국주의 그리고 국제 자본과 더 직접적인 경제적 연계를 원했다. ‘민족자결권’은 소규모 지역의 토착 자본가들의 이해를 위해 제기되었다.”

SEP가 제기하는 정치적 결론은 사회주의 혁명 말고는 “민족적 분리 문제에 대한 해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SEP의 빈곤한 근본주의는 리비아 사태를 다루는 방식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제국주의 침략을 비난하고, TNC를 “정권으로부터 최근 이탈한 자, CIA 첩자 그리고 여타 반동 세력들에 의해 지배되는(2011년 3월 24일)” 것으로 정확하게 평가)했지만, 신식민지 관계를 재구축하려는 상황에서, 편들기 거부로 인해 SEP의 입장은 흠이 크게 생겼다.


노동자권력(Workers Power)—중도주의적 혼란과 제국주의 추종자

카다피 군대를 방어하는 입장을 개진하지는 못했지만, SEP는 최소한 나토군의 침략의도와 그 내부 협조자인 TNC의 성격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하지만 영국 노동자권력(WP)(제5인터내셔널동맹: League for the Fifth International: L5I의 주창자)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WP는 그 좌익적 언사와 추한 기회주의적 입장 사이의 부조화로 잘 알려져 있다. IMT, CWI 그리고 SWP 또는 여타의 수정주의자들과 똑같이, WP가 리비아 사태를 “혁명”이라고 규정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나토가 폭격을 시작했을 때, L5I는 한편으로 제국주의 꼭두각시 TNC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UN이 승인한 제국주의 침략을 큰소리로 비난했다.

“카다피 독재에 맞선 반란자들은 무조건적 지지를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그것은 UN 결정으로 인해 달라지지 않는다….

“강력한 국가권력에 반대하는 자들은 그 압제자의 불리한 상황을 이용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무기를 획득할 권리가 있다. 그것은 그 불리한 상황이 제국주의 개입에 의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유효하다. 만약, 비행금지구역 아래에서 리비아 반란자들과 혁명가들이 재정비하고 카다피 군대의 충성심과 사기를 떨어뜨리고 수도인 트리폴리로 진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리비아 혁명의 전진이며 환영받을 만한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공격에 반대해야 한다.”—“리비아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2011년 3월 19일

1주 후 WP는, 왜 제국주의 공격에 반대해야 하고, 왜 카다피 편을 들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폭격이 시작되었을 때, 좌익 일부는 반(反)제국주의 공동전선 조직을 호소하며 카다피 지지를 결정했다. 이 입장은, 그 정치적 맥락과 전쟁에 임하는 양측의 목표에 상관없이, 노동계급은 제국주의의 표적이 된 자들을 자동적으로 편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해 있다. …카다피가 혁명을 억압할 것이 뻔한데, 리비아 노동자와 빈민이 카다피와 공동전선을 펼 수 있는가?”—“리비아를 덮은 나토—물결의 흐름이 바뀌다.” 2011년 3월 26일

WP는 ‘순수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에 나토가 군사적으로 개입한 것을 “민주주의 혁명 세력”(즉, TNC와 그 추종자들)이 이용해야 할 기회라고 여기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국주의 작전으로 인해 카다피의 억압기구가 약해졌다고 해서 그를 향한 저항의 지속을 거부한다는 것은 진실로 우스꽝스런 것이다!(같은 글)” 여러 달이 지나자, L5I 지도부는 나토 하수인들에 대한 지지입장을 합리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2011년 6월 L5I는 다음과 같이 묻고 답했다. “지상에서 싸우는 반란자들을 단순히 제국주의 하수인이라고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처음 우리가 말해왔던 것처럼 나토군은 반란군에게 무기를 제공하지 않았다. 즉, 나토는 카다피를 전복할 반란군의 독자적 힘을 증강시키지 않았다.(“제국주의에 맞선 투쟁과 리비아”, 2011년 6월 15일)”

TNC 군대를 강화하기 위해 나토와 기타 특수부대 요원 수백 명이 파견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그러면 이에 대해서 WP는 어떻게 설명할까? 그 논문은 다음처럼 이어진다.

“리비아의 군사 작전이 수개월 동안 지속되고 있었지만, 6월 초에 와서야 나토 공군/해군과 벵가지 지상군 사이에 직접적 명령 체계가 수립되었다.”

나토 사령부와 반란군 사이의 “직접적 명령 체계”의 존재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반란군이 “제국주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꽤 명백한 증거로 여겨질 것이다. “반란군”은 단지 “친제국주의적 반혁명적 지도부”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하라 주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인종적 학살”도 자행한 사실을 WP는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어떤 사실도 입장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사회주의자는 항상 독재자에 맞서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려는 대중운동을 지지해야 한다. 그들이 얼마나 반(反)제국주의적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회주의자들이 1980년 폴란드의 자유연대노조(Solidarnosc)를 대중적 노조운동으로 지지하는 것은 옳았다. 역시 이 경우에도 그 지도부의 친자본주의적, 친카톨릭적 성격은 중요하지 않다. 2차 세계대전, 공산당이 지도한 레지스탕스 운동이 프랑스 파리를 해방시켰는데, 그 운동은 어느 모로 보나 반제국주의적이지는 않았다.

“혁명 내에서 혁명을 위해 싸우는 것은 이 모든 사회 운동 내에서 핵심적 관점이다. 그것이 관료화이든 변질이든, 모든 혁명 운동 내에는 반혁명적 씨앗도 같이 있다. 리비아 저항에 닥친 위협은 아주 명확하다. TNC는 구 카다피 정권 관료, 친사유화주의자, 친제국주의자 그리고 반(反)노동계급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같은 글

“친(親)제국주의 그리고 반(反)노동계급” 강령이 이끄는 운동은 일반적으로 혁명운동이 아니다. 1921년 러시아에는 혼란스런 크론슈타트 반란자에서부터 완고한 백군 반혁명 지휘관에 이르기까지 “[볼셰비키] 독재에 맞서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려는…진정한 대중운동”이 존재했다. (1981년 폴란드 자유연대노조의 레흐 바웬사와 그 밖의 자본주의 복귀세력을 지지한 WP나 여타의 좌익들처럼) 이 운동을 지지한 소위 “사회주의자”는 실제로는 제국주의와 한통속이 된 것이다. 소비에트 블록에서 반혁명이 승리하기 몇 해 전, WP와의 논쟁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혁명가의 임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지, 반동적 정치운동을 ‘혁명’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폴란드의 많은 노동자들은, 자유연대노조의 지도를 추종하면서, 자신의 역사적이고 계급적인 이해에 반하여 행동하고 있다.”—“자유연대노조: 트로츠키주의자의 시험대(Solidarnosc: Acid Test for Trotskyists)”, 1988

TNC를 추종하는 리비아 노동자들도 같다. WP 창립자 중 한 사람인 데이브 스톡튼은 나토 하수인들이 트리폴리 진격에 성공했을 때 쓴 성명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때 카다피를 지지했던 제국주의자들은 이제 그를 반대하고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 그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바이다. 저리 비켜라. 이 일은 당신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 리비아 인민 혼자서 카다피와 그의 추한 동조자들을 패퇴시킬 것이다.…”—“사회주의자들은 리비아 혁명을 지지해야 하는가?”, 2011년 8월 22일

스톡튼은 누구를 바보로 만들려 하는가? WP 신입 회원조차도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것처럼, “리비아 인민”이 아니라, 나토가 카다피를 끌어내린 것이다. 스톡튼은, “결론적으로, 사회주의자는 항상 제국주의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들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자를 항상 지지하지는 않는다.”라는 말로, L5I의 우익 기회주의적 혼란을 깔끔하게 요약한다.

WP와 반대로, 혁명가들은 항상 그리고 예외 없이, 군사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는 신식민지 군대 편에 선다. 그 지도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신식민지 질서 재구축 시도에 저항하는 자들을 군사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면서, “항상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정책은 레닌이 이끌던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에서 유래했고, 1930년대와 1940년대 제4인터내셔널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리고 70여 년 전 트로츠키가 설명했던 것처럼 여전히 유효하다.

“민족적 단결과 자립을 위한 피억압 인민의 투쟁은, 한편으로 그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든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 제국주의에 한 방 먹인다는 점에서 이중으로 진보적이다. 이것이 바로 문명화되고, 민주주의적인 제국주의 나라와 식민지의 후진적이고 야만적 군주주의와의 갈등에서, 피억압국가의 군주주의에도 불구하고, 억압국의 소위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자가 온전히 피억압국가의 편에 서야 하는 이유이다.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장악하고 시장을 개척하며 천연자원을 획득하고 영향권을 넓히려는 자신의 야심을 ‘호전적인 자에 맞선 평화 수호’, ‘조국방어’, ‘민주주의 수호’ 등등의 미명으로 감추려 한다. 이러한 선전은 완전한 사기이다.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인민 앞에서 그 가면을 벗겨내는 것이 모든 사회주의자의 임무이다.”—“레닌과 제국주의 전쟁”, 1938년 10월 30일

Libya & the Left: NATO, Rebels & ‘Revolutionary’ Apologists

http://bolshevik.org/hangul/1917/Libya%20and%20the%20Lef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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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이승용 2015.07.20 19:11
    볼세비키는 영국과스탈린이 주축되어 왕조국가을 없애고 일루미나크왚리메이슨 조직으로 세계을 지배할려고 만든 운동으로 공산당은 결국 미국 영국이죠,영국이 소련입니다,북미대륙의 캐나다가 진짜소련이죠,

    공산당혁명에 성공하고 2차대정에 승리해서,,공산당과 싸운 나치지역은 공산당만들고,,공산당지역은

    자본국가만들어서 세계을 가지고 놀죠,미국월가하고 뉴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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