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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결말을 향해가는 이라크

‘중동 지역에서 제국주의자를 몰아내자!’

 

 

한 달 전 코피 아난은 유엔 사무총장에서 물러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미국은 머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발을 뺄 수도 없는 이라크의 수렁에 빠져있다.”(BBC 뉴스, 2006년 11월 21일) 이라크 점령은 초강대국 지위를 영구화하기 위한 야침에 찬 전략으로 시도된 것이었다. 하지만 역으로 그것은 미제국의 퇴조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군대를 중동 지역에 투입하며 미국은, 테러와 싸우고 소위 ‘자유’와 ‘민주주의’를 전파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라크 침략은 중동 지역의 석유 자원을 약탈하고, 제국주의 경쟁 국가들에 대해 확고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라크에서의 승리는 (<Foreign Policy> 2002년 11/12월호에 실린 예일 대학의 존 루이스 가디스의 말을 빌리자면) ‘유프라테스 강둑의 아진 전쟁(Agincourt)[역주:1415년의 프랑스와 영국간의 전쟁. 헨리4세의 영국군이 1만 명의 군대로 프랑스군 3만 명을 물리친 대첩. 이 전쟁으로 영국은 노르망디를 탈환했다.]’의 역할을 할 것이었다. 즉, 압도적인 군사적인 우위를 과시하여, 친구와 적 모두에 대한 ‘충격과 공포’가 될 것이었다. 이라크에 군사 기지의 한 축을 건설하는 것은, 그 지역의 미국 하수인 정권에 ‘지배권’을 제공하고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보장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재조정된 중동 지역은 바그다드에 104에이커[역주: 대략 13만 평]의 광대한 규모로 지어질 미국 대사관을 통해 운영될 것이었다. <USA Today>의 2006년 4월 19일치는 이 대사관을 ‘일정이 잡혀 있고 예산이 배정되어 있는 미국의 중추적인 건물’ 중 유일한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3000명의 직원이 일하고, 발전과 식수 관리 시설을 지닐 이라크 미 대사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의 외교 시설로 디자인된 것이었다.

 미군을 철수시키자는 논의가 점증하고 있음에도, 민주와 공화 양당의 국회의원들은 어느 정도 규모의 군사력을 이라크에 남기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전혀 실현 가능하지 않다.

   

분쟁의 씨앗을 뿌리다

 2001년 11월, 아프카니스탄 탈리반에 대한 승리는 이라크에서도 쉽게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낳았다. 그래서 이전에는 미국의 하수인이었던 사담 후세인의 포악한 바트당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고분고분한 소위 ‘민주적’ 정권으로 교체하는 것이 쉬운 일처럼 생각되었다. 미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하는 데에는 한 달이 채 안 걸렸다. 그러나 그 이후 4년이나 들였음에도 쓸 만한 하수인 정권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구(舊) 바트당 정권의 주요 인사들을 흡수하기보다는, 처음부터 새로운 정권을 건설하려고 미 점령 당국은 결심했다. 하지만 수니파라고 하더라도,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의 핵심들 중 인기가 있는 인사는, 교묘하고도 식을 줄 모르는 수니파 게릴라를 혼란시키기 위해 남겨 두었다.

 일․이차 세계 대전 사이에 영국은 종파적인 분리를 이용하여 자신의 식민지 국가들을 통치했는데 이는 꽤 효과가 있었다. 이라크 사회의 어느 분파로부터도 의미 있는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점령 당국은 바로 그 방식으로 이라크를 통제하려고 했다. 이라크가 탄생한 1920년대부터 통치해왔던 수니파 엘리트들을 끌어내리는 한편, 그 동안 피억압 상태에 처했던 시아파와 쿠르드족을 우대했다. 하지만 시아파나 쿠르드족의 권위가 있는 어떤 인물도, 바트당 독재의 종식으로 형성된 기회를 이용하려고는 할지언정, 단순히 미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쿠르드족의 지도자들은 1991년부터 이라크 북쪽에서 작동해오던 반(半) 자율적인 부족국가들을 확장하고 통합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터키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점령당국과 친선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시아파는 수니파의 저항에 열성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지만 점령당국에 복종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그들이 떠나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라크의 시아파 원로 종교지도자인 아야톨라 알 시스타니는 미국과 노골적으로 갈등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다수파인 그들의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 선거를 이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위하여 그는 모든 시아파 정당들을 하나의 선거 연합 즉, <통일이라크동맹(United Iraqi Alliance)>으로 등록시켰다.

 2004년 11월, 미군은 저항의 주요 근거지 중의 하나인 팔루자 지역를 공격함으로써, 점점 강력해지는 수니파 저항을 분쇄시키려고 했다. 그리하여 미군은 대부분의 마을을 파괴하고 수백 명의 주민들을 학살했다. 그러나 이 잔인한 공격은 단지 전 세계 이슬람의 분노를 자극하는 데에만 성공했을 뿐이다.

 팔루자에서 실패한 이후, 미 국방성은 1980년대 엘살바도르에서 미국이 했던 것처럼, 종교적이고 인종적인 학살 부대를 이용하려고 시도했다. 

“임시정부의 수상(과거 CIA의 일원이었던) 아야드 알라위는 살바도르 작전에서 가장 호전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

 이라크 정보국의 책임자인 무하마드 압달라 알 샤흐와니는, 저항에 대한 광범한 지원을 차단하는 데에 점령당국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 국방성에서 벌어지는 논의에 참가하고 있는 한 군부 인사는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데에 동의하며, 새로운 작전은 저항을 지원하는 이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수니파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면서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지원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뉴스위크>, 2005년 1월 8일

 수니파 인민들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시아파와 쿠르드족 용병들을 이용했지만, 저항을 약화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일은 지방주의자들의 보복적인 유혈 사태에 기름을 끼얹어, 통합 정부 구성의 가능성을 약화시켰을 뿐이다. 

“분쟁의 씨앗을 뿌리는 미국의 정책들을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이라크군의 해체, 종파적인 <이슬람혁명 최고위원회(SCIRI)>와의 동맹, 반(反)점령 정서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지역을 ‘수니파 삼각지대’라고 자주 언급한 일, 이라크 통치 위원회와 임시 장관직을 종파적이고 인종적인 배려에 따라 분배한 일, 장관직이 지역 정당의 권리인 것처럼 허용한 일, 반(反)점령 게릴라들을 ‘반(反)이라크 군’이라고 묘사한 것, 이라크 정치인들이 아니고 미국이 주도하게끔 선거와 헌법 작업의 일정을 밀어붙인 것, 그리고 지금은 정부의 학살 부대가 된 ‘반(反)테러’ 부대 등. 이라크 미 대사인 잘메이 칼리자드가 3월에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Middle East Report>, 2006년 여름

 2006년 2월,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범인들이 사마라에 있는 시아파 아스카리야 사원에 폭탄 테러를 자행했다. 이 폭탄 테러는 미국이 그 동안 잠재우는 데에 완벽히 실패해 왔던 종파적인 살상으로 가는 발화점이 되었다. 우선 그 희생자들은 압도적으로 시아파가 많았다. 종파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이라크를 무정부 상태로 만들고 싶어하는 광적인 수니파의 ‘지하드주의자’들이, 이 학살 사건의 범인들이라고 지목되었다. 그러나 매달 수천 명의 죽음을 낳는 폭력 사태의 주범들 중 일부는, 하수인 정권의 경찰을 통해 작전을 펼치기도 하는 시아파 민병들이다.

 2006년의 연말, 유엔의 말에 따르면 “시민들은 매달 10만 명의 규모로 나라를 떠나고 있다.” 그리고 “최소한 160만 명의 이라크인들이 2003년 3월 이후 나라를 떠났다.” (<연합통신>, 2006년 11월 23일)

 

민주주의와 제국주의 통치

 처음 1, 2년 동안 미국의 지도자들은, ‘역사적 분기점’을 지났으며 상황이 곧 좋아질 것이라고 주기적으로 선언해왔다. 그러나 그 모든 ‘역사적 전환점’–2004년 7월의 옛 바트당 정권의 깡패인 알라위의 가짜 ‘자치 정권’의 수립과 2005년 1월의 ‘임시 정부’ 구성을 위한 사기 선거를 포함하여–은 이라크인들의 삶을 조금도 개선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 점령 당국과 그 하수인들의 정치적 권위는 계속 추락하고 있다. 수개월 동안의 지독한 협잡 이후, 2005년 10월 개운치 않은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이 채택되었다. 두 달 이후 새로운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백악관은 두 가지 사건 모두 중요한 ‘전환점들’이라고 선전해댔다. 하지만 ‘민주화’라는 겉치레로 이라크 식민지화의 의도를 감춰보려는 그 속임수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2005년 12월 선거는,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이라크의 쿠르드족과 시아파 그리고 수니파를 ‘전국 통일 정부’로 합치게 했다. 미국은 일련의 ‘정치 일정’에 수니파를 참가시키면, 저항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했다. 그러나 시아파인 누리 알 말리키 수상이 이끄는 정부는 말장난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통치하지 못했고 점점 더해가는 종파적인 학살을 제압하는 데에 실패했다. 바그다드에 질서 비슷한 것도 심지 못했으며, 저항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이라크 정부를 구성하는 각 파벌들은 ‘상대방’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쿠르드 동맹은 <쿠르드지방정부(KRG)>에 대한 양해를 얻은 이후에야 2005년 10월 헌법을 승인했다. 그들의 중요 관심은 북쪽의 석유 매장지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데에 있다. 쿠르드족의 ‘자치’를[‘독립’이 아니라: 역주] 지지하는 수니파와 시아파 의원 동맹은 <쿠르드지방정부>의 야심에 공동으로 반대하는 데에, 최소한 당분간이라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쿠르드족의 영향력이 쿠르드족과 아랍인 그리고 터키민족이 사는 광대한 석유 매장지인 키르쿠크 지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노골적인 분열을 피하기 위해, 정부는 논란 지역에 대한 결정을 2007년 연말에 실시될 국민투표 때까지 미루기로 했다. 국민투표를 통해 그 지역이 어떻게 결정되든지 간에, 이 심각한 갈등은 국경을 넘는 군사적 충돌과 유혈 인종 청소로 귀결될 가능성이 많다. 터키는 쿠르드족의 점령을 막기 위해 군사 개입을 하겠다고 수차례 위협한 바 있다. 

 미국은 소위 ‘민주주의’를 신식민지나라들에 심으려 한다. 왜냐 하면 그 지역 토착 정당들 사이의 경쟁을 이용하여 통제하는 방식이 값싸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니파의 어느 분파도 미국 주도의 ‘정치 일정’에 참여하기를 꺼리기 때문에, 이 모델을 이라크에 심기가 쉽지 않다. 몇몇 수니파의 지도자들이 새 헌법을 위한 협상에 참가했지만, 그들은 2005년 10월 국민 투표로 결정된 헌법을 승인하는 것은 꺼려하고 있다. 왜냐 하면 그들의 지역엔 알려진 석유 산지가 없는데, 그 헌법이 이라크의 석유 자원에 대해 중앙이 아니라 지역적인 통제를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 논의가 마무리될 즈음, 미국이 쿠르드족과 시아파에 압력을 행사했다. 새로 구성될 의회가 지방의 석유 통제권 등의 헌법 조항들에 대해 재검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2005년 12월의 총선에 수니파가 참가하게 되었다.

 선거가 끝나자, 이란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이라크 시아파 중 부유층의 지지를 받는 <이슬람혁명 최고위원회(SCIRI)>는 수니파에게 지나친 양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뉴욕타임스>는 2006년 1월 12일치 신문에서 그 선언을 “국가적 분열과 끝없는 내전을 향한 선언이다. 그것은 또한 미국에 대한 자극적인 도발이다.”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석유에 대한 중앙 통제를 바라는 것은 비단 수니파만이 아니다. 시아파의 견해 또한 이 문제와 관련지어 깊은 골이 패어있다. 어느 정도 협조적인 <이슬람혁명 최고위원회(SCIRI)>와는 달리, 처음부터 점령을 반대해 온 무크타다 알 사드르의 지지자들 또한 석유의 중앙 통제를 원하고 있다. 2004년 사드르의 마흐디 군은 점령군에 맞서 두 개의 중요한 전투에 참가했고, 점령에 단호히 반대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이슬람혁명 최고위원회(SCIRI)>의 근거지인 남부까지 포함하여, 그를 시아파 인사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 그의 지방화에 대한 반대 태도가 종교적인 수사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가 지방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의 운동이 석유가 나지 않는 바그다드의 빈민층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9월 이라크 의회는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18개월 동안 연기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모든 사람들은 그 때가 되면 정국이 크게 출렁거릴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2006년 8월 시아파 민병대의 가차 없는 공격은 1000명의 영국 병사들이 아마라의 도시 외곽에 있던 자신들의 기지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퀸스 로얄 후자(Queens Royal Hussars) 부대의 데이빗 라 부쉐르 중령에 따르면 작년 3월부터 올 8월까지 283발의 박격포가 떨어졌다.

 기지는 트럭 160대분의 보급이 2주마다 있어야 한다. 라 부쉐르 중령은 ‘이것은 대단히 웃기는 상황이다. 6, 7개의 중대가 단지 부대 방어를 위해 필요하다. 방법은 기지를 떠나 부대를 보다 기동성 있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개월 전 영국군 지도부가 기지를 떠나면서 그것을 전술적 재배치라고 말했지만, 아마라 사람들은 그것을 퇴각이라고 부른다.”

<가디언>[런던], 2006 10월 21일

 영국군이 사라지자마자 <이슬람혁명 최고위원회(SCIRI)>의 민병대와 사드르의 마흐디 군 사이에 폭력적인 세력다툼이 벌어졌다. 

“수도에서는 두 종파가 회교 의회 동맹으로 사이좋게 앉아있다. 하지만 아마라에서는 영국군이 지난 8월 물러간 뒤 서로 싸우고 있다. 

두 종파는 모두 결혼식에서 음악을 금하고, 학교에서 남녀를 분리하며, 인터넷 카페를 닫고, 서방의 위성 채널을 보지 못하게 하는 등의 탈리반식(式) 강제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한다.”

<Telegraph.co.uk>, 2006년 11월 12일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점점 기울고 있다. 그리고 미국에 협조하는 아랍 동맹자들의 지위는 점점 더 위협받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계속 나빠짐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잘 모르는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최고지휘관은 계속 ‘궁극적 승리’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이라크 모험의 운명은 ‘차기 대통령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드는 지방주의자들의 갈등

 스테판 비들은 ‘수니파와 시아파와 쿠르드족 사이의 군사적 균형을 이루어 내어 서로 타협하게 한 다음’ 믿음직한 꼭두각시 정권을 수립한다는 전략을 제안했다. 또한 그는 ‘그들의 이해가 전면적 전쟁이 아니라, 의회의 타협을 통해서 더 잘 채워질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것은 문서 위에서는 꽤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실제의 상황이다. 이 상황은 내각과 지방 경찰 모두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시아파 민병대를 옴짝 못하게 해야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시아파 시민들에 대한 공격을 수차례 자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수니파의 저항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시아파와 맞서리라고 보긴 어렵다.

 2006년 8월, 미군이 바그다드의 고조된 종파적 유혈 사태를 진압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을 무렵, 미 국방성의 관리는 다음과 같이 시인했다. ‘저항이 대단히 격렬해지고 있으며, 모든 측면에서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군중 동원력이나 적시에 공격 목표를 바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도 향상되고 있다’ (<뉴욕타임스>, 2006년 8월 17일) 이라크의 넓은 지역들, 특히 하디싸, 팔루자, 그리고 라마디 도시가 있는 안바르 지역은 미군과 그 동맹군들의 ‘출입금지’ 지역으로 변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피터 데블린 해군 중령이 ‘이라크 서부에서 더 이상 유혈 폭동을 진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기밀 군사 보고서를 보도했다. (2006년 11월 28일)

 미군 철수에 대한 모든 논의에는 지배 계급 두 정당의 동의 사항이 있다. 그것은 그 지역에 미국의 군사력을 줄곧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저항에 노출되기 쉬운 중요 도시 거점의 바깥의 기지들로부터 군사력을 철수해야 할지 모른다. 그보다 나아가 어쩌면 이라크 전체에서 군사력을 철수시켜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필요할 때 쉽게 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항과 종파적 민병대 둘 다 제압하지 못하는 미군의 무능력은, 결국 미국이 패배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 고유의 목표 때문에 협력하는 쿠르드족이라는 예외가 있지만, 군사적으로 믿을만한 이라크의 동맹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이라크 군대와 경찰은 급속히 해체될 것이다. 15만의 제국주의 군대를 동원하였음에도, 날로 강력해지는 저항을 제압하는 데 실패하여 4년이나 허송세월을 하고, 병력을 철수시켜 오지의 기지에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게 하고, 저항 세력이 강화되는 것을 허용하여 송유관이 지나가는 지역을 장악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누가 보아도 최악의 패배임이 분명할 것이다.

 펜타곤은  1970년대에 베트남에서 했던 것처럼, 공중에서 지상을 장악할 대체 공군력을 희망했다. 공군의 긴밀한 지원은, 별볼일없는 군대로도 사기가 높고 전투로 단련된 적군을 제압하게 한다. 그러나 백악관은, 대부분 수니파 저항세력이나 시아파 민병대에 충성하는 이라크인 지휘관들에게 공중 공격을 맡기고 싶지 않아 한다. 물론 타격 목표를 선택할 권한이 있는 미군의 ‘훈련관’이나 ‘군사 고문’을 모든 이라크 부대에 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그들이 파견된 부대의 병사들에 의해 ‘살해’되거나 인질로 붙잡힐 위험이 있다.

 수니파 저항을 진압하는 데에 미군이 실패하면서, 점령은 재앙이 되어 버렸다. 점령하기 전인 2003년, 미국의 국방성 장관인 럼스펠드는 전쟁 비용으로 500~600억 달러 정도가 들 것이라는 기획서를 올렸다. 한편 그의 보좌관인 폴 월포위츠는 이라크의 석유 수입으로 거의 모든 비용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했다. 그런데 <하버드 매거진> 2006년 5-6월호는 노벨상을 받은 조셉 E 스티글리츠와 하버드의 린다 빌름의 연구를 실었다. 그 연구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 비용으로 2조 달러를 투여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라크에 강요된 ‘재건’ 사업으로 부시와 체니 일당은 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학교와 병원 또는 기타 공공 서비스 시설들 그리고 전기와 수도 공급 시설 등은, 사담 정권 수준으로도 ‘재건’되지 않았다.

 2006년 10월, 이라크의 운명에 대한 볼티모어의 존 홉킨스 대학의 연구 내용이 명성 있는 영국의 의료 잡지인 <The Lancet>지에 실렸다. 그 연구는 2003년 이후 이라크에 65만 5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폭력으로 사망한 31%는 동맹군의 직접적인 책임이고, 공중 폭격만으로도 4만 5천 명이 넘는 이라크인들이 죽었다고 그 연구는 말한다.

 ‘수니파 삼각지대’에서 비전투원들에 대한 무지막지한 학살이 있었다. 그것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저항 운동을 분쇄하기에 여념이 없는 점령군이, 저항군과 민간인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현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언론들은 특별히 잘 입증된 몇몇 사건만을 주로  다룬다. 그러한 사건들의 경우, 그 책임을 미군 병사들에게도 묻고 있다. 하지만 아부 그라이부 감옥의 고문 스캔들처럼, 소수의 하급 병사들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되고 있다. 

 

고조되는 부르주아 진영의 패배주의

 영국 장성의 우두머리인 리처드 대넛 장군이 ‘우리의 존재가 안보 문제를 악화시키므로, 군대를 이라크에서 빠른 시일 내에 철수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 때 미국의 실질적으로 유일한 동맹인 영국에서 패배주의 정서가 고조되었다. (<가디언>[런던], 2006년 10월 13일) 미국의 군사와 정치 분야의 관료들 중에도 이 전쟁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2005년 11월, 국방비 소위원회의 고참 민주당 의원이며 오랫동안 미 국방성의 고급 장교 모임의 비공식적 대표를 해 왔던 존 머싸가, 2006년 5월까지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여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 말은 부시를 열받게 했고, 그는 며칠 뒤 11월 19일 남한에서 행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1983년 베이루트 그리고 1993년 모가디슈 등 미군에 대한 공격 이후, 테러리스트들은 우리들의 반응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우리가 미국을 도망치게 만들 수 있다. 지금은 더 큰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절대로 도망가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들은 이라크를 휴머니즘에 대항한 공격의 최전선이라고 여기고 있다. 우리는 이라크를 테러리스트에 대항한 최전선이라고 여겨야 한다.

 만약 그들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테러리스트들은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이스라엘을 파괴하고, 유럽을 위협하며, 나아가 우리의 의지를 꺾고 우리 정부를 고립시키려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여러분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려 한다. ‘내가 지켜보는 한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http://www.whitehouse.gov

 부시는 그 스스로를 신의 도구라고 자임하고 있다. 

“2001년의 9․11테러 이후 과거 공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신이 나를 이곳으로 보냈다.’고 부시가 말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그러한 믿음은 공화당이 2002년 의회 선거를 휩쓸었을 때 더 굳어졌다. 부시는 그 승리를 신의 계시라고 생각했다. 그가 재선되었을 때 부시는, 그것이 전쟁에 대한 국민투표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사적으로 부시는, 그것을 신의 부름이라고 표현했다.”

<New Yorker>, 2005년 12월 5일

 2002년의 중간 선거를 그에 대한 승인으로 보는 부시가, 2006년의 선거 결과는 과연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해진다.

 바그다드의 ‘그린 존’에 있는 자들은 일이 대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작년까지만 해도 국방성과 외무성의 야심 있는 모든 신입요원들은 최소한 6개월 동안이라도 ‘그린 존’에서 근무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요즘은 똑똑하고 우수한 인자들이 떠나고 있다.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

 내부 인사가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것은 피하고 싶은 일이 되고 있다. 하루에 얼마나 일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치 않다. 만약 사이공에서처럼 헬리콥터를 타고 나갈 수 있다면, 누구든 더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Telegraph>, 2006년 11월 12일

 2006년 동안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상황은 심각하게 나빠지고 있다. 

“2005년 가을,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장성들이 상원 국방 위원회에서 미군을 점진적으로 철수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존 P 아비자이드 장군과 조지 W 케이시 주니어 장군은 그 자리에서 ‘미군의 존재는 저항을 부추기고, 이라크 방위군의 의존성을 강화하며, 아비자이드 장군이 주장해 왔던 ‘이슬람 급진주의와의 장기전’에 상반되는 결과를 불러온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 주, 미국 중앙 사령부의 아비자이드 장군은, 같은 위원회에 출석하여 ‘이라크에서의 전면적인 내전을 막는 것이 미군의 역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단계적으로 철수시키는 것은 실수가 될 수도 있다.’고 진술했다.……

 가장 커다란 위험은 이라크 정부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폭력 사태이고, 그것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2006년 11월 18일

 지방주의자들의 유혈 내전은 주변의 수니파 아랍 정권들과 더불어 이란, 터키를 끌어들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하여 그 지역 전체를 불구덩이로 만들 수 있다. 미국의 부르주아 계급은 이라크에서 실패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예리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들의 견해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철수하자는 측과 현재의 상황을 개선시킬 묘안을 찾는 측으로 나뉘어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무능력은, 소위 ‘자치 정부’의 수상인 누리 알 말리키가 점령군들의 ‘과도한 폭력’을 비난하면서 그 상전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 하는 모습에도 반영되어 나타난다. 2006년 5월 말리키는 동맹군이 이라크의 18개 지역 중 16개 지역에서 2007년 1월까지 철수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BBC News>, 2006년 5월 23일) 수개월 전 마흐무디야의 마을에서 미국 병사들이 14살 먹은 소녀를 강간한 후 살해하고, 그녀의 부모와 자매까지 죽인 사실이 2006년 7월에 밝혀졌다. 사건 직후 이라크 의회는 만장일치로 ‘모든 이라크인들의 명예’를 짓밟은 일이라고 비난했다. 말리키는 그러한 범죄는 이라크 법에 따라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사령부는 이 주장을 즉석에서 거절했다. 그러한 주장이 ‘외국군 병사와 사업 계약자들은 이라크 법정에서 면책 특권을 갖는다’는 명령 제 17조(미국 점령군 사령관인 폴 브레머의 승인 아래 연합 임시행정부(Coalition Provisional Authority)가 2004년 통과시킨)에 위배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흐무디야에서 벌어진 추악한 범죄를 비난한 몇 주 후, 이라크 의회는 만장일치로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범죄적인 침략’이라고 규정했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 요르단과 이집트 그리고 사우디의 미국 하수인들이 헤즈볼라를 ‘모험주의’라고 비난한 것과 대조적이다. 10만 명이 바그다드에 모여 이스라엘의 공격에 반대하는 시위를 말리키의 주 동맹 세력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조직했을 때, <뉴욕타임스> 2006년 7월 20일치는 이렇게 지적했다.

 “이라크 정부가 이스라엘을 향해 드러내는 적의는, ‘이라크에 미국의 지원을 받는 민주적인 국가를 세우면 필연적으로 이스라엘의 동맹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랍 세계 전체의 태도도 변화될 것’이라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뾰족한 수가 없는 미국

 이라크 수니파에 대한 연구자인 조안 콜은 지금 미국이 궁지에 처한 까닭은 ‘현실적이고 성취 가능한 목표’를 잘못 타산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라크에 친미 정권을 세워, 미국 석유사업자들에게 유리한 석유 계약을 따내고,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게 하고, 이란과 시리아를 압박할 발판을 마련한다는 애초의 정치적 목표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것이다. 그와 같은 목표들을 설정한 미부통령인 체니의 무능력이야말로 우리가 이라크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원인이다.”

<‘Informed Consent’ blog>, 2006년 11월 28일

 2006년 10월 24일, <뉴욕타임스>는 ‘이라크 재앙’이라는 신문 사설에서 “재앙을 모면하려는 모든 계획은 거의 기적이 일어나야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부시대통령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이제 문제는 이라크에서 미국이 승리할 수 있는지가 아니다. 오직 문제는 ‘어찌하면 테러리즘의 확산을 막고, 동시에 중동 지역 전체로 확산될 내전을 피하면서,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는가’이다.

 미국이 철수한 후 어찌될 것인가의 문제는 이라크 논의에 늘 따라다니는 쟁점이다. 새로운 전략들과 일정 등을 검토해 볼 때, 이 정부는 2년만 더 질질 끌다가 문제를 차기 정부에 떠넘기려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사설은 이렇게 제안했다. 

“대통령은 미국이 이라크에 영구적으로 주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단호하게 천명해야 한다. 이라크와 중동의 인민에게 제국주의적 이익을 추구하는 미군이 더 이상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당연히 그 ‘제국주의적 이익’이야말로, 미군이 어디든 개입하는 유일한 이유이고, 그 이익의 추구 때문에 양당 모두 그 지역에 미국의 군사기지를 무한정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타임스>의 논설위원들은, 그 기지들을 영구적으로 유지하지는 말고 ‘임시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어떠냐고 소박하게 제안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미국의 지배 계급에겐 세 가지의, 하지만 별로 내키지 않을 선택이 있다. 첫째는 패배를 인정하고 철수하는 것이다. 이것은 베트남과 비교하더라도 미 제국주의에게 역사적이고 치명적인 패배가 될 것이다. 미국의 철수는 지역 상호간 폭력의 소용돌이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그것은 터키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또는 아마도 요르단과 이집트까지 개입하게 되는 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비록 국지전을 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중동 지역 하수인들은 중동의 새로운 강자인 이란과 화해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명백한 친미 정권들은 내부로부터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이라크를 ‘잃는 것’은 2차 세계 대전 결과 조성된 미국이 헤게모니를 쥔 세계 체제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지배계급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참으로 어려운 결과이다.

 워싱턴이 취할 수 있는 두 번째 선택은, 페르시아 만(灣)의 주도권을 인정해 주면서 이란과 거래를 하는 것이다. 미국과 그 추종 세력의 특별한 지위와 미국의 석유 회사들이 이라크의 석유에 접근할 권리를 협상하게 될 것이다. 이 선택은 이슬람 세계에서 이란의 주도적 지위를 굳히는 반면,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친미정권들을 약화시킬 것이다. 이란과의 거래는 이스라엘과도 관련된다. 대부분의 점령지에서 군대를 철수시키는 문제, 인종 분리 장벽을 철거하는 문제, 1993년의 오슬로 협정이나 2002년의 ‘로드맵’보다 나은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는 문제 등을 이스라엘에 요구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선택은 미국이 납득할 만한 조건 속에서 이라크를 안정시키라고 이란 정부에 요구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군사 공격을 하는 것이다. 그 같은 침공에 대한 준비는 많이 진척되었고,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려 한다는 혐의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처럼 되어 있다. 부시의 재임 기간 동안 미국은 비핵국가에게는 절대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공언(하지만 가치 없는)을 반복했고, 지하 벙커나 군사 밀집 지역 또는 유사한 목표물에 전술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전해 왔다. 혁명가들은 이란의 반동적인 종교 지도자들에게 어떤 정치적 지지도 보내지 않지만, 제국주의자의 협박에 대해 이란을 방어하고, 자기 방어를 위해 핵무기를 가질 권리를 옹호한다.

 2006년 7, 8월의 헤즈볼라의 시위가 있기도 전에, 이란 기술자들이 설계한 벙커들이 가장 크고 ‘정교한’ 재래식 폭탄에도 견딜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의 최고 지휘부는 이란을 공격하자는 백악관의 압력에 저항하고 있었다고 시무어 허쉬는 말했다. 

“전 현직 관료들의 말에 따르면, 국방성 내부의 고참 요원들 중에서 대통령의 계획들에 대해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육군과 해군 장성들은 폭격으로는 아마도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파괴하지 못할 것이라고 참모부에 말해왔다. 그들은 또한 공격은 미국의 경제 정치 군사 분야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경고해 왔다.”

<뉴요커>, 2006년 7월 10일

 미국 육해공 합동본부는 이란이 수십만의 이란 전투요원들과 함께 이란 시아파들을 긴장시킬 것과 이미 넓은 지역에 배치된 동맹군들을 전면적으로 공격할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란에 대한 공격은 중동에 불을 지를 것이고, 대중봉기를 점화하여 미국의 하수인 정권을 이슬람 정권들로 교체할 가능성이 높다.

 

오직 노동자 혁명만이 제국주의를 뿌리 뽑을 수 있다!

 15년간의 제국주의 경제제재와 군사공격은 이라크–한 때 이슬람 국가들 중에서 가장 탈(脫)종교적이고 경제적으로 앞선 나라였던–를 살벌한 반동과 종파주의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지역주의와 종교적 광신주의는 이라크 사회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한 모습은 중동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 점령의 직접적 결과일 뿐이다. 맑스주의자들은 서로 경쟁하는 부르주아 분파들 간의 논쟁이나 이라크를 삼켜버리는 종파주의적 폭력의 악순환의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1983년 베이루트에서는 미국 해병대와 프랑스 낙하산병에 대한 트럭폭탄 세례가 있었고, 1993년의 모가디슈에서는 미국의 블랙호크 헬리콥터를 격추시킨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이란의 점령군에 대해 바트당원들이나 이슬람 저항군들의 공격이 있다. 제국주의 점령에 대한 이러한 식식민국가의 무력적 저항을, 혁명가들은 그 정치적 성격에 관계없이 지지한다.

 침략자를 몰아내기 위한 싸움에 몸 바친 수천 명의 이라크 전사들의 노력들은, 몇 년 되지 않는 시간 동안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패배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훌륭한 일이다. 왜냐 하면 제국주의야말로 노동하는 인민의 해방에 가장 큰 장애물이며, 모든 세계의 억압자이고, 각종 반동의 가장 큰 지지대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 모험에서 실패한 일은,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로 알려진 나라가 돌이킬 수 없는 내리막길로 향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었다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2001년 제거되어, 손쉬운 권력 교체의 예로 꼽히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리반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이라크에서 미국의 패배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기술과 군사적 우월함이 항상 승리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세계에 환기시키고 있다. 이스라엘 국방군은 2006년 남부 레바논의 헤즈볼라 게릴라로부터 유사한 가르침을 얻었다.

 미국 내에서 ‘베트남 증후군’의 부활은 가까운 시일 내에 군사적 모험을 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신식민지의 ‘선택적 전쟁’을 포함한 전쟁은, 제국주의 시대의 자본주의에게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요소이다. 경쟁국들보다 더 하강하고 있던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중동 도박에 뛰어들었던 미국은, 이번 실패로 인해 오히려 더욱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 이라크를 석유 식민지로 만들려는 미국의 모험을 지켜보기만 했던 유럽과 일본의 지위는 개선되었다.

 미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과거의 동맹국들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능력이 감소함에 따라, 새로운 갈등의 무대가 점차로 준비되고 있다. 90년 전에 러시아의 위대한 혁명가인 블라디미르 레닌은 이렇게 썼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를 띠건, 그리고 하나의 동맹이 다른 것에 대항하든 아니면 모든 제국주의 세력이 하나로 결합하든 관계없이, ‘제국주의 국가 상호간의’ 또는 ‘범제국주의적’ 동맹은 궁극적으로 전쟁과 전쟁 사이의 ‘휴전’에 지나지 않는다. 평화적인 동맹은 전쟁을 위한 준비이고, 때가 되면 전쟁을 일으킨다. 제국주의적 세계 질서 속에서 평화와 전쟁은 제국주의 상호 갈등의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V. I. Lenin, <제국주의, 자본주의 최고의 단계>(1916)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볼 때 자본주의 경쟁 논리는 제국주의 국가 간 상호 경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 경쟁의 궁극적 결론은 파멸적인 전쟁과 핵지옥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내재하고 있는 비이성적인 사회체제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체제로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완전히 뿌리 뽑혀지고 지구적 차원의 계획 경제로 대체되어야만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사회는 사적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위해 봉사하게 된다. 미국만이 아니라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 계급은, 신식민지 나라들의 노동자와 피억압 인민들과 더불어, 평등한 사회주의 세계 질서를 건설할 중요한 책무를 지고 있다.

 파괴적인 제국주의 질서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한 싸움을 치를 객관적인 이해와 사회적 힘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는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해 불만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혁명적 목표를 향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 계급은 반드시 정치적으로 각성되어야 하며, 그 각성은 오직 혁명 조직의 매개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국제볼세비키그룹(IBT)>은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국제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해 왔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이루어야 할 가장 결정적인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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