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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맑스주의 분석


 

세계 자본주의 전체의 하강을 향해 가는 지금의 금융 공황이 1930년대 이래 최악의 경제 공황이라는 증거들이 급속히 축적되고 있다. 미국정부의 7000억 달러 구제금융은 월스트리트 이사들의 두둑한 보너스를 보장하고, 신규 매입으로 금융자본의 집중을 위한 재원으로 공급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소비와 신규투자를 마비시켜온 신용압박을 거의 경감시키지 못하고 있다. 거대 통신기업인 캐나다 Nortel이 그랬던 것처럼, 운송회사 DHL은 오하이오 주에서 수천 명의 인원을 감축한다고 지난 주 발표했다. 간신히 버티고 있거나 아니면 파산한 투자은행들과 Circuit City같은 소비유통회사의 대규모 해고 발표 뒤의 일이었다. 소위 ‘구제 조치’가 워싱턴으로부터 있건 없건, GM과 크라이슬러 그리고 포드의 파산과 ‘구조조정’ 그리고 합병으로, 최소 5만 명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경색된 금융시장과 기업 이윤율의 하락으로 인해 북미와 해외의 주식시장의 명목 가치는 이미 30% 가량 감소되었다. 선진국 경제가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헝가리 그리고 아이슬랜드는 파산을 면하기 위해 국제금융기구(IMF)의 구제 금융을 신청하고 있다. IMF는 최선진국들의 총생산은 2009년에 0.3% 가량 축소될 것으로 며칠 전 전망했다. 이와 같은 후퇴는 194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표1을 볼 것.)


표1: 2009년 성장률 전망치:

미국

일본

영국

G-8 나라들

-0.3%

-0.2%

-1.3%

-0.3%


IMF에 따르면, 급속한 경제 성장을 구가하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이 크게 늦춰지는 것을 필두로, 국제무역의 성장은 2007년 7.2%에서 2008년 4.6%로 떨어졌고, 2009년엔 2.1%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소위 ‘신흥 경제’ 국가들 중 가장 역동적이었던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12%에서 8.9%로 축소되었고 2009년에는 8% 아래로 예견되고 있다. 세계 전체로 볼 때 여전히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매년 중국노동시장으로 유입되는 2천4백만 명의 신규 인력을 그 정도의 경제 성장으로는 소화해 낼 수 없다. 실업인구가 공식적으로 이미 7천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중국의 성장률 하락은 일자리를 잃거나 경제활동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치명적 타격을 가할 것이다.

모든 징후들이 세계 경제가 혹독하고 장기적인 경기 후퇴 또는 불황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나타낸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는 의견이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10월 11일치 헤드라인처럼 ‘체제 구하기’를 추구하는 세력들은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대체물은 없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경제 위기의 가장 큰 희생자인 노동인민과 빈민들이 이 체제를 복구하기 위해 희생하도록 설득하려 하고 있다. 현 체제의 이념적 수호자들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는 책임이 없다는 다양한 진단들을 내놓고 있다. 몇몇은 월스트리트의 금융 엘리트들의 탐욕과 단기적 시야 그리고 정부 책임자들의 시장 조정 실패를 지적한다. 보다 교묘한 자본주의 옹호자들은 ‘신자유주의’의 과잉을 비난하고 ‘자유시장 근본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몇몇은 공공부문을 크게 확충하는 사민주의적 ‘혼합경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늘 그런 것처럼, 이 ‘주류’들의 끝자락에는 사회 하층과 노동계급을 비난하는 우익인사들이 있다. 희생양을 찾고 있는 자들에 따르면, 지금의 금융위기를 촉진한 주택가격 하락은 몇 년 전 서브프라임 대출 이자율이 쌀 때 이득을 보았던 “책임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자율이 오르자 지불 불능상태에 빠져 촉발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탐욕”과 “지나친 무책임성”은 자본가계급 특히 금융 자본가들의 주특기라는 점에서 이 같은 설명은 별 설득력이 없다.

 

생산성, 가치 그리고 자본주의 위기

공화당후보 존 매케인이 “우리 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다.”라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편 지난 9월 15일은, 미국 대선의 핵심적 장면 중 하나였다. 매케인은 바락 오바마의 비판에 대해 화를 내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 미국노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열심히 일하며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고 생산적이며 경쟁력이 있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할지 모르지만, 매케인의 이 지적은 사실 <이코노미스트>의 “체제 구하기” 논리에 맞서 현재 위기를 설명하기 위한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된다. 지금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노동계급은 이 위기와 관련하여 비난받을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 반대로 노동생산성은 늘 높았고, 반면 임금은 생산성의 성장에 늘 못 미쳤다. 1970년대 이후 노동진영은 심각하게 후퇴했고 계급투쟁은 일방적이었다. 자본은 그동안 방해 없이 자기 갈 길을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자신의 기반을 스스로 잠식해 왔다. 소비에트 형태의 ‘공산주의’는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지고, 노동조합들이 크게 쇠약해졌으며 전략적 전망을 상실하고, 소위 ‘복지국가’는 흘러간 노래가 되어가고, 세계 대부분의 인민들은 ‘자유시장경제’의 필연성에 명백히 굴복하고 있는 지금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백년에 한 번 있을 경제위기라고 말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사회주의자는,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책임이 있다. 즉,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위기는 자본주의가 그 ‘역사적 한계’에 다다랐음을 다시 확인시키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맑스의 표현에 따르면 이 소멸해가는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체제는 노동하는 인민들이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집산적 국제 경제라는 “사회적 생산의 더 높은 국면”으로 반드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왜 매케인의 그 언급이 경제위기와 국제자본주의가 처한 난국에 대한 맑스주의적 시각의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지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하자. 1994년 발간된 <보이지 않는 괴물(Invisible Leviathan)>에서, 나는 맑스의 자본주의 비평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명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즉, 자본주의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 움직임과 가치는 필연적으로 노동시간으로 측정되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사이에 모순이 내재한다는 것이다. 맑스에 따르면, (자본가 계급의 이윤을 포함하는) ‘새로운 가치’의 유일한 원천은 자본주의 생산에 동원되는 살아있는 노동이며 그리고 이 새로운 가치는 가격과 이윤과 임금의 크기를 규정한다. 내가 믿고 있는 것처럼 맑스의 말이 맞다면, 화폐는 추상적 사회노동이 객관화된 필연적 형태(즉, 자본주의적 가치의 사회적 실체)이다. 만약 그가 옳다면, 화폐 이윤은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임금노동의 착취 결과(노동자의 잉여노동의 착취와 그것이 잉여가치로 변환된)로 발생한다. 그가 옳다면, (노동을 절약하는 기계와 기술의 도입을 통해) 살아있는 노동을 생산에서 배제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체제 전체의 이윤 형성 능력 즉, 평균 이윤율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양의 ‘사회적 잉여가치’ 생산 능력을 삭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노동 투여량 감소를 통해 향상된 노동 생산성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투자와 성장을 추동하는 결정적인 동인인 이윤율을 낮추게 된다. 맑스가 “자본주의적 생산의 고유한 특징인 이윤율의 점진적 하락 경향은 곧 사회적 노동 생산의 점진적 발전의 표현이다(<자본론>, 제 3권).”라고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물질적 부’의 최대화가 아니라 사회와 대립하는 ‘사적 이윤’(즉,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분배와 교환을 통제하는 자본가의 이윤)의 최대화를 위해 작동하는 체제이다. 이것은 ‘과잉생산’이라는 자본주의 공황의 특징을 설명해 준다. 자본주의의 주기적 공황은 상품이 너무 적게 생산되어서가 아니라, 이윤을 얻기 위해 사회적 이익과 무관하게 상품을 지나치게 많이 생산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화폐로 효율적으로 바꾸기 위하여 너무 많은 상품들이 생산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주기적 위기는 생산성의 하강(이것이 경쟁 속에 있는 개별 기업과 심지어 국가 경제의 상대적 자산에 명확히 영향을 주긴 하지만) 때문이 아니라, 더욱 국제화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된 잉여가치가 화폐형태로 충분히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노동의 착취가 여전히 경제 전체에 있어 새로운 가치의 유일한 원천임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 기술의 도입으로 인하여 생산과정에 투여되는 살아있는 노동의 상대적 양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충분한 잉여가치가 생산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매케인의 잘못은 무엇인가? 매케인은 노동생산성의 수준이 높을 경우 마치 ‘경제의 기초’가 건실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성적으로 작동되는 경제 체제 아래에서만 성립되는 말이다. 자본주의는 이성적이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와 반대로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독특한 법칙 즉, 생산력의 발전과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재생산 사이의 구조적 모순을 증가시키는 가치법칙과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 법칙에 지배된다. 이 법칙들은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의 ‘사회’관계 사이의 양립불가능성을 고조시키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것들을 이해하지 않고는, 노동절약형 기술의 도입을 통한 노동생산성 향상이 어떻게 지금 직면하고 있는 자본주의 혼란을 낳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법칙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별 기업들이 자연과학의 합리성을 생산에 응용하는 것이, 어찌하여 인류의 불행을 점점 더 크게 하고 인류 발전을 위한 기회와 노동력과 역량들을 ‘대규모로’ 소진시키는 사회적 비이성을 낳는지를 이해하는 핵심고리이다.

 

생산과 금융 그리고 이윤율 하락

현재의 금융위기는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을까? 분명하게 현 위기의 가장 직접적 원인은, 교환 영역에 있어서 다소 투기적인 거래를 통한, 투자은행들의 광적이고 단기적인 이윤추구에 있다. 무엇보다도 불량 대출의 판매, 쪼개 팔기, 재상품화와 재판매 등. 그리고 신뢰하기 힘든 형태의 ‘가공 자본(fictitious capital)’이 금융 체계에 계속 충격파를 던진 것도 ‘거품’ 붕괴(특히 주택 거품)와 관련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자 한다. 이 금융 거품과 광적 열기의 기초는 1970년대로부터 시작된 불황(malaise)으로 인해 준비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진행된 가공자본(‘생산자본’에 대해 상대적인 의미로)의 눈에 띄는 증가는 우연이 아니었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 변화의 결과로 인한 이윤율 하락에 초점을 맞추어야 장기적인 ‘경제 금융화’에 대해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맑스의 <자본론>에서 몇 가지 지적을 살펴보도록 하자. 맑스는 그 당대에 형성되던 (‘주식회사’ 형태의) 법인 자본주의가 “한편으로 기업후원자라는 미명 아래 기생하는 금융 귀족과 투기꾼 그리고 단순히 명목상의 관리자 집단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주식을 발행하고 거래하기 위해 사기치고 위조하는 총체적인 시스템을 낳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자본론>, 제3권). 다른 곳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화폐자본의 소유자에게) 생산과정은 단순히 돈을 수중에 넣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며 필요악으로 인식된다. 그리하여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생산과정의 매개 없이 돈을 벌기위한 광적인 시도가 주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다(<자본론>, 제2권, 강조는 인용자).”

그 같은 “광적인”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그것을 위한 전제조건들이 어떻게 발전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다음엔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모순들이 어떻게 표현되고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어떤 형태로 전개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지금의 금융위기는 1950년대와 1970년대 사이에 하락한 평균 이윤율을 되돌리고 하락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 등 자본가 계급의 수십 년 동안의 대응 결과이다. 그것은 생산자본(종종 ‘실물 경제’라고 일컬어지는)이 지속적으로 직면하는 이윤 문제에 대해 자본가계급의 대응이 누적된 복합적 결과이다.

실제로 지금의 사태는 1970년대의 이윤 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데에 모든 급진적인 정치경제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선진국가들 전반에 명시적으로 나타나는 이윤율의 하락과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과 결합된 높은 인플레이션) 위기에 대응하여 자본가계급은 1940년대 말과 1950년대에 체결된 ‘자본-노동 협정’을 폐기했다. 전쟁 직후 높은 이윤율로 인해 실행가능해지고 냉전이라는 정치-이념적 존재(특히 서구 노동운동 내에서 강력한 좌익세력의 등장을 차단하기 위한 필요성)로 인해 촉진된 이 ‘계급 타협’은 20년 동안 실질 임금의 상승, 낮은 실업률 그리고 확장된 사회복지를 낳았다. 1970년대에 도래한 이윤 위기로 인해, 자본가계급은 그 중 많은 것들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970년대에 계급투쟁을 고조시켰던 인플레이션은 케인즈 이후 통화주의 정권 아래 고이자율 정책과/또는 임금 통제를 통해 저지되었다. 1980년대의 불경기와 사회복지의 삭감은 실업예비군을 늘렸고 그것은 실질임금의 성장을 억제하였다. 무역자유화와 ‘생산축소’로의 전환 그리고 ‘노동시장 유연화’는 국가에 기반을 둔 노동운동을 더욱 약화시켰다.

종합적으로, 이러한 조치들(보통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은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이윤율 하락으로 인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전후 초기 자본이 누렸던 높은 수준의 이윤율을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평균 이윤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서 안정화되었다. 보다 혹독한 반(反)노동 정책들은 아마도 이윤을 조금 더 올릴 수 있었겠지만 그러한 정책들은 정치 이념적인 위험을 불러왔을 것이다. 특히, 약화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무서운 적인 소련을 상대하고 있던 1980년대에는.

이것이 바로 미국 금융부문의 이윤율이 제조업부문에 대해 꽤 오랜 기간 상대적으로 우세했던 배경이다. 1980년대 초, 금융부문은 단지 총이윤의 10% 남짓을 담당했지만 2007년 무렵에는 40%로 상승했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금융자산 대 GDP의 비율은 약 4대 1 정도였지만, 2007년 무렵엔 약 10대 1이 되었다. 1980년, 세계 금융자산(은행 예금, 유가증권 그리고 주식)은 세계 총생산의 119%를 차지했지만, 2007년엔 356%로 그 수치가 상승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기 노동에 대한 자본의 공격에 이어, 막대한 신용의 확대(1991-2년과 2001-2년에 나타난 것처럼)를 통해 과잉생산의 위기는 회피되거나 완화되었다. 실질임금은 정체하거나 하락하는 가운데, 미국 노동자들에겐 빚을 끊임없이 늘리는 것을 통해 ‘유효수요’를 유지하도록 장려되었다. 1988년과 2007년 사이 신용카드 부채는 GDP의 168%에서 350%로 증가되었다. 한편 미국 납세자 하위 90%의 평균 실질임금은 1973년과 2000년 사이에 7% 이상 감소했다. 경제수요를 추동한 로널드 레이건의 1980년대에 걸친 대규모 군사비 지출 증가는 미국 부채를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증가시켰다. 1990년대를 통해 미국의 국가 채무는 조지 W 부시에 이르러 폭발하기 전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지금 그것은 14조 달러의 GDP를 산출하는 경제에서 11조 달러 가량이 된다.


표2: 1945-2008년까지 미국 부채의 증가(2007년 달라 가치 기준)

1945

1950

1990

2000

2008

3조 달러

 2조 달러

5조 달러

7조 달러

11조 달러


지난 30년 동안에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소위 ‘실물 경제’ 내에서 작동하는, 맑스에 따르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원천이고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용어로 표현되는 그 모든 ‘실제적 재화’의 유일한 원천인, 생산자본이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반드시 잉여가치가 생산되어야 금융이나 상업자본이 그 내에서 일정한 몫을 뜯어낼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지배엘리트들은 재화를 그들에게 유리하게 재분배하는 데에도 그리고 임금노동의 착취율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 경제의 성장률은 떨어지고 있고, 장기 불황의 징후는 대단히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표3과 표4를 볼 것).


표3: 1950년~93년까지 G7국가들의 경기 침체 지표

사기업 지표들

1950-1973

1973-1993

매년 평균 생산성장률

4.5%

2.2%

매년 평균 노동생산성 성장

3.6%

1.3%

평균 실업률

3.1%

6.2%

Source: Robert Brenner, “The Economics of Global Turbulence,” New Left Review , No. 229, 1998, p. 5


표4: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평균 성장률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4.9%

3.9%

2.9%

2.7%

Source: World Bank


자본주의 체제의 옹호자들은 내가 묘사한 우울한 그림에 대해 잘 대답하지 못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좌익 비평가들 그리고 심지어 많은 주류경제학자들까지 1970년대의 이윤 위기가 앞으로 이어질 경제 동향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사실이라고 지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맑스의 이론이 그 근원에 대한 만족할 만한 설명을 제공하는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의 최근 이론이 “자본주의 생산의 진정한 한계는 자본 그 자체이라.”라는 맑스의 주장을 확인시키고 있는가?

 

맑스의 이윤율 경향적 하락 법칙

여러 해 동안 급진적인 정치경제학자들이 선호했던 설명은 “임금 압력으로 인한 이윤 축소”나 “노동 부문의 힘이 상승”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도 공유하는 이 같은 접근은, 실질임금이 생산성의 성장률보다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에 이윤이 차지하는 몫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설명이 갖는 일말의 진실은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기간 동안 총임금에서 상품생산에 직접 종사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임금 몫이 늘어났고, 그래서 국가 경제 내에서 ‘총임금’ 비율이 이윤이 차지하는 몫에 비해 늘어났다는 것이다. 광업이나 건설업에서 노동절약형 기술의 도입으로 생산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은 국가나 준(準)국가 비영리 기관(시민 봉사, 교육 등)의 종사자나 상업이나 금융업에서 새 일거리를 찾았다. 이 노동자들이 행하는 노동은 자본의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이지만, 잉여가치를 담보하는 상품의 직접적인 생산은 아니었다. 그리고 맑스의 표현에 따르면 “비생산적 노동”을 구성한다. 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비생산적 노동’의 성장은 선진국 내에서 전후 이윤율 하락의 보조적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첫 번째 요인은 되지 못한다.

전후 생산노동자의 실질임금 성장이 1970년대의 이윤위기에 이르기까지 생산성의 성장을 앞지르지 않았다는, 특히 미국 경제에서, 분명한 증거가 있다. 설득력 있는 맑스주의 경제학자 안와르 샤이크의 경험적 연구는 미국 경제의 평균 이윤율 하락은 맑스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생산에서 살아있는 노동에 대한 ‘죽은’ 노동의 비율)이라고 불렀던 것의 증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독립적으로 수행한 프레드 모슬리의 연구는 평균 이윤율 하락에 생산노동에 대한 비생산 노동의 비율 증가가 미친 영향을 강조하면서 샤이크의 발견을 칭찬했다.

십년 전 나는 1947년에서 1991년 사이 캐나다 경제의 진화와 관련해서 맑스의 이윤율 하락 법칙을 확인했다. K. W. 테일러와 같이 작업한 이 분석은 <정치경제학연구: Studies in Political Economy (1996년 봄, 49호)에 처음 발표되었고 나중에 “가치법칙의 필요성”이라는 논문으로 요약되어 <사적 유물론 (1999년 4호)>에 실렸다. 그 연구의 첫 번째 주요 발견은, 1947년에서 1975년 사이 투자자본의 평균이윤율이 장기적 하강경향을 지닌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도표1을 볼 것).


도표1: 캐나다 1947~1991, 평균 이윤율(고정 불변 자본 가치에 대한 잉여가치 총액의 비율의 변화: 잉여가치/불변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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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구의 두 번째 발견은 이윤율이 내려갈 때 잉여가치율(즉, 생산노동자 착취 비율)은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었다(도표2를 볼 것).


도표2: 캐나다 1947~1991년, 잉여가치 비율(유동자본에 대한 총잉여가치 비율의 변화: 잉여가치/유동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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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살아있는 노동이 생산하는 새로운 가치에 대한 기계와 원자재와 그 밖의 물질적 자산에 투자된 자본 가치의 비율)은 같은 시기에 날카롭게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다(도표3을 볼 것).


도표3: 캐나다 1947~1991년, 자본의 유기적 구성(잉여가치 총액과 가변자본에 대한 불변자본 가치 비율: 불변자본/잉여가치+가변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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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 침체까지, 잉여가치비율은 극적으로 상승하고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하강하는 반면, 평균 이윤율 라인은 평평하게 된다. 이 분석은 1970년대의 경제위기(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자본과 국가가 이윤율 회복을 위해 취한 모든 조치들(즉, 임금 성장 억제, 노동운동의 역량 축소, 노동과정의 집중과 노동시간 연장을 통한 생산성 개선, 사회복지 정책 삭감 그리고 법인세 인하 등등)과도 일치한다.

1970년대의 캐나다 이윤 위기(미국도 마찬가지)는 경쟁을 위한 비용절감과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적대감으로 인해, 생산에서 살아있는 노동을 노동절약형 기계로 대체한 결과라는 것을 우리의 경험적 연구는 강력히 뒷받침한다. 자본축적의 장기적 움직임에 대한 맑스의 전망은 20세기 중반의 캐나다 경제의 실제 움직임과 거의 일치한다.

이 간략한 조사로 도출되는 총괄적 결론은 맑스의 이윤율 하락 경향 법칙은 20세기 중후반의 캐나다, 미국과 세계 경제 집단들에서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현상들을 대단히 잘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이것을 잘 기억하면서, 지금의 경제공황이 폭발한 미국 경제로 돌아가 보자. 도표4는 1948년에서 2007년까지 미국 ‘법인의 이윤율’ 변화를 보여준다.


도표4: 미국 경제, 1948~2007, 법인 이윤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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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표에서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1991-2년에서 2006-7년 사이 이윤율이 전체적으로 상승하는 움직임이다. 명백하게, 이윤율은 1948년과 1968년 사이 누렸던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지만 196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경기 침체를 극복할 희망을 조금 보여주었다. 그것은 주로 1990년대 말과 2001년 경기 후퇴 이후 금융 부문에서 평균 이상의 회복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경기 후퇴 이후 미국 경제와 관련하여 언급되어야 할 것은 ‘주택 거품’이 성장을 주도하는 동안 생산업은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2002년과 2007년 사이 미국 GDP 성장의 대략 절반 정도는 주택산업이 이끈 것이었다(주택 건설과 재건축, 빠르게 성장하는 부동산 시장과 결부된 금융 활동). 그 결과는 주택 부문의 과잉생산이었다. ‘과대평가’된 주택의 과잉공급은 충분한 ‘유효’ 수요를 이끌어낼 수 없었다. 뒤이은 대출 변제 불능에 따른 담보물 강제 매각 물결은 주택가격의 급격한 하락을 촉진했고 지금의 금융 위기를 낳았다. 최근 몇 년 간 비교적 높은 이윤을 지탱했던 거품의 붕괴는 의심의 여지없이 이윤의 장기적 상승 국면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까지 자본주의 정부들의 위기에 대한 대응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a) 연방정부가 미국 은행들이 가지고 있던 불량 금융 ‘자산’을 매수한다는 계획. 불량 자산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만이 아니라 승인된 수조 달러의 구제금융 자금보다 불량자산이 더 많다는 측면에서도 이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b) 효과적으로 국유화하고, 빌린 돈을 이용하여 부분적으로 심각하게 타격을 받은 유럽과 미국 금융기관의 자본 재구성. 일시적으로 은행 체계를 안정시킬 수 있지만 불량자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c) 국가 지출 확대를 통해 고용과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G-20 국가들 집단적 협력 약속

그러한 계획들을 실행할 자금을 어디에서 끌어올 것인가 하는 것은 미지수로 남아있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현금자산이 부족하다. 장부에 명목상 가지고 있는 그들 자산 중 많은 부분은 회수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규모의 현금자산을 지니고 있는 선진국 정부들은 거의 없다. 중국과 일본은 대규모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내 문제를 위해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아랍 산유국들은 여전히 현금이 풍부하지만 그 돈으로 폭락한 회사들을 구입하는 데에 쓰기보다 저리로 빌려주는 것을 택할지는 의문이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최대한으로 발급한 소비자 신용카드의 불량률이 상승하고 있다. 금융 체제는 회복되지 않았고, 문제는 다만 다른(보다 소수의) 손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설령 중앙은행들이 금융체계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법(예를 들어, 돈을 마구 찍어내는 방식 등으로)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지금 논의되고 있는 비교적 소규모의 계획들로 세계 경제에 시동이 다시 걸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소비는 주로 미래의 요구를 빌어다 쓴 것이었다. 영국과 북미의 소비자들은 빚에 짓눌려 있고, 그것들을 가능케 했던 신용체계는 수조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미 시작된 해고와 파산의 쓰나미는 G20 국가들을 심각한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것이다. 세금수입의 감소와 수라장이 되어 있는 신용체계는 정부들이 지금 수준의 지출을 지탱하기 어렵게 할 것이다. 바락 오바마가 제2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되기를 기도하는 개량주의 몽상가들이 제안하는 ‘공공사업’들은 훨씬 적게 개시될 것이다.

간략히 말해, 미국과 그 밖의 선진자본주의국가 경제는 이윤율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위기의 깊이와 대규모의 정부 부채는 ‘케인즈주의 해법’들을 대단히 어렵게 만든다. 가장 최근의 이 정도 규모의 이윤체계의 위기는 오직 대규모의 자산 폭락(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통한 자본의 물리적 파괴의 결합을 통해서만 소위 ‘건강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자유주의자의 의견과 대조적으로, 1930년대 대공황에서 탈출하고 전후 자본축적의 조건을 창출해 낸 것은 연방정부의 ‘뉴딜’이 아니라 세계대전이라는 격변이었다.

이번 위기의 정치적 결과와 관련한 일반적 언급을 하면서 음산한 묘사를 마치기로 하자. 이번 위기는, 맑스의 이윤율 경향적 하락법칙의 올바름을 확인하면서, 자본주의가 기본적으로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일정한 지점을 지나면 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에게 장벽이 된다. 그리하여 다시 자본관계는 노동생산력 발전의 장벽이 된다.…사회의 생산성과 현존하는 생산관계 사이의 점증하는 양립 불가능성은 공황이나 경기 위축과 같은 격한 형태로 표현된다. 외부적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존재의 조건으로서의 자본의 폭력적 파괴는, 이제 자본의 시대가 지나갔고 더 높은 수준의 사회적 생산 체제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충고가 가장 극명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그룬드리세, 1857

그러나 맑스가 잘 알고 있었듯이, 자본은 사회관계의 하나이지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군다나 이 사회관계를 영속시키려하는 사람(특히 자본가 계급)들은 그 충고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적 생산의 ‘사회적’ 요구 사이의 점증하는 모순은, 불변의 역사법칙이 아니라 이 모순이 지배하는 체제의 비이성성에 대한 인간의 의식적 대응에 의해 그 결과가 결정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정치 강령’들의 경쟁과 사회계급들 사이의 투쟁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자본의 집행자들(자본의 혜택을 주로 받는 자들)은 “체제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끔찍한 희생이 따르건 말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 그들은 노동인민과 중간계층들이 자신들의 ‘정치 강령’을 지지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뇌물과 협박과 사기로, 한편으로는 개량주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또 한편으로는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증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족주의 같은 비이성적이고 후진적인 편견 등을 조장하는 방식을 통해. 그러나 “체제 구하기” 지지자들이 제시하는 그 독약(결국 핵전쟁 지옥으로 이끌 수도 있는 그 정치 강령)을 노동계급 다수가 삼킬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다.

만약 자본주의의 ‘한계’를 이해하는 충분한 수의 사람들이 진정한 사회주의 운동에 그 에너지를 투여한다면, 지금의 위기는 역사적 균형을 되찾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기회를 움켜쥐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약탈과 부도덕에 대해 비난을 가하는 것에 그치거나 사회주의에 대한 추상적 모습을 그리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객관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 질서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연대하는 생산자들’ 사이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사회를 재건하는 투쟁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는, 정치적으로 가장 선진적인 노동계급에 뿌리내린 혁명조직이다. 여성, 인종적 소수, 이주자 등 자본에 의한 모든 희생자들의 특수한 이해와 요구를 온전히 이해하는, 억압받는 ‘인민의 호민관’으로 조직될 때에만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운동을 건설해 낼 수 있다.

수많은 인류의 목숨을 앗아갈 재앙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고, 이 재앙은 노동운동에 새로운 계급투쟁 지도부를 건설해 내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러한 지도부는 노동자의 생산통제와 삶의 기본권을 지키고 해고를 막기 위해 임금과 노동시간 물가연동제를 내걸고 싸울 것이다. 이 요구들을 내건 투쟁은 권력 장악과 생산수단들과 통신 운송 그리고 은행과 기타 금융기관의 몰수를 위한 투쟁으로 대중들을 동원해낼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압제에 맞선 성공적 대중투쟁은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집산경제를 민주적으로 작동시키는 노동자평의회 정부의 건설로 그 정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소위 사회주의 좌익(여러 자칭 ‘맑스주의자’들을 포함하여) 다수의 현실적 활동은 한 번에 한 걸음씩 형태의 다양한 개량주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데 관여되어 있다. 종종 계급협조주의로 빠지는 점진주의는 한편으론 노동자와 피억압자의 혁명 역량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생겨나고, 한편으로는 보다 비인간적인 모습을 자본주의가 극복할 수도 있다는 개량주의의 오랜 환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른 좌익인사들은, 19세기 초기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처럼, 미래 사회의 성적(gender) 관계나 소비 구조나 환경보호 정책은 어떤 모습일 것인가를 논의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 맑스가 혁명적 정치 실천의 지침으로 부르주아 정치경제에 대해 그의 과학적 비판을 발전시킨 것은 바로 개량주의와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그의 정치적 투쟁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바야흐로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부활의 시간이 다가왔다. 노동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이해를 대담하게 주장하는, 계급투쟁과 사회주의 정치의 시대가 다가왔다. 나아가 인류는 계급 착취에 기초한 경제체제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음을 크고 명확한 목소리로 말해야하는 사회주의 시대가 다가왔다.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추상적 사회노동’으로 부를 측정하는 방법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 결과 인류로부터 과학적 이성의 혜택을 박탈하고 지금은 우리를 경제공황과 전쟁에 빠뜨리고 있는 그 경제체제 말이다.

바야흐로 “그만 됐어!”라고 외칠 위대한 인류의 시간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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