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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맑스주의, 페미니즘, 여성 해방




지닌 수십 년간 여성의 평등을 주창하는 수많은 국제회의들이 열렸으며 “(여성의 권리를 위한) 보편적 선언문들”이 발표되어왔다. 그러나 전세계 여성 대부분은 편견과 억압에 시달리고 있다. 남성의 우위가 강제되는 방식은 사회와 계급마다 각기 다르다. 그러나 모든 곳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그리고 여성은 이것을 인정하라고 교육받고 있다. 권력과 특권을 누리는 여성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도 남성과의 연줄을 통해서나 가능하다. 여성노동자 대부분은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이라는 이중의 멍에를 지고 있다. 유엔 통계에 의하면 여성은 전세계 노동의 3분의 2를 담당하고 있으며 세계 식량의 약 45%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전체 소득의 10%만을 벌고 있으며 재산은 1%만 소유하고 있다([여성에 대한 전쟁], 매럴린 프렌치 저, 1992년).

맑스주의 운동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성의 평등과 권리를 옹호해왔다. 그러나 인종 억압, 민족 억압 등과 똑같이 자본주의의 특별한 억압에 속하는 여성 억압도 이 억압들을 키우고 유지시키는 자본주의가 타도되지 않으면 근절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여성해방은 자본주의 타도와 분리될 수 없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결국 여성의 억압은 부르주아 계급의 물질적 이익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부록: <여성 억압 —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참조).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 맑스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은 종종 같은 편에 선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인간 사회는 사회 계급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으로 근본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이 페미니즘의 대전제이다. 따라서 페미니즘 선전가들은 여성의 평등을 사회주의 혁명 투쟁과 분리시킨다. 그리고 사회주의를 “가부장적” 지배체제의 한 형태로 본다.

지난 수십 년간 페미니즘 저술가들과 학자들은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남성 중심적 관행들의 다양성과 범위를 폭로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동화에서 텔레비전 광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서 여성의 굴종이 주입되고 규범화되고 강화되는 방식들을 묘사했다. 또한 성희롱, 강간, 가정 폭력 등 개인 생활의 영역에서 자행되는 성차별의 다양한 병적 증상들을 선두에 서서 폭로했다. 1960년대 후반 여성운동이 부흥하기 전까지 이 사안들은 자유주의 및 좌익 사회비평가들로부터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은 아프리카의 여성 성기 절단, 아시아에 만연한 여아 살해, 회교국가의 차도르 강제 착용 등에 반대하는 국제 캠페인을 적극 벌여왔다. 이들의 운동은 자본주의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을 인식시키는 데 유용했다. 그러나 남성 우위와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계급 지배의 관계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계급 갈등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맑스주의자들은 주장한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이해가 화해할 수 없이 서로 충돌한다는 사고를 배격한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 억압의 주체이며 현대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의 억압을 통해 물질적 정신적 “이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다만 성차별을 통해 대부분의 남성이 얻는 이익은 대수롭지 않을 뿐 아니라 공허하고 일시적이다. 그리고 이 이익에 대해 남성은 비싼 대가를 지불한다.

일자리에 대한 남성의 우선권과 여성 배제, 전통적으로 “여성”의 직종에 대한 사회의 형편없는 대접, 동일 노동에 대해 남성보다 낮은 여성 임금의 수준 등은 남성에게 더 후한 보수와 고용 안정 등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들은 평균임금 수준을 낮추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 현상을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연방정부 여성국장이었던 프리다 밀러가 이렇게 설명했다:

“평균 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고용될 경우 기존의 노동자들은 일자리에서 밀려나거나 이 낮아진 임금을 감수해야한다. 이것이 임금 이론의 기본원리이다. 시간이 지나면 낮은 임금의 압력이 전체적으로 퍼져 임금 수준을 하락시킨다. 이 상황이 노동자들의 직접 투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모든 노동자들이 더 낮은 소득과 더 낮은 구매력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전쟁으로 인해 새로운 기술을 익힌 여성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지금 악랄한 고용주에 의해 임금 삭감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 여성국 회보 제 224호, 1948년 (1959년 출판된 [전환기의 미국 노동]의 저자 낸시 리브즈가 이 저서의 “직장 여성” 장에서 인용)

임금의 동일한 기본원리가 이주 노동자, 소수민족 노동자 그리고 기타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차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종주의, 민족주의, 동성애자 혐오증 등 여타 후진적인 사고방식과 같이 남성 중심 의식도 임금 수준을 낮추고 동시에 계급 지배의 방식들을 은폐시킨다. 그리고 사회 밑바닥 인생들이 서로 경쟁하도록 부추긴다. 이 결과 근본적으로 억압적이며 서열구조식 사회체제를 지키는 버팀대가 된다.

맑스주의는 자본주의에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모든 인민을 단결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에 반해 페미니즘은 계급을 초월하여 모든 “자매”들을 단결시키는 반동적 유토피아 전략을 구사한다. 여성 억압은 빈민 여성과 노동계급 여성 할 것 없이 모든 여성에게 가해진다. 그러나 억압의 정도와 결과는 계급에 따라 질적으로 다르다. 지배계급 여성들은 특권과 물질적 혜택을 누리기 때문에 지금의 사회질서를 옹호할 강력한 이유가 있다. 이들의 안락한 삶은 제 3세계의 기아임금에 허덕이는 “자매들”의 초과 착취 때문에 가능하다. 계급을 초월하여 여성의 단결을 추구하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빈민 여성, 흑인 여성, 노동계급 여성의 이익을 부르주아 “자매들”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 2 세대 페미니즘의 기원

지금 페미니스트들은 스스로를 “제 2 세대”라고 부른다. “제 1 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제 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 전까지 남성과 똑같은 교육권, 재산권, 투표권 등을 요구했다. “제 2 세대” 페미니즘은 베티 프리든 (Betty Friedan)의 1963년 베스트 셀러 [여성의 신비](Feminine Mystique)의 출판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저서는 “여성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여성의 처참한 실생활과 대비시키고 있다. 1966년 프리든은 전미여성단체(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NOW)를 창립했다. 이 단체는 전문직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여성단체로 “지금 바로(now) 여성을 미국 사회의 주류로 참여시키는 임무”를 위해 활동했다. 지금도 이 단체는 미국에서 가장 큰 여성단체이다. 그러나 압력 단체 그리고 민주당의 방계조직에 불과하다.

그러나 좀더 급진적인 페미니즘이 1960년대 말 미국 “여성해방운동”에서 탄생했다. 신좌익(New Left) 여성운동의 유명한 지도자들은 거의 미국 남부의 인종분리 정책에 저항한 흑인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 초기 활동가 출신이었다. 이들은 1960년대 중반 남부로 내려가 “자유 여름 운동”에 참여한 수천 명의 이상주의 청년세대의 일부였다. 그리고 이 운동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잔인한 현실에 눈뜨면서 급진화 되었다.

한편 1960년대 말엽 신좌익 출신 여성 운동가들은 이렇게 비판했다: 자유 , 평등, 연대를 말로는 외치면서 남성 동지들은 “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여성 동지들을 주변화 시키고 있다. 급진적 소장 사회학 교수 말린 딕슨은 이 감정을 정확하게 표출했다:

“젊은 여성들은 남성에 대한 수동적 종속적 관계에 더욱 반발하였다. 또한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순전히 성적 대상으로 간주되어 섹스 시장의 상품으로 간주되는 현실에 반발했다. . . . 여성이 생물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편견을 표현하는 상투적인 말과 행위는 흑인의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는 이미지와 유사하다. 노예와 같이 여성도 종속적이며 이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아동처럼 단순하고 따뜻하며 어머니의 역할에서 희생을 감내하며 섹스 파트너로는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된다. 여성의 열등한 지위로 인해 남성은 좋은 경우에는 부성애를 발휘하지만 나쁜 경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인 가정 내 독재를 행사한다.”

“왜 여성해방인가?”, [성벽(城壁)] 1969년 12월

글로리아 스타이넘: 여성의 단결과 미중앙정보부(CIA)

여성해방운동의 초기에는 두 경향이 있었다. 하나는 여성 평등을 위한 투쟁을 모든 억압에 저항하는 광범위한 운동의 일부로 보았다. 또 하나는 여성의 단결을 강조하면서 여성운동이 다른 사회운동 세력과 조직적으로 정치적으로 “독자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했다.

“제 2 세대” 페미니즘의 초기 지도자들은 대개 흑인민권운동과 신좌익 운동에서 정치투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명예롭지 못한 과거를 가진 지도자들도 있었다. 미국 최대 페미니즘 잡지인 [미즈](Ms.)의 창립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1950년대에 미중앙정보부와 함께 일했다. 그녀는 “소련이 주도한 세계청년축제에서 미국청년들에게 돈을 대주는” 앞잡이 조직과 관련되었다. 우연히 이 행사에 참여했던 쉴러 토비아스는 이후 코넬 대학교에서 여성학 교수가 되었는데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중앙정보부는 행사에 참여하는 미국인들 가운데 누가 트로츠키주의자이며 누가 공산주의자인지를 파악하는 데 골몰했다. 결국 아무도 모르는 우리는 정보부의 끄나풀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마샤 코언, [1988년의 여성 단결]

스타이넘의 이력이 마침내 세인의 관심을 끌자 그녀는 오리발을 내밀기로 작정했다:

“1950년대 후반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공동창립자였던 단체가 중앙정보부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그녀는 이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이 단체가 중앙정보부의 앞잡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또한 헬싱키 청년축제가 `중앙정부부의 정보수집 작업에 대단히 유용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앞의 책

좀더 전투적인 페미니즘 조직들, 예를 들어, 보스턴의 “빨간 스타킹” 등만이 스타이넘의 중앙정보부 협력 활동을 비난했다. 이 보스턴 조직의 지도자 로재너 던바는 흑인민권운동의 노장 지도자였다. 그러나 소위 주류 페미니스트들 대부분은 제국주의 반혁명의 주요 기구인 중앙정보부와 스타이넘의 관련설을 무시하거나 논외의 사항으로 치부했다. 이 해프닝은 “여성 단결” 노선의 성격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급진 페미니즘과 생물 결정론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역시 흑인민권운동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70년에 출판된 자신의 저서 [성의 변증법]에서 그녀는 급진 페미니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 그녀의 주장에 의하면 여성 억압의 기원은 사회-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적이다. 인류가 “뚜렷이 구별되는 두 생물적 계급”으로 성 구분된 것이 모든 사회분열의 기원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맑스의 분석을 모방하여 그녀는 이렇게 주장했다:

“사회의 성적-생식적 조직이 언제나 사회의 진정한 기초이다. 이 기초 하에서만 어느 역사 시대의 경제적 사법적 정치적 제도와 종교, 철학 그리고 기타 사상 등 상부구조 전체가 궁극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여성 억압의 뿌리가 인체구조에 있다면 해결책은 과학 기술에 있다고 그녀는 주장했다. 피임을 좀더 강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자궁 외 임신이 가능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 “유물론적” 분석이라고 했다. 물론 이 분석은 유물론의 일종이기는 했지만 대단히 조야한 생물적 분석이었다. 그녀는 여성의 억압이 결국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이 전망은 유토피아적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비(非) 정치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저서는 계속 영향력이 있었다. 아마 그녀가 생물적 요인으로 논리적 결론을 이끈 급진 페미니스트 선구자의 일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970년에 발표된 “빨간 스타킹 선언서”는 파이어스톤의 결론을 승인하지는 않았지만 여성이 계급이라는 그녀의 주장에 동의했다:

“여성은 억압받는 계급이다… 우리를 억압하는 주체는 남성임을 인정한다. 남성 우월 주의는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기본적인 지배 형태이다. 인종주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 다른 모든 착취와 억압의 형태들은 남성 우월 주의의 연장에 불과하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며 몇 몇 남성이 나머지 전부를 지배한다. 역사상 모든 권력 구조는 남성 중심적이었다. 남성은 모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제도들을 장악하면서 폭력으로 이 체제를 유지해왔다. 남성은 자신의 권력으로 여성을 열등한 지위에 묶어놓았다. 모든 남성들은 남성 우월 주의로부터 경제적, 성적, 심리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 모든 남성들은 여성을 억압해왔다…. 우리는 무엇이 `혁명적’이며 무엇이 `개량주의적’인지를 묻지 않는다. 오직 무엇이 여성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물을 뿐이다.”

“빨간 스타킹 선언서”, [여성의 단결은 강력하다], 1970년에서 인용

급진 페미니즘의 주장은 반동적 사회-생물론자들 대부분과 유사하다. 이들은 사회적 불평등이 “우리의 유전자 속에” 있으며 이것에 저항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고 주장한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독립할 것을 종종 주장한다. 심지어는 한술 더 떠서 “적”과 계속 동침하는 여성은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한다. [레즈비언의 나라: 페미니즘의 해결책](1973년) 의 저자 질 존슨은 이렇게 주장했다:

“여성 혼자 성적 만족을 느끼는 것은 페미니즘 혁명의 필수 조건이다…. 모든 여성이 레즈비언이 되어야 진정한 정치혁명이 성취된다.”

사회주의와 성차별

1970년의 에세이 “주요한 적”에서 크리스틴 델피는 “맑스주의 원리에 기초한 급진 페미니즘”을 제시했다. 이 글에서 그녀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남성이 여성의 가장 주요한 적이라고 주장했다. 1984년의 저서 [가정 가까이]에 실린 이 에세이의 결론은 이렇다: 독자적인 여성 혁명이 없이는 탈자본주의 노동자국가 내에서도 남성은 여성에게 가사 대부분을 강제하고 이를 통해 물질적 이익을 도모한다.

여성 억압이 사회주의에서도 계속된다고 신좌익 급진주의자들은 확실히 주장하는 듯했다. 이들은 쿠바, 월맹, 북한, 알바니아 등 경제적으로 후진적이며 일국적으로 고립된 기형화된 노동자국가들을 온전한 사회주의로 인식했다. 자본주의가 타도된 모든 나라에서 여성의 삶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명목적으로나마 성차별은 폐지되었다. 여성들에게도 일자리가 보장되었다. 탁아시설, 학교, 병원, 주택 등은 무료로 제공되었다. 이것들은 자본주의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구소련과 동구에서 자본주의 반혁명이 일어나 이 모든 혜택이 없어지자 여성들이 다시 가정과 육아의 노예가 되고 생존을 위해 매춘에 나서고 있다. 이 현실은 집단적 소유의 우월성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스탈린주의 경찰국가체제에서 남성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기생적 관료집단이 여성의 출산, 육아, 가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적극 선전하고 “가정의 혁명 요새화”를 강변한 것도 사실이었다. 레온 트로츠키는 [배반당한 혁명]에서 스탈린주의 관료기구를 사회주의 건설의 장애물로 간주했다. 그리고 이 지배집단이 여성에게 “사회주의” 가정을 지킬 것을 선전하면서 “부르주아 법을 고수하면서 자신의 사회적 이익을 옹호하는 현상”을 비판했다.

페미니즘은 스탈린주의 체제와 많은 측면에서 성격이 다른 진정한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여성의 지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 견해는 여성 억압의 역사적 유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또한 물질적 궁핍을 해소한 사회주의 체제가 사회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고 인간관계의 모든 측면들을 획기적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생산력의 혁명적 몰수와 세계적 차원의 계획경제 건설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조건 즉 식량, 주택, 직장, 의료, 교육 등을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할 것이다.

단지 몇 세대만에 생산의 사회화는 현재 극소수 특권층만이 누리는 삶의 질과 경제적 자립을 모든 인민에게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이들에게 그림에 떡에 불과하지만 사회주의에서 보장될 휴양시설, 여름 캠프, 스포츠 및 교육문화 시설 그리고 다른 혜택들은 인구 대다수의 삶을 엄청나게 개선시킬 것이다. 사적 이윤 추구만을 중심에 놓는 시장 원리를 극복한 사회에서 인민은 삶과 관련된 모든 선택들을 다양하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재 여성이 전담하고 있는 가사노동은 사회 전체적으로 제공되는 우수한 질의 육아시설, 식당, 세탁시설 등으로 크게 줄어들 것이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경쟁, 근심, 생활의 불안정 등이 먼 과거의 기억으로 사라지면 인간의 사회적 행위도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개인적 삶을 누릴 물질적 조건은 이윤 극대화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에서는 제공될 수 없다. 그러나 계획경제 체제에서는 이 물질적 조건은 합리적인 선택의 문제에 불과할 것이다. 국가가 지원하는 예방접종 프로그램과 하수시설이 사회 성원 모두의 혜택이 되듯이 각 개인의 안전하고 보장된 생산적 삶의 확보는 반사회적 행위, 정신병, 질병 등의 원인들을 제거하여 모든 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킬 것이다.

이미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특권층 내에서도 남성이 여전히 여성을 억압한다고 페미니스트들은 주장할지 모른다. 이 주장이 옳다면 사회주의는 여성 억압을 철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특정 사회계급의 물질적 이익을 반영하는 이데올로기는 어느 정도 상대적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노동력의 대가도 받지 못하면서 육아와 가사에 시달리는 여성의 일반적 상태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자본주의는 여성을 차별하는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을 옹호한다. 따라서 지배 계급 여성 뿐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성차별을 겪는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관행은 이것들을 발생시킨 조건들이 전복되더라도 자동적으로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의 산물인 후진성과 무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투쟁이 전개되어야한다. 계급 사회는 사회 구석구석에서 남성 우월 주의와 인종차별 등을 강화시키고 촉진시킨다. 그러나 모두가 안락하고 보장된 삶을 누리는 평등 사회는 차별적 편견들을 근절시킬 가능성을 결국 현실로 만들 것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가망 없는 절충주의

파이어스톤, 빨간 스타킹 그룹, 델피 등은 1970년대 초반 여성해방운동의 한 축을 대표하고 있었다. 이 경향의 정반대에서 최상의 투사 수백 명은 맑스주의-레닌주의를 자칭하는 다양한 그룹들에 합류했다. 그런데 이 양극단의 중간에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자칭하는 부류들이 있었다. 이 경향은 1970년대 내내 특히 영국에서 영향력이 있었는데 결국에는 가망 없는 절충주의에 불과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급진 페미니즘의 생물 결정론을 거부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분리시켜 바라보면서 이 두 억압체제를 모두 여성의 적으로 간주하는 “이중 구조”를 고안해냈다. 이 바람직한 분석 틀을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 다수는 올바른 것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별개로 존재하면서 서로 배치되는 이 두 억압체제의 상호 작용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했다. 또한 인종차별, “노인 차별” 그리고 기타 사회적 억압들을 자본주의/가부장제의 “이중 구조” 모델에 통합시키는 것도 곤란했다.

그리고 “가부장제”의 정확한 규정과 역사적 유래에 대해서도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남성의 폭력성, 시기심, 자궁에 대한 부러움, 여성의 생식기능을 남성이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언어, 심리적-성적 구조의 차이, 물질적 특권 등 가부장제를 발생시킨 원인들은 수없이 나열되었다. 그리고 가부장제의 기능과 발생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위에서 언급된 요인들에 결합되었다. 그리고 이것도 모자라 또 다른 원인들이 제시되고 통합되었다.

미약하나마 존재했던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정치투쟁은 급진 페미니즘보다 노동계급의 이해에 더 근접했다. 그러나 이것을 제외하면 양자는 매우 유사했다. 전통적으로 맑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여성조직의 건설을 지지해왔다. 모든 부문운동의 가장 헌신적이고 의식 높은 투사들로 구성된 혁명정당을 통해 여성운동은 노동계급 및 여타 대중운동과 연대해야한다. 이 운동은 개량주의, 자본가 계급, 노동조합 관료집단 등으로부터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조직적 정치적으로 공산주의 전위와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급진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주장한다: 남성을 포괄하는 모든 조직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자적 여성운동만이 진지한 여성해방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직 노선도 현실에 적용되자 문제를 드러냈다.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대해 투쟁하려는 다수 대중의 지지가 있어야 자본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투쟁할 수 있다. 단순히 성이 다르다고 해서 인구의 절반인 남성을 애초부터 배제하는 것은 패배를 보장하는 노선이다. 더욱이 주로 성별에 기초해서 적과 아군을 구별한다면 우익운동에 가담한 여성 또는 파업대체인력 여성이나 경찰 여성들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지배계급의 여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페미니즘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할 자연스러운 동맹세력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처럼 더럽게 행동하는 여성은 진짜 여성이 아니라고 단순히 선언하면서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좀더 과학적 세계관을 추구하려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이미 붕괴한 지 10년이 넘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생각이 깊은 주창자 가운데 리즈 보걸이 있다. 그녀는 1981년에 출판된 자신의 시론인 “맑스주의와 페미니즘: 불행한 결혼, 별거 시도, 아니면 무엇인가?”를 다시 출판했다. 1981년의 시론에서 보걸은 노동계급의 적인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에 대한 입장을 이리저리 탐구하였다. 그러나 1995년에 나온 이 시론은 이 문제에 대해 확고히 입장을 정리했다:

“좌익의 일부 의견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성공적으로 조직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회 모든 계층의 여성을 참여시키는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독자적 여성조직은 여성들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필요하다. 사회주의 이론과 실천의 전통은 너무 많은 부분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충돌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각계 각층의 여성들을 조직하여 독자적 여성운동을 발전시킬 틀을 개발하는 것을 자신의 핵심적 임무라고 생각한다.”

리즈 보걸, [여성 문제: 유물론적 페미니즘의 시론집], 1995년

보걸은 이보다 30년 전에 미국 남부로 내려가 흑인민권운동을 했던 급진파 여성이었다. 이제 그녀는 근본적으로 서로 적대적인 “페미니즘”과 “사회주의”를 결합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맑스주의자들은 모든 여성들을 “단결”시키겠다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계급협조주의 노선이라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급진 페미니즘은 이 운동을 “남성에 동화된 정치협잡꾼” 운동이라고 공격했다. 미국 급진 페미니즘의 저명한 이론가이자 안드레아 드워킨의 협력자인 캐서린 맥키넌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근본 모순을 이렇게 지적했다:

“맑스주의와 페미니즘을 결합시키려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두 이론의 독자적 성격과 상호 적대적 깊이를 모두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페미니즘 국가 이론을 위해], 1989년

사회주의 페미니즘 정치운동은 이미 소멸했다. 전제 자체가 일관되지 못하여 진지한 투쟁을 수행할 강령이나 조직을 수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급을 초월한 여성의 단결(페미니즘) 을 추구하는 세력과 성을 초월한 노동계급의 단결(맑스주의) 을 추구하는 세력 사이에 끼어들 공간이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노동자들이 사회보장 프로그램 삭감의 폐해를 일차적으로 겪고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도모하는 정부는 그 정치적 색깔이 어떠하든 국가가 더 이상 아동, 노인, 병자 등을 돌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비용은 “가정” 즉 주로 여성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사회보장 프로그램 삭감에 자연스럽게 대항할 세력은 누구인가?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들은 정부의 긴축정책과 이 결과 발생하는 부의 불공정한 분배를 일반적으로 지지한다.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사회적 필요를 위한 공공기금의 지출로 사적 자본의 축적이 방해받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사회보장 프로그램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노동계급 남성들은 탁아 보조비, 노인 연금, 의료 보험 등의 삭감에 맞선 투쟁에서 여성들과 함께 싸울 수 있는 자연스러운 동맹 세력이다.

현재 좌익 학계에서 유물론으로 남성 우월 주의를 분석하는 일은 이미 유행이 아니다. 맑스주의는 이미 한물간 것으로 치부되고 있으며 대신 자크 데리다, 줄리아 크리스티바, 루쓰 이리가래이, 미셸 푸코, 장 보드리야르 등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고 있다. 때때로 정치 좌익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설파한 반동적 역사비관주의로의 회귀현상이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니체를 “반(反) 계몽주의 연금술사”로 규정한 바 있다. 계몽주의와 맑스주의의 핵심은 인간 사회가 인간의 이성에 기초하여 개조될 수 있다는 사상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는 이것을 파산한 “인본주의” 사상이라고 거부한다! 따라서 포스트주의는 정치투쟁을 포기한 보수적 좌익의 새 경향을 이론의 이름으로 치장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한때 영국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미셸 배릿은 이 “담론으로의 추락”을 대표하고 있다. 1980년에 나온 자신의 저서 [오늘날 여성 억압의 실태]의 1988년 신판 서문에서 그녀는 이렇게 주장했다:

“`사회주의’와 `페미니즘’ 같은 거창한 정치운동을 명확히 거부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제이다…. 벌써 포스트모더니즘은 미래 페미니즘 이론가들의 중심 축이 되었다. 내가 지금 이 책을 다시 쓰게 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야말로 나의 주장을 풀어나가는 서두가 될 것이 틀림없다.”

‘문화 페미니즘’과 정치투쟁의 폐기

제국주의 국가들의 페미니스트 대부분은 주류 사회의 성차별에 대해 연극, 음악, “여성의 역사(herstory)”, 문학 등 대항 여성문화를 구축하여 탈출을 시도했다. 1970년대 후반 “문화 페미니즘”이 하나의 경향으로 성장했다. 배려, 공유 , 정서적 온기 등 소위 여성적 가치를 탐욕, 폭력, 이기심, 정욕 등 소위 “남성적” 가치와 대비시키는 작가들이 인기를 누렸는데 바로 이 새 경향의 반영이었다. 1960년대 여성해방운동은 여성의 억압 상을 처음으로 개인의 영역에서 공개 영역으로 끌어내었다. 그러나 1990년대의 문화 페미니즘 여전사들은 “여신 “이라는 개념을 유포시키면서 여성스러움이라는 기존의 사고를 다시 포장하여 이것을 “여성의 권력”으로 호도하고 있다 “여성의 역사” 산업은 이 정치적 퇴행의 대표적 예이다. 1970년 미국 여성운동의 어느 주요 기관지는 “역사상의 여성”을 주제로 특별호를 발간했다. 이 잡지의 커버스토리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의 역사를 남성들이 훔쳤다. 우리의 영웅들이 죽은 방식은 처참하다. 출산 중에 죽기도 하고 복막염에 걸려 죽기도 하고 과로로 죽기도 하고 억압을 당하면서 죽기도 하고 홧병으로 죽기도 했다. 우리의 천재들은 글을 몰라 자신의 역사를 쓸 수가 없었다.”

[여성: 해방 저널], 1970년 봄호

데일 스펜서와 같은 현대의 “여성 역사가들”은 이러한 주장을 거부하면서 남성 역사가들이 중요한 여성 예술가, 여성 작가, 여성 과학자 등을 역사에서 발굴했다고 주장한다:

“여성들이 역사의 기록에 잘 등장하지 않는 것은 여성 때문이 아니라 남성 때문이다. 여성이 역사의 발전에 기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남성들이 `기록을 왜곡’했다. 이것을 인정하면 (여성 억압의) 현실이 크게 변화된다.”

[여성 사상가들 그리고 남성이 이들에게 가한 악행], 1982년

인류 역사에 대한 여성들의 기여를 연구하고 널리 알리면 현재 여성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투사들의 사기가 진작될 수는 있다. 그러나 추악한 진실의 미화는 여성 억압을 영구화시키는 사회체제 타도의 시급성을 무디게 할뿐이다. 여성들은 가사노동이라는 “개인적” 영역으로 강등되는 것을 통해 역사 발전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몇 몇 예외를 제외하면 박탈당해왔다. 역사책에 여성이 배제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여성 억압의 엄청난 잔혹성과 규모를 시시한 것처럼 만들뿐이다.

문화 페미니스트들은 정치활동보다는 기권을 설교하고 있다. 여성의 정치운동이 남성의 정치영역에 어쩔 수 없이 포섭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여성의 평등권으로 위장된 생색내기 여성 평등은 진짜 생색에 불과하다. 이 결과 여성의 권력이 가로막힌다. 여성의 단결이라는 속임수 구호로 활기를 띤 여성 권력은 남성들의 집단적 권력에 집어삼켜진다. 부분적 성과라는 환상으로 인해 여성의 자아는 거세된다….생색내기 속임수는 여성의 단결을 슬그머니 파괴시킨다. 왜냐하면 아마존 여성전사들의 결속력이 가지고 있는 전투적 측면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이 결과 여성 억압에 대한 `반격’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과장시켜서 여성 단결의 초월성을 집어삼킨다. 그리고 이 초월성을 남성적인 동지애의 모조품으로 만들어버린다. 또한 아마존 여성전사들의 전투적 측면을 축소시켜 이것의 중요성을 극소화시킨다. 이 결과 여성 억압에 대한 투쟁은 막다른 골목에 갇힌다.”

메리 데일리, [여성/환경], 1978년

억압 그리고 이것에 대항할 투쟁의 필요성 자체가 극복되어야할 “남성” 사상으로 조롱 당한다:

“중요한 것은 사회를 구원하거나 사회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후진적인 방식이다. 존재의 샘(泉) 을 해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방해받지 않은 채 홀로 있으면 우리는 자유롭게 우주의 조화를 찾고 그것의 영롱한 소리를 듣는다.”

앞의 책

이 반동적인 헛소리는 수천 명의 소부르주아 베이비 붐 세대를 신좌익(New Left)에서 신시대(New Age)로 후퇴시킨 정치적 패배주의 및 허무주의의 페미니즘 선언문이다.

여성 권익의 신장이 정지 당하자 수동성과 정치적 기권주의를 찬양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진짜 고통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향을 찾으면서 구원을 약속한다. 여기에는 나름의 논리가 존재한다. 여성에 대한 억압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영구불변의 차이에서 온다면 무엇을 하든 실제적인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의식을 규정하는 제도와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킬 투쟁에 참여하는 대신 내적 세계로 개인적 정신여행을 떠나라고 신시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에게 조언한다. 정신적 성취의 길이 여성들과의 토론에서 열린다고 메리 데일리는 충고한다. 이 토론을 통해 언어가 여성에게 포섭되고 남성적 “의미들”은 전복된다:

“남성 지배의 굴레를 깨기 위해서는 언어의 빛나는 힘을 얻어야한다. 언어를 해방시키면서 자아를 해방시킬 수 있다.”

[순수 욕망], 1984년

문화 페미니스트들은 인류역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다시 사고하는 모험을 시작한다고 상상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르주아 지식인들에게 유행하고 있는 보수적 경향들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페미니즘의 새로운 변종들은 언어와 “담론 “에 대한 관념적 집착, 정치적 경제적 활동의 중요성 격하 등을 포함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 특징들을 다수 수용하고 있다.


‘여성의 노동

정치투쟁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페미니스트들도 1970년대 초기에 외쳤던 반(反) 자본주의 수사는 포기했다. 이들의 다수는 낙태 시술소, 강간 재활 쎈터, 여성의 집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봉사 활동은 이것을 이용할 수 있는 여성들에게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것을 제공하는 활동가들에게는 뭔가 “실제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준다. 그러나 이 활동은 여성 억압의 근원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개량적 반응일 뿐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숙련직, 전문직, 기업 경영 등 여성들에게 배제되어온 분야에서 여성 참여의 비율을 높이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활동은 일부 여성들에게 직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일부 편견들을 없애는 데 기여했으나 전통적으로 “여성” 직종에 고착되어있는 대다수 여성들의 조건은 전혀 개선시키지 못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많이 있었다. 1955년과 1991년 사이에 상근직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남성 임금의 64%에서 70%로 늘었다. 그러나 이 현상은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된 육체노동 직종의 축소로 인한 남성 임금의 하락에 크게 기인한다. 모든 직종에서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남성의 직업에 대한 여성의 무제한적 접근 등을 맑스주의자들은 옹호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과정에 끈질기게 존재하는 성차별과 편견이 여성의 진정한 평등을 막고있음도 인식하고 있다.

“남성” 직종과 “여성” 직종의 구분은 대부분 객관적 근거가 없다. 평균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힘이 더 있다는 것이 직무능력과 관련된 유일한 차이이다. 그러나 신체적 힘을 요하는 남성 직종은 저임금 직종이다. 기술 , 손재주, 정신적 조직적 능력이 훨씬 더 가치를 인정받는다. 기업 경영자, 의사, 항공 조종사들이 거의 다 남성인데 비서, 간호사, 비행기 승무원들이 거의 다 여성인 이유는 사회의 편견 때문일 뿐 능력 차이와는 무관하다. 1959년 에세이에서 낸시 리브즈는 “남성” 직종과 “여성” 직종 구분의 자의성에 대한 놀라운 예를 제시했다: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인부는 대부분 여성이었으며 옥수수를 다듬는 인부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그런데 극서부 지역에는 이 역할이 완전히 바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 우월적 관행은 너무도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며 상황에 따라 대단히 융통성 있게 발휘되고 있다. 전에 남성이 지배했던 직종에서 여성들이 자리를 잡으면 공개적 비공개적 형태의 장벽들이 곧 등장한다:

“1973년에는 미국의 법학 학위의 8%만이 여성들에게 수여되었다. 그런데 1990년이 되면 이 비율은 42%로 급증한다. 이 권위 있는 분야에 여성들의 진출이 상당히 진전된 셈이다. 그러나 법률상담원과 같은 비교적 낮은 보수의 직종에는 여성들이 너무 많은 반면 대형 법률회사의 보수가 가장 높은 직종에는 여성들이 거의 없다.”

조이스 제이콥슨, [성의 경제학], 1994년

기업에도 똑같은 현상이 관찰된다:

“여성 경영학 석사에 대한 콜럼비아 대학교와 스탠퍼드 대학교의 연구에 의하면 경영학 석사를 따고 직장에 들어간 여성과 남성의 초봉은 같지만 7년이 지나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봉급이 40%나 낮았다.”

앞의 책

도서관의 사서직은 그나마 남아있는 “여성” 전문직의 하나인데 이 직종에서도 주요 연구도서관의 고위 행정직 등 최상 직급은 거의 남성 차지이다. 제이콥슨은 이렇게 말한다:

“노동력 비중에 비례하여 여성이 진출한 직종이나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직종은 찾기 힘들다. 저임금 직종에 여성이 몰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별이 바뀌는 직업은 이 문제의 체제적 성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여성”직에서 “남성”직으로 바뀐 몇 안되는 직종 가운데 하나가 조산원이다. 1910년에는 여성 산파들이 미국 아기 절반의 출생을 도왔다. 그러나 1970년이 되자 이 비율은 1% 미만으로 떨어졌다. 병원에서 남성 의사의 도움으로 대부분 출산이 이루어지자 이 일에 대한 지위와 보수는 급격히 상승했다.

이와 반대로 일자리가 남성 중심에서 여성 중심으로 바뀌면 이 직종의 지위와 보수는 쇠퇴한다:

“제 2차 세계대전 전에는 은행창구 직원이 여성인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80년이 되자 이 직종의 90% 이상이 여성으로 채워졌다. 그러자 봉급 수준과 승진의 기회는 급격히 떨어졌다. 산업혁명이 서류 처리 인력을 증대시키자 사무직종은 지배적으로 남성의 일자리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이 압도하고 있다. 이제 이 분야는 보수가 형편없이 낮은 전형적인 여성 직종이 되었다.”

앞의 책

전통적으로 남성이 지배한 직종에 여성이 진출한 가장 뚜렷한 예는 마거릿 대처의 영국 수상 취임 사건(!)이었다. 남성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철의 여인”이 최고위직에 오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가 집권하는 동안 여성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빈민계층 그리고 노동계급은 유례가 없이 야비한 공격을 당했다. 대처의 성공은 다양한 남성 우월 의식을 침식시켰으며 몇 몇 야망이 큰 영국 소녀들에게 최고위직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불어넣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제시한 교훈은 자명하다: 사회억압의 기초는 자본주의 체제의 내적 논리이지 이 체제를 움직이는 인물의 성별이 아니다.


포르노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

지난 몇 년간 급진 페미니즘이 주도한 가장 정치적이며 가장 반동적인 운동은 포르노 불법화 운동이었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은 가정의 가치를 떠벌리는 얌전빼는 우익 분자들과 다르다고 종종 주장한다. 하지만 포르노를 반대하는 이들은 낙태를 형사 처벌하고 동성애자들을 탄압하고 학교에서 진화론과 성교육 강좌를 금지시키려고 애쓰는 편협한 자들과 기꺼이 동맹을 맺어왔다. 국가의 사법 검열을 옹호하면서 자신들이 “여성의 권익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포르노 금지운동의 가장 주요한 표적은 동성애자들이었다.

국가의 검열을 옹호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타고난 잔인한 성욕이 중심이 된 불변의 남성성이 여성 억압의 근원이다. 미국에서 국가 검열을 옹호하는 페미니즘의 화신인 안드레아 드워킨은 “섹스와 살인은 남성 의식 속에 결합되어 있으므로 살인의 가능성이 없는 섹스는 생각할 수도 없고 불가능하다.(“행동하기”, [밤을 되찾아라], 1980년)” 따라서 이 “남성 의식”의 표현인 포르노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검열을 옹호하는 페미니즘이 있듯이 “모성”을 지지하는 페미니즘이 있다. 이 경향은 새로운 생식 기술 (reproductive technologies)의 개발에 광적으로 반대한다. “생식 및 유전 기술에 반대하는 페미니즘 국제 네트워크”는 1984년에 창립되었는데 여성운동의 핵심 사안은 인공수정과 시험관 수정에 대한 반대라고 주장한다. 생식 기술의 발전이 여성해방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물 결정론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주장했다. 이에 반해 피해 망상적 페미니스트들은 이것이 새로운 종류의 여성 노예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핵전쟁 이후의 끔찍한 상황을 우리는 생각도 하기 싫어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임신도 산통도 없이 아이가 태어나고 , 여성들이 남아만 임신하고 여아는 낙태시켜 죽이는 미래는 생각하기도 싫다. 중국과 인도의 여성들은 이미 이 고통을 겪고 있다. 사회 집단으로서 여성의 미래가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는 모성의 죽음을 의미할지도 모르는 과학을 승인하기 전에 모든 가능성들을 철저히 고려해야한다.”

로빈 롤런드, [인공 여성], 1987년

“포르노 반대”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롤런드와 여타 “모성” 주창자들은 전통 우익 세력과의 동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들은 우익 여성과 같은 기이한 동침자들과도 동맹해야할지 모른다”(앞의 책). 롤런드의 “동침자”에는 자칭 인종주의자 이녹 파월도 포함되어 있다. 1985년 이녹 파월은 배아 연구를 금지시키고 시험관 수정을 철저히 규제하는 “미출생 아동 보호 법안”을 도입했다. 이 법안은 결국 통과되지 못했는 데 이 법안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에서 롤런드는 연설을 자청했다(마지 베러, “생식에 대한 음모와 새로운 생식 기술 “, —[난관과 투쟁] 1986년 여름호).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Backlash)

1970년대 이래로 페미니즘은 우경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스스로를 좌익으로 자처하면서 포르노 금지를 비롯한 다양한 우익 운동에 격렬히 반대해왔다. 1990년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의 하나는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 여성에 대한 포고되지 않은 전쟁](1991년) 이다. 이 저서는 지난 10년간 진행된 “가정 옹호” 반동운동을 기록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여성들이 지금 평등을 누리고 있다면 왜 이들은 특히 노년에 남성들에 비해 빈곤에 시달릴 가능성이 더 많은가? … 왜 아직도 영국과 미국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같은 일을 하는 남성보다 임금을 3분의 1 적게 받고 있는가?. . .여성들이 `자유롭다면’ 왜 출산에 대한 선택의 자유는 10년 전보다 더 악화되었는가? 임신을 연기하려는 여성들은 왜 10년 전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더 적은가?”

팔루디가 지적하고 있듯이 부르주아 언론은 이 문제들을 결코 제기하지 않는다. 그녀의 저서는 사회 평등을 감히 추구하려는 여성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여론 “이 제조되고 조작되는 방식을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개인적 성장”을 위해 정치활동을 거부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면서 집단적 투쟁을 옹호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저항하고 있는 반동적 정세의 기원을 설명하지도 못하며 이에 대항할 강령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대신 그녀는 여성해방운동이 이룬 성과가 현재 역전되고 있는 현상을 유감스럽지만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존재의 거대한 순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권리가 역전되는 현상은 전혀 새롭지 않다. 이것은 역사상 계속 반복되는 현상에 불과하다. 여성이 평등을 위해 전진을 하기 시작하면 이 현상이 나타난다. 페미니즘이 잠깐 개화하면 서리가 일찍 내려 이것을 역전시키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미국의 문학연구가 앤 더글러스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진보”와는 달리 여성 권리의 진보는 우리 문화에서 언제나 이상하게 역전되어왔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성들이 올렸던 성과들은 정치투쟁의 직접적 결과였다. 그러나 대중 정치투쟁의 결과 쟁취된 지배계급의 양보조치들은 역관계가 달라지면 역전될 수 있다. 인종주의, 여성 억압 등 사회적 억압에 대한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결코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없다. 왜냐하면 특권과 불평등의 유지는 사적 생산수단 소유체제의 불가피한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팔루디의 가장 눈에 띄는 결함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역전 현상을 고립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있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의 권리에 대한 반동적 캠페인은 전면적인 반동적 공세의 일부에 불과하다. 팔루디가 그렇게 잘 묘사하고 있는 부르주아 선전 기법은 지배계급이 공격하고 있는 다른 대상들 즉 생활보호 대상자들, 노동조합원들, 사담 후세인 등에게도 주기적으로 구사되어왔다.

낙태를 반대하는 “태아 구조 활동” 광신도들에 대한 국제적 저항운동을 자신의 저서에 각주로 처리하면서 팔루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1989년 뉴질랜드 웰링턴의 교외에 위치한 낙태 시술소에 태아구조대 일개 부대가 도착하면서 충돌이 일어났다. 이때는 이미 30명의 여성들이 시술소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있었다. 태아구조대의 방해를 저지하고 낙태 시술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이 여성들은 대단한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당시 시술소를 방어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가운데에는 남성들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웰링턴의 우리 동지들도 함께 있었다. 전투적이며 남성을 포함하고 있는 낙태 옹호 “신속 출동” 네트워크의 이름은 “선택”이다. 이 단체는 낙태의 권리를 옹호할 태세가 되어있는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 단체를 통해 우리 조직의 지지자들은 파크뷰 시술소를 지속적으로 방어하는 투쟁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 투쟁의 교훈은 명확하다: 성별이 아니라 정치노선에 기초해서 여성의 권리를 옹호해야한다.


여성 해방, 사회주의 혁명으로 쟁취하자!

여성이 가정의 노예가 되면서 여성의 권리에 대한 많은 사안들은 오랫동안 단순히 “개인적” 관심사로 치부되어왔다. 1960년대 후반 여성해방운동 내에는 “의식을 환기시키는 그룹들”이 확산되어 여성들이 자신에 대한 억압을 내면화시키는 다양한 방식들과 사회가 여성의 복종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취급하는 범위를 탐구했다.

낙태, 산아제한, 의료, 육아, 고용 등에서 여성들이 당하는 법적 제도적 규제는 모두 명백히 “정치” 문제들이다. 그러나 수천 년간 지속된 남성 지배의 결과 고착된 뿌리깊은 심리적 사회적 태도와 편견을 통해 여성 억압이 자행된다. 여자 애들은 어렸을 때부터 남자가 할 수 있는 것을 여자가 다 할 수는 없다고 교육받는다. 여성을 비하하는 편견들은 우리 문화에 너무 뿌리 박혀 여성 억압의 많은 측면들은 심지어는 여성해방투쟁에 헌신하는 투사들의 눈에도 거의 띄지 않는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들이 성 중립적인 용어를 쓰자고 제한했을 때 일부 좌익 맑스주의 언론은 주류 부르주아 언론보다도 더 격렬하게 반대했다.

남성에 의해 자행되는 성희롱, 강간, 가정 폭력 등으로 많은 여성들의 삶은 망가지고 있다. 이런 일들은 남성과 여성 개인 사이에 벌어지고 있지만 이 병리현상들은 모두 사회적 문제이다. 이것들을 야기하고 조장하는 사회체제가 타도되고 그 대신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관들이 공존하는 문화를 가능케 하는 물질적 조건을 조성할 수 있는 다른 사회체제가 등장할 때까지 이 문제들은 사라질 수 없다.

여성해방은 개인적 삶의 영역에서 성취될 수 없다. 가사를 남녀가 좀더 균등하게 나누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 육아, 방 청소, 식사준비 등이 개인의 책임에서 사회의 책임으로 전환되어야한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서는 사회를 완전히 개조하여 자본주의의 무정부적 생산을 생산자들 자신이 운영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바꾸어야한다.

여성해방이 계급투쟁의 결과와 밀접히 관련되는 것과 똑같이 사회혁명의 운명도 빈민 및 노동계급 출신 여성들의 참여와 지지에 달려있다. 1868년 12월 12일 루드비히 쿠겔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카알 맑스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는 사람은 거대한 사회혁명들이 여성들의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성의 평등을 옹호하고 진전시키는 투쟁에 혁명가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 또한 사회주의 운동 내에 여성 지도자들의 발굴을 촉진시켜야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타도 투쟁에 참여함으로써만 여성들은 자신의 해방을 위한 길로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타도되어야 기아, 착취, 빈곤, 수천 년 지속된 남성 지배의 해악 등을 일소할 물질적 조건들이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투쟁 목표인가!


부록: <여성 억압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사회적 억압 가운데 가장 널리 퍼져있으며 가장 뿌리가 깊은 여성 억압은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다. 그러나 이 억압은 인종 억압과는 달리 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했다. 1884년에 완성한 획기적 저서 [가족, 사적 소유 , 국가의 기원]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렇게 말했다: 부족의 모든 성원들이 함께 일하고 모든 재산이 공동으로 소유된 수렵과 채취 위주의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이등시민이 아니었다. 여성의 종속은 사적 소유에 기초한 사회계급들의 등장과 함께 나타났음을 그는 특히 주목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문명사회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온 남성 지배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유전자 차이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결정된 현상이라고 그는 결론 내렸다.

출산과 육아의 능력이 여성에게만 있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사이의 자연스러운 노동분업이 원시사회부터 발생했다. 그러나 이것이 자동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격하시키지는 않았다. 계급사회의 등장과 함께 여성들은 서서히 정치 및 경제 활동에서 배제되고 가정에 묶이는 신세로 전락했다. 사회와 시대마다 여성 억압의 형태, 정도, 강도는 다르지만 이 억압은 언제나 다음 세대의 생산이라는 여성의 역할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이 억압은 이어서 궁극적으로 지배적 생산양식과 이에 따르는 사회구조의 필요에 의해 고착되었다.

사회 유지에 필요한 가사노동을 돈도 받지 않고 제공하는 역할 때문에 여성은 자본주의 “자유시장” 체제에서 억압당하고 있다. 이 역할에는 식사와 의복과 청소에 대한 일차적 책임, 유아와 노인과 병자의 간호, 가족 성원 전부의 정서적 심리적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 등이 있다. 지배계급이 보기에 가정은 다른 어떤 방식보다 이 필수적 기능을 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가장 값싸게 제공하는 단위이다. 따라서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는 가정을 기본 단위로 설정하여 옹호해야할 절대적인 필요를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여성 억압의 물질적 토대이다.

엥겔스가 활동할 당시 원시사회에 대한 연구는 걸음마 단계에 있었다. 따라서 그의 저서의 기초가 되는 실증적 자료는 한계가 있었으며 일부 중요한 측면에서는 오류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여성 억압이 사회적 산물이라는 그의 통찰이 퇴색되지는 않는다. 비교적 최근까지 부르주아 사회과학자 대부분은 남성의 지배를 보편적 규범으로 간주하고 이것이 대체로 생물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난 몇십 년간 인류학자 다수는 수만 년간 성평등이 유지된 수렵-채취 사회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 인식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자체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인식의 전환은 부르주아 매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는다. 그러나 [뉴욕타임즈]지 1994년 3월 29일자 기사는 예외적으로 이 진실을 보도하고 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 성평등이 존재하다]라는 제목의 이 짧은 기사는 위스칸슨 대학교 인류학 교수인 마리아 르파우스키 박사의 연구성과를 소개하고 있다. 1993년에 출판된 저서 [모국의 열매]에서 그녀는 뉴기니섬 남동쪽에 위치한 외딴 섬 바나티나이를 묘사하고 있다:

“이 섬에는 남성 우월 의식, 남성의 강제력, 여성에 대한 남성의 공식적 권위 등이 없다.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역할에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여성은 공적이며 권위를 부여하는 역할들을 맡는다. 여성은 생산물에 대한 권한과 귀중품 분배를 남성과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은 재산을 상속받는다.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똑같이 귀중품을 교환하고 연회를 준비하며 고구마 심기, 병 치료 등 중요한 의식을 관장한다. 여성은 친척에게 조언을 하고 공공 집회에서 연설을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이 연설을 열심히 듣는다. 여성은 귀중한 마술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 생존활동에서 남성과 함께 일한다.”

이 섬에서 여성이 하는 중요한 역할은 “타우부와라가”이다. 이것은 “조상들의 삶의 방식”이라고 번역된다. 이 섬에서 남성은 여성의 육아활동을 돕는다. 언어도 성 중립적이다. “그”, “그녀” 같은 단어는 없다. 자신의 저서의 결론 부분에서 르파우스키 박사는 이렇게 논평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공평한 대접이라는 사회 전반의 도덕 관념, 정치권력의 분산, 공적 권위를 갖는 직위에 여성과 소수인종을 포함한 모든 계층들의 참여 등에 의해 성평등이 촉진된다는 사실을 바나티나이 섬의 예가 암시한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현상도 아니며 불가피한 현상도 아니라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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