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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주의 제국주의론 vs 클리프주의

 

밑줄과 굵은 글씨 등 모든 강조는 글쓴이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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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20세기 초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에 도달한 이후 지구상 모든 사회공동체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그리하여 세계 모든 사회공동체가 하나의 경제그물로 엮여서 금융적으로 강력한몇몇 국가가 나머지 다른 모든 국가 위에 우뚝 선(레닌)” 위계적이고 유기적인 하나의 체제가 되었다.

이렇게 자본주의 최고 · 최후의 제국주의 단계에 들어선 이후, 거의 대부분의 정치경제적 사건은 제국주의적 성격을 띠었다. , 제국주의 이해관계가 그 동인(動因)이 되고, 제국주의가 그 정치행위의 중요 배역을 맡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사를 보더라도, 러일전쟁, 한일합방, 중일전쟁, 2차 대전, 해방정국과 미군정, 한반도 전쟁, 산업화, 끊임없는 군사 긴장 등 거의 대부분의 일들은 일본이나 미국 제국주의가 사건 발생의 주원인이며 그 주역이었다.

이 시대 자본주의의 모순은 제국주의라는 형태로 발현된다. 그리하여 제국주의 이해와 그에 대한 태도는 이 시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다. 동시에 제국주의적 사회압력에 굴종한 기회주의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벗어나 마르크스주의로 갈라지는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제국주의와 전쟁과 노동자연대의 비판

우리는 노동계급의 계급적 시야를 흐리는 기회주의를 걷어내고 목표를 명확히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 2016년 가을에 묶어낸 제국주의와 전쟁역시 그 노력 가운데 하나였다. <옮긴이 후기>에서 그 책의 의의를 이렇게 밝혔다.

이 저작에 수록된 논문들을 관통하는 관점은 제국주의에 의한 신식민지 지배와 초과 이윤의 수취가 과거의 일이 아니며 제국주의에 맞선 민족해방투쟁은 노동계급의 동맹군이라는 레닌주의적 관점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만,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각종 야만들 즉, 초과이윤 수탈, 더 많고 안정적 수탈을 위한 신식민지 정치군사적 지배,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비위에 거슬리는 세력 제거, 식민지에 빈발하는 쿠데타, 끊임없는 전쟁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 체제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다.”

노동자연대는 마르크스2118(20171~2)제국주의와 전쟁에 대한 비판적 서평을 실었다. 과거의 유산에 사로잡혀 오늘날의 제국주의와 전쟁을 오해하다(김영익)라는 제목이 글의 뼈대를 상당히 암시하는 바,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의 이론이나, 소련을 퇴보한 노동자국가라고 규정하는 트로츠키의 분석은 현실에 맞지 않는 과거의 유산인데 우리가 그를 신줏단지 모시듯이 무비판적으로 고수(하여) 스스로 혼란을 키운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압력: 기회주의의 근원

우리는 제국주의와 전쟁서문에서 기회주의의 근원으로서의 제국주의와 노동자연대의 핵심원칙인 국가자본주의론이 그 기회주의 중 하나라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제국주의는 이 시대 거의 모든 기회주의의 근원이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형태이고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자본주의 저항 세력에게 가해지는 가장 강력한 압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회주의는 썩어문드러진 이 자본주의 체제가 연명할 수 있는 비결이다. 사민주의, 스탈린주의, 국가자본주의론, 노동자주의 등 이 시대 핵심 기회주의 조류 모두는 이 제국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트로츠키주의의 핵심은 10월 혁명의 방어이다. 그것은 두 개의 임무로 구성된다. 하나는 제국주의로부터의 10월 혁명의 성과인 노동자국가 소련 방어이고 다른 하나는 10월 혁명의 성과를 내부에서 갉아먹는 스탈린관료집단을 끌어내리는 정치혁명이다. 이 두 과제는 병렬적이지 않다. 후자는 전자에 종속된다.

한국에서 기형적 노동자국가이북과 이북의 핵무기 방어를 주장하는 것이 살얼음 걷듯 위험천만한 것이듯, 2차 대전 전후 영국이나 미국 등 제국주의 진영에서 소련 방어 노선을 견지하는 것은 국가의 빨갱이 사냥과 혹독한 사회적 고립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2차 대전 전후 제국주의 나라 트로츠키주의자 상당수가 소련에 대한 방어 노선을 저버리며 이탈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탈을 합리화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역사적 실천으로 검증된 사상을, 현실에 맞지 않는 과거의 유산” “신줏단지로 치부하며 새로운 이론을 발명했다. 마르크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의 국가론을 수정했다.

노동자연대의 뿌리가 되는 국제사회주의경향(International Socialist Tendency: IST)의 주역 토니 클리프 역시 그 중 하나였다. 2차 대전 직후 영국에서 활동하던 그는 소련과 제국주의 진영의 갈등이 날카로워지자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소련 방어 노선을 부정하면서 트로츠키 진영에서 이탈했다. 1919년에 카우츠키는 혁명으로 갓 탄생한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라고 칭하며 소련에 대한 지지를 저버린 바 있다. 과거의 유산에서 영감을 받아 토니 클리프는 자신의 이론을 창시했다. 관료집단으로 인한 노동자민주주의 억압을 구실로 사적 소유가 철폐된 소련을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라고 규정했다.

 

총체적 세계관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는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세계관이다. 사회의 일부만 떼내어 고립적으로 분석한 이론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정치, 경제 등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에 대한 정태적이면서 동시에 동태적인 분석이며 자연과학의 업적까지 포괄하는 총체적 세계관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사회가 그러하듯, 각 부분에 대한 이해는 다른 부분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그리하여 한 부분에 변화가 생기면 다른 부분에도 변화의 압력이 발생한다. 적대 계급에 밀려 당장 부담스러운 일부를 수정하면 그에 맞게 다른 부분들도 수정해야 한다. 레닌이 지적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속류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들이 죽은 이후에는 천진스러운 우상으로 변질되어 신성시되고, 그들의 명성은 어느 정도 피억압계급을 회유하는 데에 쓰이는 위안의 후광으로 둘러싸여지거나 후세를 기만하는 수단으로 숭배되는 등 결국에는 음모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동시에 그들의 혁명이론은 그 실체를 박탈당하고 속류화되며 혁명이론이 지니는 무기로서의 예리함은 무디어지고 만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노동운동 내의 기회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마르크스주의 왜곡조작에 함께 가담하고 있다. 그들은 이 이론이 지니고 있던 혁명적 측면과 혁명적 정신을 제거하거나 불투명하게 만들며 왜곡하고 있다. 그들은 부르주아지가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일 것 같은 부분만 내세우고 찬양한다.”레닌, 국가와 혁명

토니 클리프는 사적소유가 철폐되고 부르주아 국가기구가 타도된 소련을, 민주주의 불철저를 이유로 자본주의라고 규정했다. 그 방법으로 영미 등 제국주의 진영 대() 소련 등 노동자국가 진영의 대립을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또는 제국주의 대 제국주의의 갈등이라고 규정했고, ‘편들기를 스스로 면제하며 중립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론 수정작업은 끝나지 않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토니 클리프 판 마르크스주의

사적소유가 철폐된 사회를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하자마자 그는 공산주의자의 이론은 사유재산의 폐지라는 단 하나의 문구로 요약될 수 있을 것(공산당선언)”이라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즉각 이탈한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한 다발의 새로운 거짓말을 동원해야 하듯이, ‘국가자본주의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토니 클리프 진영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개념들인 자본주의’ ‘계급’ ‘노동계급 독재’ ‘제국주의’ ‘금융자본등을 연쇄적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먼저 자본주의 개념을 수정한다. 소련 · 동유럽 · 북한 등 사적소유가 철폐된 사회를 자본주의 범주에 욱여넣었으므로, 클리프주의는 자본주의를 생산수단이 자본가에 의해 사적 소유되고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노동계급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파는 사회체제에서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철폐 여부와 상관없이 관료집단의 독재로 민주주의가 억압당하거나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사회체제로 수정했다.

계급 개념도 수정한다. ‘생산수단의 소유 방식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관계가 핵심인 마르크스주의 계급 규정을, ‘생산수단의 소유문제를 쏙 빼버리고 계급은 생산 과정에서 특정한 위치를 갖고 있는 인간 집단(토니 클리프, 소련 국가자본주의)”이라는 품 넓고 벙벙한말로 수정한다.

노동계급 독재도 수정한다. 이에 대한 가장 간명한 정의는 프롤레타리아는 국가권력을 잡고 나서는 먼저 생산수단을 국유화한다.”라는 엥겔스의 문장이다. , 노동계급에 의한 국가권력의 장악과 부르주아적 소유인 사적소유의 철폐를 의미한다. 하지만 토니 클리프는 민주주의가 노동계급 독재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제국주의 사회적 압력에 짓눌린 한 번의 타협은 마르크스주의를 대대적으로 손보는 것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를 그 원전이 아니라 해석본을 통해서만 접해야 하는 이유이고,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 역시 과거의 유산이라며 손 봐야 할 대상이 되는 이유이며, 우리의 제국주의와 전쟁이 아픈 이유일 것이다.

 

레닌주의 제국주의론의 핵심: ‘금융자본

레닌의 제국주의 분석의 핵심은 금융자본에 있다. (제국주의에 대한 <뿌리>의 기회주의적 인식에서 풍부한 전거를 들어 자세히 설명한 바처럼) 마르크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로 계승되는 제국주의에 대한 이해는 이러하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고도화되고 독점에 이르면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이 결합된 금융자본으로 되고 그 금융자본이 초과이윤 수취를 위해 식민지 팽창정책에 나서는 최고 · 최후 단계에 이른 자본주의

금융자본은 단순히 자본의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진화와 발전단계 그리고 그 단계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지배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인 금융자본에 대한 몰이해 또는 기회주의적 인식을 레닌과 트로츠키는 각각 이렇게 꾸짖은 바 있다.

식민지정책과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근단계 이전에도, 아니 자본주의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다. 노예제를 기초로 했던 로마도 식민지정책을 추구했으며 제국주의를 실시했다. 그러나 경제적 사회구성체들 간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무시하거나 뒷전으로 밀어놓는 제국주의에 관한 일반논문들은 결국 대로마국과 대영제국을 비교하는 따위의 극히 진부하고 공허한 잡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이전 단계들의 자본주의적 식민지정책이라 할지라도 금융자본의 식민지정책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레닌, 제국주의론

현대에 와서 특히 마르크스주의 서적에서는 제국주의가 금융자본의 팽창정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제국주의라는 용어는 이제 매우 정확히 규정된 경제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 소련 관료집단이 추구하는 대외정책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채 그저 제국주의적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럴 경우 보나파르트 관료집단의 정책을 독점자본의 정책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 두 현상은 팽창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 모두 군사력을 이용하고 있다. 이것이 공통점이라면 유일한 공통점이다. 이렇게 두 현상을 동일하다고 인정할 경우 남는 것은 혼란뿐이다. 그리고 이 혼란은 마르크스주의자보다는 소부르조아 민주주의자에게나 어울린다.”트로츠키,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며

레닌주의 제국주의론의 가치는 단지 이 세계에 식민지 팽창정책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를 밝혀 제국주의의 동학(動學)을 밝혀낸 데에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진화의 산물인 금융자본이라는 경제적 요소가 식민지 팽창정책이라는 현상의 배후에 있는 본질이라고 논증해낸 데에 있다. , 전자(금융자본)와 후자(식민정책)원인과 결과, 본질과 현상의 필연적 관계임을 입증해낸 것이 레닌주의 제국주의론의 실천적 핵심이며 그것이 카우츠키 등의 기회주의와 구별되는 점이다.

 

클리프주의 제국주의론

그런데 노동자연대는 금융자본의 식민지/병합/팽창정책이라는 레닌주의 제국주의론을 신줏단지같은 과거의 유산이라고 폄하하며,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이런 생각은 제국주의를 복수의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지정학적 경제적으로 경쟁하는 체제로 이해하지 않고 미국 같은 특정 국가로 환원시키거나 서방의 제3세계 수탈정도로 협소하게 이해하는 것과도 관련 있다.

이 점은 레닌 트로츠키 등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제국주의를 분석하고 이해한 것과 다르다. 앤서니 브루어가 이 차이를 지적한 바 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제국주의는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을 뜻했다.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지배는 이러한 제국주의 개념에 분명 함축돼 있기는 하지만 핵심은 강자들 사이의 지배권 다툼에 있으며, 그러한 다툼에서 저개발 국가들은 능동적 행위자라기보다는 수동적 전장의 위치를 차지한다.”김영익

앤서니 브루어라는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의 해석으로 제국주의에 대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생각을 들여다봐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노동자연대는 레닌주의 제국주의론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레닌주의 제국주의론은 제국주의와 진짜 예리하게 맞서게 하기 때문이다. 레닌주의적 제국주의 인식은 중국이나 구소련 또는 지금의 러시아 같은 나라를 미국과 같은 반열의 제국주의로 만드는 방식의 중립입장을 취하지 못하게 하고, 식민지와 제국주의와의 갈등에서 애매한 평화주의 반전운동에 머물 수 없게 만든다. 달리 말해, 제국주의 국가와 (소련이나 중국) 노동자국가의 갈등 그리고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갈등에서 대체로 점잖은 제3진영에 서 왔는데,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어느 한 진영편에 서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국주의를 복수의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지정학적 경제적으로 경쟁하는 체제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정의하면 금융자본이라는 행위의 동기는 사라져버리고, ‘식민지 팽창정책이라는 제국주의 행위의 핵심표상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는 필자만의 것이 아니다. 토니 클리프 사후 국제사회주의경향의 핵심 지도자인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는 두 가지 형태의 경쟁, 즉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결합(제국주의와 국제정치경제)”의 다른 표현이고, <노동자운동연구공동체 뿌리>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의 세력권을 재분할하기 위한 경제적·정치적·군사적 경쟁과 갈등 및 극한의 충돌이라는 설명과 상통한다.

이들은 금융자본이라는 경제적 요소와 식민지 팽창정책이라는 행위 사이의 원인과 결과, 본질과 현상 관계를 자꾸 흐리고 두 요소의 고리를 한사코 끊어놓으려 한다. 캘리니코스는 금융자본이 제국주의의 근원이라는 레닌주의 정의를 경제환원론이라 칭하며, 자신의 정의가 경쟁형태 상호 관계에 초점을 맞춘장점이 있다고 자찬한다. 한편 크리스 하먼은 금융자본이라는 용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런 뒤죽박죽된 생각을 낳는다.(새로운 제국주의론)”라며 금융자본이라는 레닌주의 제국주의론의 핵심 개념을 부정한다.

 

진짜 스승, 카우츠키

노동자연대는 자신들이 신줏단지처럼 낡은 과거의 유산에서 벗어나 마르크스주의에 뭔가 창조적 기여를 한 것처럼 레닌주의를 부정하지만 그다지 참신하지 않다. 제국주의와 정면으로 맞서기를 두려워하여 눈을 내리깔고 혁명이론의 예리함을 뭉그러뜨린 것은 역시 카우츠키가 원조였다. 그리고 카우츠키가 바로 식민지 팽창정책이라는 현상과 그 현상의 경제적 원인으로서의 금융자본의 관계를 못 보거나 의도적으로 간과한 제국주의에 대한 기회주의의 원조였다. 레닌은 그 기회주의 사상의 비과학성과 위험성을 직시했다.

카우츠키가 내린 정의 속에 포함된 오류는 명백하다. 제국주의의 특징은 산업자본이 아니라 바로 금융자본이다. 프랑스에서 1880년대 이후 병합적(식민지적) 정책이 엄청나게 격화된 이유가 바로 산업자본이 약화된 대신 금융자본이 매우 급속히 발전했다는 사실에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카우츠키가 제국주의의 정치를 제국주의의 경제로부터 분리시키고, 병합을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정책이라고 설명하며,결국 부르주아개량주의와 평화주의이며, 경건한 소망에 대한 인정 많고 순진무구한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제반 모순의 뿌리 전체를 폭로하는 대신 그것들을 회피하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모순을 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카우츠키의 이론인 것이다.”레닌, 제국주의론

카우츠키 제국주의론에 대한 레닌의 이러한 비판은 노동자연대의 제국주의론에 그대로 적용해도 큰 어긋남이 없다.

 

살아있는 실체로서의 금융자본

금융자본은 누구의 우스꽝스런 설명처럼 은행예금, 펀드, 주식, 화폐 등 현물이 아닌 자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경쟁 자본들을 집어삼켜 독점을 구축하며 등장한 금융자본은 그 힘으로 국가기구를 부리고 그 군사력과 정보력을 가동하여 식민지의 정치 경제를 자기 영향력 아래 편입하여 초과이윤을 수취한다. 다른 한편 그 국가의 힘으로 다른 금융자본과 다른 제국주의 국가 그리고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과 탈자본주의를 열망하는 자국과 식민지 노동인민에 맞서 최전선에서 투쟁하는 실체이다. 세계 인민의 목숨, 자원, 자연환경, 국가체제를 이윤 최대화를 지상과제로 하는 자본의 이해 아래 깔아뭉개 복속시키는 의지의 화신이다.

트로츠키는 금융자본이 세계 지배의 실체라는 점을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일류급 60대 거대 부유가문은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며 시장뿐 아니라 주요 국가기구의 지위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달러 민주주의 체제에서 돈으로 권력을 휘두르는진짜 정권이다.

이렇게 해서 독점 자본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피와 살을 부여받고 생생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결국 친족 관계와 공동의 이해로 묶인 채 독점적인 자본주의 과두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한 줌의 가문들이 거대한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부를 행사하고 있다.”―「우리 시대의 마르크스주의

노동자연대 김영익은 제국주의의 본질엔 금융자본이 있다.”라는 레닌주의 주장을 횡설수설의 논리로 어지럽힌다. 그런 방식으로 제국주의를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경쟁 그 자체로 치환하려 든다. 현대 자본주의 세계체제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금융자본이라는 행위자를 흐리려 한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금융자본이 자신의 이해를 최대화하려는 행위이고 그것은 저 멀리 아득히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목줄을 움켜쥐고 우리 삶을 속속들이 지배하고 있는 실체이다. 세계를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넣기 위해 피눈이 된 제국주의 금융자본은 세계와 남한 노동인민의 삶 곳곳에 개입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상시적 긴장이 그 결과이고, 유럽에서 과거 동유럽 국가들에 친제국주의 정권을 세워 하나씩 둘씩 나토(NATO)로 편입시켜 온 동진(東進) 정책, 이라크·아프가니스탄·리비아·시리아 등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통해 표현된다.


 미국 제국주의.jpg


한국과 금융자본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에 처한 이후 외환은행, 담배인삼공사, 제일은행, 한미은행, 진로 등 알짜기업은 각각 론스타, 칼 아이칸, 뉴브릿지캐피탈, 칼라일, 골드만삭스라는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손에 들어갔다. 국내 정치관료들을 부려 국내법들을 무용지물로 만들며 터무니없는 헐값에 자기 소유로 만들었다. 한국전력, 한국통신 등 국유산업은 사유화되었다. 한국주식 전체의 35% 남짓을 소유하고 주요 산업체인 삼성전자, 삼성화재, 현대자동차, 포스코, SKT 등은 절반이 넘는다. 국민, 신한, 하나, 제일 등 주요 금융지주회사의 경우엔 70%~100%에 달한다. 한국주식시장에서 지난 10년간 외국인들은 78%라는 눈부신 수익을 올렸지만, 같은 기간 소위 개미투자자들은 74% 손실을 냈다(chosun.com, 201736). 노무현 정권 들어 도로, 항만, 지하철 등 공공시설 건설과 유료화는 해외 금융자본인 맥쿼리가 독점하고 있다.

미군은 세계 최대의 해외기지 평택을 비롯하여 서울 한복판 용산을 포함한 남한 알짜배기 땅 곳곳에 기지를 두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탄저균 실험까지 벌이고 있다. 미군은 자국 금융자본의 이해를 지키고 확대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한국을 쓰고 있다. 록히드마틴은 박근혜 정부와의 계약만으로 100조원 이상의 돈을 벌었고, 한반도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드(THAAD)는 그 중 굵직한 계약 건 중 하나이다. 2014년 세계 1위가 된 것을 비롯하여, 2011~2015년 사이 한국은 미국 무기 수입 세계 4위를 차지했다. 미국을 방문한 촛불정권문재인은 그 뜻을 거스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돌아왔다.

 

클리프주의의 일국자본주의론

노동자연대는, 무조건 맞는 것처럼 들리는 그래서 그것만으로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노동계급의 자력해방이라는 말을 자기 단체의 핵심원칙 가운데 하나로 내세운다. 노동자연대는 이 두 어절의 문구로 트로츠키를 마르크스주의 원칙을 어긴 자로 꾸짖는다.

물론 트로츠키는 한평생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자력해방이라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에 충실했다. 그러나 소련이 관료적으로 퇴보했지만 노동자국가라는 그의 정식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원칙과 모순됐다.”김영익

그 자체로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노동자연대에게 이 문구의 용도는 매우 명확하다. 2차 대전 직후 독일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와 싸워 소련이 점령한 지역인 동유럽과 한반도 북부 그리고 내전으로 친제국주의 꼭두각시 정권을 무너뜨린 중국, 쿠바, 베트남 등에서 부르주아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노동자적 소유 체제를 구축한 나라들을 자본주의 국가라고 규정하기 위함이다.

소련 지배하의 동유럽에서 기형적이라 할지라도 노동자국가가 수립됐다면, 그리고 3세계에서 공산당이 지도한 농민 게릴라가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면, 노동계급이 아닌 세력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같은 글

자국 인민의 온전한 힘에 의해서만이 아니거나 노동계급이 주축이 아닌 혁명의 경우, 사적소유가 철폐된 사회체제가 들어섰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이다.’라는 주장을 펴려는 것이다. 그래서 제국주의와의 갈등에서 그 나라들을 편들 필요도 방어 의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 노동자연대는 마르크스주의 학교의 범생이 된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기본공식 이외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면 전부 오답이라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소련이라는 외부 군사력에 힘입었거나, 노동계급이 주축이 되지 않으면’, 그 혁명을 무효라고 주장한다. 그 혁명으로 사적 소유가 철폐되었어도, 사회혁명을 인정하지 않고 그 진보적 성격을 부정하며 제국주의로부터의 방어 의무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사회주의 혁명의 국제성

자본주의는 세계 체제이고 계급투쟁은 일국적 울타리가 아니라 세계적 역관계 속에서 수행되며 사회주의 혁명은 세계적 차원에서 일어난다. ‘모든 나라의 동시 혁명은 비현실적이지만, 각 나라의 혁명은 세계의 계급 역관계에 규정 받고, 세계 역관계에 즉각 영향을 미친다. 제국주의 상호경쟁이 전쟁으로 비화하고 그 결과 식민지 장악력이 크게 약화된 2차 대전 이후 탈자본주의 행렬이 이어진 것이 그 까닭이다.

계급의식을 국제적 차원에서 자각한 만국의 자본가들은, 국제적으로 단결하여 요인 암살, 쿠데타, 반군 지원, 내전, 침략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각 나라의 계급투쟁에 개입한다. ‘만국 노동자의 단결은 따뜻한 연대의식을 기르고 친목을 도모하자는 한가한 뜻이 아니다. 사회주의 혁명은 먼저 자본주의가 잘 갖추어진 나라가 우선 하고, 아직 충분치 않은 나라는 우선 자본주의적 내실을 갖춘 뒤 나중에 수행하는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는 어떤 나라에서건, 심지어 자본주의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더라도,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노동인민의 운동은, 필연적으로 탈자본주의적이고 동시에 노동계급적 성격을 가진다. (이 주제에 대한 보충설명으로 맑시즘 2012’ 참관기 3: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귀환동아시아는 어디로?’노동자의 직접행동이 있어야만 노동자혁명인가? 참고)

 

토니 클리프주의의 중립

클리프주의는 이런 나라들과 제국주의가 갈등할 때 중립 입장(반전 열풍이 대중적으로 일어났던 베트남만 예외로)을 취했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토니 클리프 정치세력이 그 구호를 처음 채택한 것은 6.25 전쟁 때였다. 그 전쟁은 단지 강자들 사이의 지배권 다툼(앤서니 브루어, 김영익 인용)”이 아니었고 한반도 노동인민은 고래 싸움에 수동적으로 끼어든 새우가 아니었다. ‘생산수단 국유화, 농지 무상분배, 제국주의로부터 해방과 분단 반대라는 자신의 생존을 내걸고 해방 직후부터 싸운 능동적 행위자였다(잊혀진 전쟁 6.25를 보시오). 계급 내전이었고 국제적 계급 갈등이었다. 중립은 자랑이 아니다. 토니 클리프는 계급 갈등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역사적 의무로부터 이탈하여 제3진영으로 도피했다. 물론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부터 수만 km 밖에 있었던 토니 클리프였기에, 비겁할 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이었던 중립노선을 취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자연()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연대의 균형감각

북한은 6.25때 처참하게 당했고, 이렇다 할 무장이 없음을 내보인 이라크와 리비아의 최근 운명을 보았다. 북한은 상당한 자원을 동원하여 핵무기를 개발했고 최근 ICBM 개발에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균형감각이 좋은 노동자연대는 북한에 이렇게 충고한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아래로부터 반제국주의 운동을 한국에서 건설하는 데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당장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주민 운동이 큰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이렇게 아래로부터의 운동의 처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북한 관료의 행태는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다. 북한이 가용 자원을 끌어모아 핵무기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 배치한들, 제국주의적 경쟁과 압박 속에 그런 핵무장이 진정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보증해 줄 리 만무하다.”

강간범에 맞서 비수를 꺼내들자, ‘그 비수로 민심이 흉흉해지니 내려놓으라.’라는 꼴이다.

 

클리프주의 국가관

김영익은 토니 클리프의 국가관을 반복하고, 앞에서도 설명했듯 그것이 제국주의론을 수정해야 하는 출발점이다.

생산수단이 국유화돼 있다면 노동자국가라고 여긴다면, “노동계급 혁명의 첫 단계는 프롤레타리아를 지배계급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것이라는 공산당선언의 주장은 틀린 말이 된다.물론 오늘날에도 중국 경제에서 국유부문이 자치하는 비중이 여전히 크다. 그러나 국유냐 아니냐같은 소유 형태를 두고 그 사회가 노동자국가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부정확한 방법이다.”김영익

노동자연대의 국가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마르크스주의 국가관의 핵심은 소유형태이다. ‘사적소유의 발생으로 계급갈등이 시작되었고, 사적소유가 모든 악의 근원이며, 계급 갈등과 국가폭력의 종식은 사적소유의 소멸로부터 시작된다.’라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기초이다. (이 너무도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는 소련 등 노동자국가 성격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제기에 대한 대답민주주의 물신화 참고할 것)

그런데 소유형태는 국가 성격 판단에 부차적이며, “소유 형태를 두고 그 사회가 노동자국가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부정확한 방법이라고 태연히 말한다는 것은 마르크스21이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얼마나 멀리 벗어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닐까?

 

201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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