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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출처 – 국제볼셰비키그룹(IBT)


볼셰비키와 투표 그리고 계급노선

레닌의 선거 전술에 대한 영국공산당(CPGB)과의 논쟁


[ 녹색 ]–역주


우리는 작년 영국공산당(Communist Party of Great Britain: CPGB)의 신문인 위클리 워커(Weekly Worker)의 투고란에 실린 논쟁을 다시 인쇄한다. 2009년 6월 유럽 의회선거에서, 인민전선 조직인 ‘EU 반대 민주주의 찬성(No to EU—Yes to Democracy: No2EU)’[ 2009년 6월 유럽의회 선거를 대비하여 영국 운송노조, 항만노조 그리고 철도노조에 의해 주도된 좌익 선거동맹. 사회당, 영국공산당, Solidarity, 녹색 사회주의 동맹, 자유당, 사회주의 저항, 인도 노동자 협회 등이 참가.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리스펙트 회원 일부도 지지함. Wikipedia 참고 ]에 투표하라는 CPGB의 전술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하여, 일반적 수준에서 부르주아 정당에 대한 혁명 정책 문제 그리고 특히 차르 두마 의회 선거에서 자유주의 입헌군주당(카데트) 후보에 대한 볼셰비키당의 태도 문제로 발전하였다.


<차례>

2009년 5월 28일, 바바라 던(IBT)

2009년 6월 4일, 제임스 툴리(CPGB)

2009년 6월 11일, 바바라 던(IBT)

2009년 6월 18일, 제임스 툴리(CPGB)

2009년 7월 9일, 볼셰비즘과 선거전술 (IBT)



위클리 워커(Weekly Worker) 2009년 5월 28일, 바바라 던(IBT)

유럽의회 선거에서 No2EU 후보에 대한 조건부 비판적 지지라는 CPGB의 호소는, 이 부패한 민족주의 계획의 주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했다. 노골적인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의 개입이 바로 그것이다. 부르주아와 노동계급 세력이 같은 선거 명부에 함께 이름을 올릴 때, 맑스주의자는 그것을 인민전선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런 경우라면 자동적으로, 그 비판의 정도에 상관없이,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보낼 수가 없다. ‘공화 민주주의, 투표전술과 공산주의 전략(5월 21일)’이라는 논문에서, CPGB의 지도자 잭 콘래드는 비판적 지지를 위한 그의 조건들에는 말할 것도 없고, 부르주아 세력의 개입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No2EU 공식적 선언과 모순되게, 이른바 ‘진보적 부르주아’에 대한 이 조직적 포용은, ‘영국 일자리는 영국 노동자에게’라는 반동적 사상을 조장하는, 그 민족주의적 강령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이것 자체로 비판적 지지를 보내서는 안 되는 이유로 충분할 것이다. 그것이 유럽연합에 의해 행해지든 아니면 개별 국가에 의한 것이든, 모든 종류의 자본주의 공격에 맞서 투쟁하고 모든 나라 노동자들 사이의 실질적 단결을 이루어내는 일은 참으로 긴급한 일이다.

콘래드 동지는 CPGB가 내건 조건을 No2EU가 거절할 경우 노동당에 투표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12년 동안의 지독한 反노동계급적 정권을 겪고 난 이후, 노동당이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독립적으로 대표한다고 믿는 계급 의식적 노동자가 있다는 발상은 이상한 것이다. 신노동당에 대한 비판적지지 전술 적용은 오직 ‘차악주의’에 기초할 때에만 가능하고, 그것은 노동계급의 의식을 혁명의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그 전술의 목적 자체를 패배시키는 것이다.

비판적 지지는 개량주의자들이 자본가들에 맞서 우리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한다고 나서는 경우에 의미 있는 전술이 된다. 그것은 계급적 자각을 한 노동자와 더불어 계급의 독립적 이해를 위한 최선의 강령에 관해 대화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의 노동당과 No2EU를 볼 때, 그러한 방식으로 개입할 여지가 없다.

기형적이고 개량적인 형태로라도 노동계급의 독립적 이해를 대변할 후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혁명가들은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노동자들에게 투표용지를 훼손(spoil ballots)[ 기권 또는 거부의 한 가지 방식―역주]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위클리 워커 2009년 6월 4일, 제임스 툴리(CPGB)

(5월 28일 편지로) 바바라 던 동지는 자유당의 No2EU 개입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 개입은 자유주의 진영의 유럽연합가입반대주의자(Eurosceptic)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No2EU의 강령의 국수주의적 성격에 대한 또 다른 명백한 증거이다.

그러나 바바라 던 동지는 핵심을 완전히 놓치고 있고, 대신에 인민전선에 대한 IBT의 자기모순적인 노선을 제기한다. 그는 자유당 개입으로 그 조직이 자동적으로 인민전선이 되고, 그것이 인민전선이 되는 순간 어떤 종류의 지지도 자동적으로 배제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지지 조건을 제기하는 CPGB의 노선은 원칙적이지 않은 것이고, 지지는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어떤 정치 조직에 대해 맑스주의자가 지지를 자동적으로 배제해야 할 계급적 조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카우츠키주의라는 IBT의 모든 비방에도 불구하고, CPGB는 볼셰비키주의 전통 위에 서 있다. 자유주의 부르주아인 카데츠에 대한 투표를 호소했던 바로 그 볼셰비키 말이다. IBT 동지 앨런 데이비스는 예전에 이 지면에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전술 차원(그 전술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이 아니라 원칙 차원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진정한 맑스주의와 근본적으로 단절하고 초좌익의 황무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둘째로, 인민전선의 부르주아 진영은 대부분 보증 역할을 한다. 그들의 개입은 그 동맹인 공산주의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강령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자유당은 이미 결정된 정책을 수행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 형식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 전선의 보다 근본적인 계급협조적 성격을 간과하는 것이다. 즉, 국수주의적이고 적갈색 강령[red-brown programme: 사회주의적 요소와 파시스트 국수주의가 섞인 강령] 그리고 부르주아 국가와의 내적 동맹 말이다.

던 동지는 또한 노동당이 독립된 계급적 이해를 대변한다고 믿는 “계급 의식적 노동자”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주장은 광범한 노동조합 운동이 여전히 노동당에 속해 있고, 노동당의 일부가 표면적일지언정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대표로 헌신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같은 주제를 다루며, 글린 매튜는 비슷한 혼란을 겪고 있다. 노동당이 “친제국주의당으로 폭로”되었고 그래서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가? 우리가 결정했던 것은 이라크 전쟁이 영국 정치의 핵심 쟁점이고 그에 대한 원칙적 반대가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요구라는 점이었다. 리스펙트[Respect: 클리프주의자들의 인민전선 선거연합]는 그 조건을 충족시켰다. 만약 리스펙트가 다른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2005년 총선에 출마한 노동당 후보 몇몇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있다는 것은 지금 분명하다. 그리고 종전이 되면 이전 식민지에 주둔한 영국군보다 더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반전운동은 기본적으로 사라졌다. 최근의 반전운동은 이라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된 것이다. 그 당시 우리가 제기했던 조건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선거전술은 절대로 변경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거나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전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위클리 워커 2009년 6월 11일, 바바라 던(IBT)

제임스 툴리 동지는 인민전선이라는 이유로 국제볼셰비키그룹(IBT)이 No2EU 운동을 반대하는 것은 “핵심을 놓친 것 ”이라고 주장한다(6월 4일 편지). 왜냐 하면 부르주아 자유당의 개입이 No2EU의 “국수주의적이고, 적갈색 강령”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툴리 동지는 선거에서 다른 계급, 또는 명백한 부르주아, 조직에 대한 지지를 할지 말지(그것이 아무리 ‘비판적’이라 할지라도)가 레닌주의자에게 단순히 전술적인 문제라고 잘못 생각한다.

“어떤 정치 조직에 대해 맑스주의자가 지지를 자동적으로 배제해야 할 계급적 조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면서, 툴리는 그 증거로 볼셰비키 지도부가 “1906년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인 카데츠에게 투표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인용한다. 그런데 그 당시 레닌과 볼셰비키당의 동료들은 카우츠키의 ‘계급 전체의 정당’이라는 제2인터내셔널의 조직관에 충실했고,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분파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러시아 차리즘에 대항한 혁명은―사회주의 경제의 기초 건설을 시작하기보다는―필연적으로 자본주의적 발전의 시기를 열어놓을 것이라는 사상을 수용하고 있었다. 이 주제에 대해 레닌이 쓴 핵심 문건에 이러한 사상이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부르주아 혁명의 경로에서 필연적일,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지와의 협의에 임할 때 어떤 노선에 기초해야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카데츠와의 동맹, 1906년 11월).” 러시아 혁명의 과제를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1917년 이전의 볼셰비키들은 ‘혁명적 부르주아’라고 묘사한 조직 즉, “공화정을 위해 투쟁하는, 무장봉기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정당들(같은 글)”과의 선거 협약이라는 생각을 토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906년 11월 ‘선거 연설 초안’을 통해 레닌이 명확히 했던 것처럼, 이 범주에 카데츠는 포함되지 않는다.

레닌의 당시 저작을 검토하면, 우리는 레닌이 사실상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1906년 11월 탐페레 총회에서 카데츠와 연대하는 안을 반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은 다수를 얻었다. 그 총회는 원칙적으로 그 연대를 승인했지만 자기 지역에서 그 선거정책을 구사할 것인지는 각 지역조직들에 맡겼다. 레닌은 이 정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멘셰비키 개량주의자들과 ‘결합’한 정당을 유지하기 위해 받아들였다: “카데츠와의 연대의 승인은 멘셰비키가 노동자당의 기회주의 진영이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최종 인증이다. 우리는 카데츠와의 연대에 맞서 무자비한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이고 있고 이 투쟁은 반드시 가능한 한 확대되어야 한다.…문제는 이 가차 없는 투쟁을 당 규율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에 있다.…카데츠와의 연대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의 승인은 조직적 관계의 단절 즉, 분립을 불가피하게 하는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모든 볼셰비키도 동의할 것이다.…그러므로 현재 우리의 임무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지조와 견실한 계급적 본능을 믿으면서, 지식인적 신경질을 회피하고 당의 단결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멘셰비키와의 단결은 결국 종말을 고했다. 10월 혁명이 강력하게 확인한 것처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제조건은 혁명가와 개량주의자와의 정치적 분립이다. 조직적 영역에서 볼셰비즘이 기여한 점은 혁명가들은 반드시 개량주의로부터 독립적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레닌과 볼셰비키 분파의 다른 지도자들은 멘셰비키와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분립이 발생한 1912년 이전에는 이 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러시아 노동자들에 대한 헤게모니 장악을 향한 볼셰비키당의 투쟁은 임시정부에 가담한 소위 ‘사회주의자’들의 자유주의 부르주아 파트너에 대한 애착을 폭로하는 것을 통해 수행되었고, 그것은 ‘10명의 자본가 장관을 끌어내려라!’라는 구호로 집약되었다. 레닌이 4월 테제를 통해 이러한 방향을 제시했을 때, 많은 고참 볼셰비키들은 레닌이 ‘초좌익의 황무지’를 떠돌고 있다고 여겼다. 4월 테제의 승인은 볼셰비키가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에서 공산주의 조직으로 질적 전환을 완성한 사건이다.

No2EU 강령의 민족주의 그리고 보호무역주의가 노동운동에 해를 끼친다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바로 그것 때문에 자유당의 구미가 당긴 것이다. 자유당의 No2EU 참여는 실제로 크지 않다. 트로츠키가 ‘부르주아지의 그림자’라고 지칭한 것과 같은 것이다. 심지어 자유당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No2EU의 반동적 강령은 그 계획에 대한 이른바 ‘사회주의’ 지지자들은 별로 위험하지 않은 개량주의자들이라고 자본가 계급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툴리 동지가 지적한 것처럼, 자유당의 No2EU 개입의 주된 의미는, 바로 그것이 “근본적으로 계급 협조적 성격을 지닌 전선”을 공식화하고 구체화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모든 부르주아 분파로부터의 노동계급의 독립은, 실업 인종주의 가난 전쟁 그리고 그 밖의 자본의 전제로 인한 모든 병리적 증상을 끝장내기 위한 첫 번째 걸음이다. 물론 개량주의 노동자 조직들이, 자신의 지지자를 배신하기 위해서, (그 그림자에 불과할지라도) 부르주아 정치 파트너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블레어주의자들의 신노동당 배신자들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CPGB는 볼셰비키 전통에 기초해서” “부르주아 정치 조직에 대한 지지”를 열어두는 것이라는 툴리의 잘못된 주장과, 영국 좌익들을 수십 년 동안 일그러뜨렸던 노동당 충성주의를 오늘 또 재탕하려는 여러분의 시도는 참으로 흥미로운 조화를 이룬다.


위클리 워커 2009년 6월 18일, 제임스 툴리(CPGB)

바바라 던은 6월 11일 편지에서 볼셰비키 분파 역사와 관련하여 매혹적인 허풍을 지어낸다. 그 이야기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라는 한 사람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는 점 외에는 꽤 그럴듯하다.

레닌의 유명한 문서인 『좌익 공산주의 소아병』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IBT 동지들이 뭘 말하려고 하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이 책은 바바라 던과 그의 동지들이 레닌의 연속혁명론으로의 전환이라고 규정하는 시기로부터 한참 뒤인 1920년 출판된 것이다.

그것은 사소한 문서가 아니었다. 공산주의 전통에서 널리 인용되는(설령 덜 널리 이해될지라도), 전략과 전술 문제에 대한 레닌의 가장 광범위한 언급 가운데 하나이다. 바바라 던 동지가 1차 대전 이전의 러시아 혁명가였다면 아마도 이의를 제기했을 볼셰비키당 역사의 바로 그 부분을 이 책이 다루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레닌은 우리에게 전면적인 자기비판을 요구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레닌은 “10월 혁명 전후 모두를 포괄하여 볼셰비키주의 역사 전체는 정책 변화, 화해 전술 그리고 다른 정당과의 타협의 사례로 가득하다.”라고 쓴다. 그리고 보다 치열한 국제 투쟁에서 그 같은 전술 그리고 타협을 거부하는 것은 “지극히 바보스러운 것은 아닐까?”

물론 우리는 레닌이 쓴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저작은 전시공산주의 그리고 그에 따른 볼셰비키 관료화─후에 스탈린의 재앙을 불러일으킨─의 시기에 쓰인 것이긴 하다. 레닌이 고려했던 부르주아 정당들과의 동맹은 부르주아 계급의 혁명적 잠재성으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니라, 총체적 전략과 관련하여 프롤레타리아 당이 처한 상황으로부터 도출된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동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지금 내가 인용하는 것이다. 레닌의 이전의 정치적 강조점을 따르거나 이후의 이른바 “철의 규율”을 따르거나 간에, 이 점에서 그는 대단히 일관성 있고 명확하다. 즉, 전술을 미리 결정하는 자는 볼셰비키가 아니다.

카데츠와의 거래 문제에 대해, 레닌이 1906년 반대한 것은 멘셰비키가 제안한 전략적 동맹이었다. 그러나 바바라 던은 볼셰비키가 뒤마 선거에서 카데츠와 전술적 협약을 맺었고 그것으로 볼셰비키가 노동자 선거구에서 6석의 의원을 배출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물론 레닌은 이 사실을 『좌익 공산주의 소아병』에서 언급했다.

글린 매튜의 6월 11일자 편지에 관해 한마디만 하자. 동지,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 영국에 핵심 쟁점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단지 이라크 전쟁은 더 이상 핵심 쟁점이 아니라고 얘기한 것이다. 그 편지는 이러한 오해에서 출발하고 있으므로 나머지는 다 의미가 없다. 매튜 행성의 거주자들은 독해 능력을 좀 기를 필요가 있다.


볼셰비즘과 선거전술 (IBT)


아래 글은 위클리 워커에 제출된 논문이다. 그러나 편집자가 짤막하게 줄여 편지 형식으로 게재했다. 위클리 워커 2009년 7월 9일 자에 실린 요약본과 원본의 정치적 내용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원래의 문서를 다시 싣는다.


최근 몇 주 동안, 우리는 위클리 워커에서 부르주아 정당을 향한 투표에 대한 레닌의 태도라는 주제로 제임스 툴리 동지와 몇 차례 의견을 교환했다. CPGB와의 이전 논의에서, 같은 주제가 논의된 바 있었고, 그 때 우리는 다음처럼 주장했다.

“맥네어 동지의 기고에서 제기된 가장 흥미로운 정치 주제는 레닌이 1920년 『좌익 공산주의 소아병』에서 볼셰비키는 차르 의회의 2차 선거에서 부르주아 카데츠에 투표한 것은 옳았다는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레닌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라며 맥네어는 불가지론자처럼 말한다. 우리는 당시 걸음마 단계의 코민테른에 레닌이 그것을 모델로서 제시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카데츠에 대한 투표는 10월 혁명 승리의 정치적 기초를 놓은 문서인 그의 유명한 4월 테제의 핵심 정책과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한다.”―위클리 워커, 2005년 5월 19일

2009년 6월 4일 편지에서 툴리 동지는, 볼셰비키의 카데트 당에 대한 지지는 “어떤 정치 조직에 대해 맑스주의자가 지지를 자동적으로 배제해야 할 계급적 조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증거라고 주장했고,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그들이 러시아 혁명의 과제를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1917년 이전의 볼셰비키들은 ‘혁명적 부르주아’라고 묘사한 조직 즉, “공화정을 위해 투쟁하는, 무장봉기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정당들(같은 글)”과의 선거 협약이라는 생각을 토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906년 11월 ‘선거 연설 초안’을 통해 레닌이 명확히 했던 것처럼, 이 범주에 카데츠는 포함되지 않는다.”―위클리 워커, 2009년 6월 11일

2009년 6월 18일의 답장에서 툴리 동지는 레닌의 『좌익 공산주의 소아병』의 “10월 혁명 이전과 이후 볼셰비즘의 역사 전체는 정책 변화, 화해 전술, 부르주아 정당을 포함한 다른 정당과의 타협의 사례로 가득하다.”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낙태 권리 방어를 위해, 게이와 레즈비언 등 동성애자의 평등권 쟁취를 위해, 파시스트들의 결집을 저지하기 위해 등등의 사안에서 다양한 부르주아 조직들과 함께하는 행동에 종종 참여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핵심적 차이는 공산주의자가 다른 계급 조직 또는 명백한 부르주아 정당에 대해 투표하는 것이 완전히 원칙적이라는 CPGB의 주장에 있다. 레닌이 카데츠에 투표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 것이라고 본 것처럼 우리가 없는 얘기를 지어낸다고 툴리는 주장한다.

“레닌이 고려했던 것은, 부르주아 정당과의 동맹은 계급으로서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잠재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총체적 전략과 관련한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처한 상황의 요구에서 나온 것에 다름 아니다.

“카데츠와의 거래라는 문제에 관해, 레닌이 1906년 반대했던 것은 멘셰비키가 제기했던 전략적 동맹이었다. 그러나 IBT의 바바라 돈은 볼셰비키가 두마 선거에서 카데츠와의 전술적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볼셰비키는 노동자 선거구에서 총 6개의 의석을 따냈다. 물론 레닌은 이 점을 『좌익 공산주의 소아병』에서 언급했다.”—위클리 워커, 2009년 6월 18일

볼셰비키가 복잡한 차르 선거의 일정 단계에서 카데트 후보에 대한 지지를 포함하는 거래를 할 의사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모든 어떤 종류의 타협도 거부한다는 사상과의 논쟁을 위한 1920년의 명저 『좌익 공산주의 소아병』에서 레닌이 이 사실을 확인한 것 또한 사실이다.

“차리즘 붕괴 전에, 러시아의 혁명적 사회민주당원은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의 도움을 자주 이용하였다. 즉 그들은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과 수많은 실제적인 타협을 했다. 1901-02년에 볼셰비즘이 출현하기 전까지도 이스크라의 구 편집위원회(플레하노프, 악셀로드, 자수리치, 마르토프, 포트레소프 그리고 나 자신으로 이루어진)는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의 정치적 지도자 스트루베와 형식적인 정치적 동맹관계를 맺은 반면(사실상 오래 가지는 못했다) 동시에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그리고 노동계급의 운동에서 그들의 영향이 아주 조금이라도 나타나는 것에 반대하는 간단없고 대단히 무자비한 이데올로기적 정치 투쟁을 감행할 수 있었다. 볼셰비키는 항상 이 정책을 고수해 왔다. 1905년 이래 그들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 차리즘에 반대하여 노동계급과 농민 사이의 동맹을 체계적으로 주창해 왔다. 그러나 차리즘에 대항하는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를 지지하는 것을 결코 거부하지는 않았으며(예를 들어, 두 번째 선거 기간 동안, 즉 두 번째 투표기간 동안), 사회혁명당 즉 부르주아 혁명적 농민의 당에 반대하여 그들에 대한 단호한 이데올로기적 정치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았으며, 그들을 스스로 사회주의자로 거짓되게 표현해 온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라고 폭로했다.”

스트루베와 “형식적인 정치적 동맹”은 그가 혁명적 좌익에 잠시 개입했던 시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트루베는 1898년 창건된 러시아사회민주노동자당의 여남은 명의 대표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고 그 창립선언서의 작성자였다. 그 이후 오른쪽으로 멀리 이동했고 나중엔 러시아 내전 기간에 백군 랑겔 장군의 정치적 조언자가 되었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를 지지(예를 들어, 두 번째 선거 기간 동안, 즉 두 번째 투표기간 동안)”하려는 볼셰비키의 태도는 차리즘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 전복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왔다. 그들의 정책은 또한 총체적으로 비민주적이고, 다단계로 구성된 간접 선거 제도 내에서 책략을 구사해야할 필요성에서 도출된 것이다. 유권자는 “지주 선거구에서는 유권자 2,000 명 당 한 명의 선거인, 도시 선거구에서는 7,000명 당 한 명의 선거인, 농촌 지역에선 30,000명 당 한 명 그리고 노동자 선거구에서는 90,000명 당 한 명의 선거인(레닌 전집 12권 514쪽)이 배당된” 서로 다른 선거구(curia)에 속했다. 두마에 파견된 볼셰비키 당원은 자기 당의 정책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볼셰비키는 모든 노동자 선거구에서 후보를 내세우기로 하되 이 지역에서는 멘셰비키 청산주의자들을 포함하여 다른 단체나 정당과 어떠한 협정도 맺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도시선거인의 2차 선거구’에도 후보를 내기로 했다(1차 지역은 대재산 소유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후보를 내세울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지방의 군소지역에서도 선거운동의 선동적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에 후보를 내기로 했다. 그러나 선동과는 또 다른 측면으로 반동적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래서 볼셰비키는 도시선거구에서 선거인 선출을 위한 2차 투표기간 동안 자유주의자[카데츠]에 대항하여 민주적 부르주아지(트루도비키)와 친 정부후보에 맞서 자유주의자와 각각 협정을 맺는 것을 허용했다. 다섯 개의 큰 도시(성 페테르스부르그, 모스크바, 라가, 오데사, 키에프)에서는 2차 투표로 의원선출이 완료되는 선거체제였다. 위의 도시에서는 사회민주당은 독자후보를 내세웠고 흑백인조가 선출될 위험은 없었으므로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와 협정을 맺고자 하는 움직임도 없었다.”—A. 바다예프, 『차르주의 뒤마의 볼셰비키』

볼셰비키 정책은 멘셰비키가 지배한 1906년 11월의 탐페레 총회를 비롯하여 이어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총회의 결의안을 통해 명문화되었다. 그 총회에서 채택한 선거전술 결의안은 핵심 목표는 “두마를 지배하여 군주제 주위의 후진적 사회분자들을 결집시키려고 시도하는 반동들의 반혁명적 계획을 분쇄하는 것”이었다. 결의안은 또한 다음처럼 말한다.

“노동자 선거구의 첫 번째 단계 동안 [1905년 선거법에 따르면, 노동자 선거구의 유권자는 (첫 단계에서) 지역 선거의회에서 (두 번째 단계에서) ‘선거인’을 선택할 ‘대표자’를 뽑는다. ‘선거인’은 주 선거의회에서 다른 선거구에서 온 ‘선거인’들과 함께 최종적으로 뒤마 의원을 뽑는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의 관점에 충실하지 않은 모임이나 정당과의 부분적이거나 지역적 협약은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

“다른 선거구 [즉, 지주, 농민 그리고 다른 도시 거주자]에서는, 만약 선거운동 과정에서 우익정당이 승리할 위험이 보일 경우, 혁명가와 민주적 야당들과의 지역 협약은 허용된다….

“그와 같은 협약의 형태는 반드시 지역의 조건과 일치되어야 하고 하나의 선거 지역 내의 후보자들의 지역적 분배 또는 선거인 후보의 공동명부 구성 등과 관련될 것이다.”—『소련 공산당의 결의안과 결정사항』 1권

유사한 정책이 1907년 7월 코트카 총회에서 동의되었다.

“두 번째와 그 다음 단계에서 혁명 정당과 입헌민주당까지 포괄하는 야당(그리고 무슬림, 코사크 등 관련된 조직들)과의 협약이 허용된다.”

이 결의안은 “허용된 협약은 순전히 기술적 성격을 지닌다.”라고 명문화되었다.

볼셰비키가 지배한 1912년 프라하 총회에서, 같은 정책이 4차 뒤마 선거를 위해 승인되었다.

“도시 지역 대표자들의 2 단계 총회의 선거인 선출을 위한 2차 투표에서, 자유주의자에 대항한 부르주아 민주당과 그리고 모든 정부 여당에 맞서 자유주의자와 협약이 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협약의 형식은 첫 단계 선거의 투표자 수에 비례한 하나 또는 여러 도시를 대표하는 선거인들의 공동 명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좁은 ‘기술적’ 협약은 대도시에서 더욱 제한받는다. “흑백인조[Black Hundred: 20세기 초 러시아의 극우 민족주의 운동. 군주제를 지지하며 극단적 러시아민족주의에 기초한 외국인혐오, 반유대주의 등으로 유명함―역주] 위험의 명백한 부재로 인해, 자유주의자에 맞선 민주주의 조직들과의 협약만 허용된다.” 즉, 카데츠에 맞서 트루도비크와 사회주의 혁명가들과의 협약만.

저명한 미국인 트로츠키주의 변절자, 결국 스트루베처럼 반혁명으로 돌아선 막스 섁트먼은 ‘차악’의 민주당 제국주의자를 향한 투표를 정당화하기 위해 볼셰비키가 카데트 후보를 지지한 것을 인용했다. 다양한 다른 수정주의자들은 수 년 동안 똑같은 주장을 했다. 그리고 CPGB 지도자들도 바로 그 구절을 계급적 선을 넘는 보증서로 이용하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그 같은 비교는 완전히 부당하다. 왜냐하면, 이 전술은 당시 볼셰비키가 처한 예외적인 조건 속에서 채택된 것이다. 즉,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혁명이 역사적 일정에 오르기 위해선 먼저 부르주아 혁명이 필요하고 한 동안 자본주의적 발전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半봉건적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가장 전투적인 부위의 사회주의 지도부였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이미 백여 년 전에 일어난 영국에서, 레닌은 막 피어나고 있던 공산주의 운동에게 자본주의 정당에 맞서 노동당과 공동전선을 구축하라고 제안했다.

“공산당은 헨더슨 일파와 스노든 일파에게 다음과 같은 ‘타협적’ 선거 협정을 제안해야 한다. 즉, 로이드 조오지와 보수당의 동맹에 대항하여, 연합해서 싸워야 하고 그리고 노동당에게 그리고 공산당에 투포한 노동자의 투표수에 비례해서(선거로서가 아니라, 특별 투표로써) 의석을 배분해야 하며, 그리고 선동, 선전 및 정치적 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보유해야 한다.”—『좌익 공산주의 소아병

만약 노동당이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마치 볼셰비키들이 임시정부에 있는 개량주의 정당들의 정체를 ‘10명의 자본가 장관들’과 단절하고 그들 자신의 이름으로 책임지라는 요구로 폭로했던 것처럼, 공산주의자들에게 노동당이 자본가들의 하수인이라는 것을 폭로할 기회를 줄 것이라고 레닌은 제안했다.

“만약 헨더슨 일파와 스노든 일파가 이 조건으로 우리와 블록을 형성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헨더슨 일파가 모든 노동자들의 연합보다 자본가들과 자신들의 밀접한 관련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노동대중에게 즉시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순전히 멘셰비키적이고 완전히 기회주의적인 독립노동당에 있는 평당원조차도 소비에트를 찬성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것)…러시아에서 1917년 2월 27일(구력) 혁명 후, 멘셰비키와 사회노동당(즉 러시아의 헨더슨 일파와 스노든 일파)에 반대하는 볼셰비키의 선전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상황에서 성과를 얻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르주아 없이 완전한 권력을 장악하라, 왜냐 하면 당신들은 다수를 얻었기 때문이다.”(1917년 6월 제1차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볼셰비키는 단지 투표수의 13%만을 얻었다.) 그러나 러시아 헨더슨 일파와 스노든 무리는 부르주아지 없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같은 글

자본주의 조직에게 정치적 지지를 제안하는 것은 혁명가들에게 전술이 아니라 원칙의 문제이다. 차리즘의 전제주의로 조성된 장애를 우회하기 위해 볼셰비키가 채택해야 했던 ‘순전히 기술적인’ 타협 뒤에 숨어서 선거에서 계급협조주의를 방어하려는 CPGB의 시도는 혁명적 충실성과 아무 관련이 없다.

“(대단히 또는 엄청나게 ‘노련한’ 정치인인) 많은 궤변가들은 랜스버리 동지가 언급한 영국의 기회주의 지도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만일 볼셰비키에게 어떤 타협이 허용된다면, 우리에게도 어떤 종류의 타협이 허용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모든 프롤레타리아트―그들 둘러싸고 있는 계급 적대의 날카로운 격화와 대중적 투쟁이라는 조건의 결과로써―는 객관적 조건(투쟁자금의 고갈, 외부지원이 없는 것, 굶주림, 엄청난 피로 등과 같은)에 의해 강요된 타협―그러한 타협에 동의한 노동자의 입장에서 볼 때 투쟁을 계속할 혁명적 헌신과 준비를 결코 감소시키지 않는 타협―과, 다른 한편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객관적 요인이라고 묘사하는 배신자들의 타협과의 차이를 알고 있다.”―같은 글

얼마나 ‘비판적’이건 간에, 선거에서 자본가 정당을 지지하려고 하는 ‘공산주의자들’은 10월 혁명의 지도자 레닌과 트로츠키 전통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케렌스키와 멘셰비키의 정책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Bolsheviks, Ballots & the Class Line No. 3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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